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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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傳燈寺)는 대한민국 인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아도화상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존하는 한국의 사찰 중 가장 역사가 길다. 아도화상이 처음 절을 지을 때는 진종사(眞宗寺)로 명명했다.

고려 고종 46년인 1259년에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지은 것으로 다시 기록에 등장한다. 고려는 1232년부터 1270년 사이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했다. 1266년 진종사는 크게 중창되었으며, 충렬왕 8년인 1282년 충렬왕의 왕비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등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전등은 ‘불법(佛法)의 등불을 전한다’는 뜻으로, 법맥을 받아 잇는 것을 뜻한다.

고려 왕실은 전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계속해서 중수가 이루어졌으나, 조선 광해군 대에 이르러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어 1621년 재건되었다. 숙종 때는 《조선왕조실록》을 전등사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1726년 영조가 전등사를 직접 방문해 '취향당' 편액을 내렸고, 1749년에는 중수용 목재를 시주하기도 했다.

전등사 대웅전은 보물 17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약사전(보물 179호), 범종(보물 제393호) 등 보물급 유적을 비롯해 국가사적, 인천시 지정 유형문화재 등이 있다.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은 벌거벗은 여인을 묘사하고 있어, 대웅전 중수를 맡은 도편수가 달아난 여인에 대한 배반감으로 조각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한때 한용운만공의 상좌인 춘성이 주지로 근무하기도 했다.

목차

[편집] 대웅전

강화 전등사 대웅전
(江華 傳燈寺 大雄殿)
대한민국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178호호
소재지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등사
제작시기 조선시대
1963년 1월 21일 지정

전등사 대웅전(傳燈寺大雄殿)은 보물 제178호이다.

조선시대 중기 대웅전 건축의 전형적인 예이다. 정면과 측면 각 3칸의 팔작 다포집이다. 처마 끝이 날아갈 듯 들려 있으며, 우아한 느낌과 내부 장식의 화려함이 돋보인다. 1615년(광해군 7)에 기공하여 1622년에 준공되었다.

[편집] 약사전

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
대한민국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179호호
소재지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등사
제작시기 조선시대
1963년 1월 21일 지정

전등사 약사전(傳燈寺藥師殿)은 보물 제179호이다. 전등사에 있는 조선시대 중기의 목조건물. 약사여래좌상을 모신 건물로, 불교 신자들이 병을 고칠 목적으로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곤 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다포집 계통에 속하며, 건립 시기는 대략 1621년으로 추정된다.

[편집] 범종

전등사범종(傳燈寺梵鐘)
대한민국보물
지정번호 보물 제393호호
소재지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 전등사
제작시기 고려시대
1963년 9월 2일 지정

전등사 범종(傳燈寺梵鐘)은 보물 제393호이다.

전등사의 종각에 있는 북송(北宋)시대의 종으로, 높이 1.64m, 입지름 1m이다. 꼭대기에는 좌우에서 쌍룡이 등을 지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의 꼭지가 있을 뿐 몸통은 없다. 형태가 장중하고 조각이 웅걸하며 소리가 맑다.

본래 중국 송나라 때 허난성(河南省) 백암산 숭명사에 있던 것으로, 109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전한다. 일제 강점기에 무기를 만들기 위해 일본 군인들이 쇠붙이를 거두어들일 때 전등사 범종도 강제로 빼앗겼다. 광복 후 부평 군기창에서 큰 종이 발견되었으나 그것은 전등사 범종이 아니라 송나라 때 만든 종이었으며, 그것이 오늘날 전등사 종루에 매달려 있는 것이다.

[편집]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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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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