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문제
전례 문제(典禮問題)는 로마 가톨릭교회내에서 초기 중국 전교 과정에서 수도회들 간에 발생한 전통·습관 문제에 관한 논쟁이다.
마테오 리치를 통해 중국에 전도를 한 예수회는 유교를 용인(容認)하고, 기독교의 신을 천주 또는 상제라고 불렀으며 공자를 숭배하는 의식을 인정, 중국의 전통·습관 사이의 마찰을 피하고, 나아가서는 학술공예 등 문화적 공헌으로 명조·청조에게서 우대를 받아 전도를 독점하여 왔다. 리치가 죽은 후 1632년에 도미니크회, 1633년에 프란체스코회가 필리핀에서 중국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스페인령인 필리핀에서는 전혀 종래의 습관을 무시해 버렸기 때문에 예수회의 전도 방침에 반대하였다.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스페인인이 주를 이루었으며, 예수회는 이탈리아인과 포르투갈인을 주로 하고 있었던 관계로, 수도회의 세력다툼과 민족감정 대립이 생겨 유교의 습관을 어느 정도 용서하는가에 대해 100년간 논쟁이 전개되어 중국 전도사상 전례문제로 큰 사건이 되었다.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는 로마 교황에게 호소하고 특사(特使)인 투르농은 1705년 강희제(康熙帝)에게 그 주장을 상주했으나 각하(却下)되었으며 투르농은 마카오에서 옥사했다. 이리하여 불리해진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는 이 문제에 대해 교황의 재결(裁決)을 요구했다. 1742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는 도미니크회·프란체스코회의 주장을 지지하고, 예수회 쪽의 주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재결을 내렸다.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된 듯이 보였으나 대청제국(大淸帝國)으로서는 교황의 금지명령이 자국(自國) 내에 미치게 되므로 이를 주권의 침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1692년에 공인한 로마가톨릭 교회의 전도의 자유를 취소하고 허가제(許可制)로 하였으며, 전례문제에 관해 강희제의 훈령(訓令)을 받드는 선교사에게만 체재(滯在)와 전도를 허가하고 그 밖에는 국외로 추방하기로 결정하여, 여기서 중국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참고 자료 [편집]
| 이 글은 종교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