제네바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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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찍은위성사진. 북한의 전력생산이 매우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웃 국가들과 대비된다.

제네바 합의(-合意)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미국1994년 10월 21일 맺은 외교적 합의이다. 이 합의는 2003년 전격적으로 파기되었다. '북한과 미국간에 핵무기 개발에 관한 특별계약', 영어 정식 명칭은 'Agreed Framework betwee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이다. 북한의 핵개발 포기, 북미수교, 북한에 대한 에너지 공급을 주 내용으로 한다.

제네바 합의의 배경[편집]

1989년 미국 정찰위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변 원자력 연구소의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을 확인하고,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북미간 군사적 충돌 위기가 고조되었다. 지미 카터 미국 전대통령이 개인자격으로 방북[1]해 북미간 제네바기본합의서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제네바 합의의 내용[편집]

주요 조항은 다음과 같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흑연감속로(쉽게 무기급의 플루토늄 생산 가능)는 경수로로 대체되며 목표 시한은 2003년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현 원자로 운행이 중단되고 경수로가 지어질 때까지 난방과 전력생산을 위한 중유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된다.
  • 북미관계는 정치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완전히 정상화한다.
  • 미국은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해 위협과 핵무기사용을 안한다는 공식적 약속을 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시행할 조처를 시작한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NPT에 잔류한다.
  • IAEA는 특히 동결되지 않은 시설들에 대한 통상적인 감시를 재개한다.
  • 현재 있는 사용된 핵연료봉은 저장된 후 궁극적으로는 폐기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재처리되면 안 된다.
  • 경수로 부품을 운송하기 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IAEA에 대한 안전에 완전히 동의한다.

제네바 합의 이후[편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제네바합의이후 NPT에 복귀하고 핵시설을 동결하였으며 대신 미국으로부터 매년 중유 50만t을 공급받았다. 또한 한·미·일이 참여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설립해 경수로 원자로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200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원심분리 방식의 핵무기 개발사실을 시인하면서 2차 핵위기가 발생해 경수로건설은 중단되고 미국의 중유지원도 중단되었다. 이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NPT를 탈퇴하고 핵시설을 가동하기 시작해 제네바합의는 파기되었다.

조약 위반[편집]

북한의 조약 위반[편집]

미국의 조약 위반[편집]

  • 북미관계 정상화. 미국이 합의를 위반했다. 북한이 말하는 정상화란 북미간의 평화협정을 말하는데, 미국이 평화협정 체결을 반대했다.
  • 북한에 대한 위협중단. 미국이 합의를 위반했다. 북한이 말하는 위협중단이란 한미연합훈련의 영구적 중단을 말한다. 미국은 계속 핵무기를 탑재하고 한국에 와서 한미연합훈련을 계속했다. 핵무기를 탑재하고 와서는 방어훈련이라서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북한에 대한 핵무기사용 중단. 미국이 합의를 위반했다. 한국에 대한 핵우산 중단을 선언하는 것에도 반대했고, 매년 계속 핵무기를 싣고 한국에 와서 북한을 가상적으로 설정한 군사훈련을 했다.

제네바 합의 실패의 원인[편집]

제네바 합의의 핵심은 북한의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이었다. 한미연합훈련도 계속되었으며, 한미상호방위조약도 폐기되지 않았고, 한미핵우산조약도 폐기되지 않았다. 결국, 미국이 한 일이라고는 중유를 약간 제공한 것 말고는 모조리 합의를 위반했다. 북한도, 미국이 이렇게 나오자, 비핵화를 더 진행하지 않았다. 북한의 일관된 주장은 "한반도 전체의 비핵화"이며, 이 뜻은 한미연합훈련 금지, 한미상호방위조약 폐기, 한미핵우산조약 폐기, 북미평화조약 체결, 북미수교를 말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둘러싸고 언론과 북한문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네바합의 붕괴의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네바합의 붕괴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외교적 공방과 관찰자들의 논란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두 가지 점은 이 문제의 책임 소재를 양국 정부 차원으로 파악하고, 그 시점을 북한의 핵개발 시인 파문 혹은 부시정부 등장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와 같은 지적에는 제네바합의 자체가 붕괴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으나, 그것은 제네바합의의 의의를 과소평가하고 합의 붕괴를 사후적으로 합리화하는 논리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2]

주석[편집]

  1. http://100.naver.com/100.nhn?docid=150532
  2. 통일문제연구, 제15권1호(2003년 상반기), p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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