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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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안씨(定妃 安氏,? ~ 1428년)는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제4비이며 정식칭호는 정숙선명경신익성유혜왕대비(貞淑宣明敬信翼成柔惠王大妃)이다. 흔히 왕대비 안씨(王大妃 安氏)로 불리기도 한다.

생애[편집]

죽성군(竹城君) 안극인(安克人)의 딸로서 1366년, 공민왕의 왕비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그러나 당시 동지밀직(同知密直)이었던 아버지 안극인이 노국대장공주의 영전(影殿) 공사의 중지를 공민왕에게 건의한 일로 아버지 안극인은 파직되고 정비 안씨는 궁에서 쫓겨나게 되나 얼마뒤 다시 입궁하게 된다. 하지만 재입궁 뒤에도 공민왕은 정비 안씨에게 강제로 자제위(子弟衛)의 청년들과 성관계를 맺기를 강요하는 등의 비행을 일삼았으나 그녀는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1374년, 공민왕이 시해되고 우왕(禑王)이 즉위하자 그녀는 동생인 안숙로(安淑老)의 딸을 우왕의 현비(賢妃)로 맞아들인다.

그러나 1388년,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쿠데타를 일으키고 우왕을 강화도로 유배시키자 고려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정비 안씨는 조민수(曺敏修)와 이색의 주청을 받아들여 창왕(昌王)을 즉위시키는 교서를 선포한다. 하지만 창왕이 즉위한 지 1년 만인 1389년에 이성계가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즉위시킬 것을 강요하자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즉위시키는 내용의 교서를 다시금 선포한다.

이어 1392년, 이성계와 그의 일파인 배극렴 등이 공양왕의 폐위와 새 왕조의 창업을 윤허하는 교서를 강요하며 정비 안씨를 협박하자 모든 실권을 상실한 그녀는 할 수 없이 이성계의 옹립 교서를 선포하고 국새(國璽)를 이성계에게 넘겨주었다. 이로써 고려 왕조는 475년 만에 멸망하고 조선 왕조가 성립하게 된다.

그녀는 조선 왕조 성립 이후, 의화궁주(義和宮主)로 강봉(降封)되었고 고려왕조가 멸망한 지 30년 뒤인 1428년(세종 10년)에 사망한다. 그녀는 강봉된 이후에 술을 가까이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조선왕조실록에도 그녀의 음주기록이 보여지는 것으로 보아[1][2] 그녀는 고려 왕조 멸망 이후, 대부분의 일생을 술로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가족관계[편집]

  • 아버지: 죽성군(竹城君) 안극인(安克人)

정비 안씨 등장하는 작품[편집]

주석[편집]

  1. 이명덕(李明德)에게 하교하기를, “의화 궁주(義和宮主)가 늙고 병이 있어서 약주(藥酒)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묵은 술을 쓰지 말고 새 술을 바치도록 하라.”하였다. 궁주(宮主)는 전조(前朝) 현릉(玄陵) 의 정비(定妃) 안씨(安氏)였다. -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36권 18년 8월 6일 7번째기사
  2. 날마다 술 한 병씩을 의화 궁주(義和宮主) 안씨(安氏)에게 내려 주었으니, 곧 전조(前朝)의 공민왕의 정비(定妃)였다. - 『조선왕조실록』「태종실록」29권 15년 5월 25일 4번째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