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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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Ting-yuen.jpg
함정이력
발주 1881년1월8일
건조 AG Vulcan,독일
기공 1881년3월31일
진수 1881년12월28일
취역 1885년10월29일
이후 1895년2월10일、자침
성능제원
배수량 상비배수량 7,144t
만재배수량 7,355t
전장 94.5m
전폭 18.4m
홀수 5.94m
주기관 레시프로증기기관2기
2축추진 6,200마력
최고속도 14.5노트
항속거리 4,500해리(10노트운항시)、석탄1,000t
승조원 363명
무장
305mm연장포 2기4문
150mm포 2문
57mm속사포 2문
47mm속사포 2문
37mm포 8문
14인치 어뢰발사관 3문
장갑 측면355mm、갑판76mm、
포탑22mm、포좌305mm
함재정 어뢰정 3척

정원(定遠、定遠定远)은、청나라해군의 철갑함으로 정원급의 1번함이다. 동형함으로 진원(鎮遠)이 있다.


전함이력[편집]

청국군함신부 (清国軍艦神符)
원구사료관 소장

전함 정원(定遠)은 진원(鎮遠)과 함께 독일에 발주되어 슈테틴(Stettin)의 AG Vulcan 조선소에서 청나라 해군의 주력함으로서 건조되었다. 진수 후인 1883년에는 의장이 종료되어 독일부터 청나라에의 회항을 남겨두고 있었지만. 독일이 중립을 지킨 청불 전쟁의 영향으로, 전쟁 종결후인 1885년 10월에 비로소 인도되어 취역했다.

취역후에는 청나라 북양수사(北洋水師)의 기함의 임무를 맡아, 1886년 조선, 러시아을 차례로 방문했다. 일본에 방문했을 때에는 전함의 강력함을 배경에 둔 청나라 수병이 행패를 부린 나가사키사건이 일어나 그 이후 일본 사회에 있어서 큰 위협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청일전쟁이 발발해 황해해전(1894년 9월 17일)에 참가하여 전투를 벌이던 가운데 주포에 의한 포격중 함교가 붕괴하여 사령관 정여창(丁汝昌)제독이 부상을 입고 지휘능력을 잃었다. 그 이후 159발의 명중탄에 피격되어 17명의 전사자와 3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지만 작전능력은 건재하였다.

황해해전 종료후 웨이하이웨이(威海衛)의 방비를 맡고있었으나, 1895년 2월 5일 수뢰정의 야습에 의해 어뢰에 뇌격되어 얕은 바다에 좌초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포대로서 전투를 속행하였지만 동월 9일에는 육상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었다. 다음날인 10일, 일본군에 의한 나포를 피하기위해 스스로 자침하였다. 함장 유보섬(劉歩蟾)도 전함과 운명을 같이 하였다.

현재, 복제한 복원함이 건조되어 웨이하이의 항구에 전시중이다.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