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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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전투
(한국 전쟁의 일부)
날짜 1951년 4월 22일 ~ 4월 25일
장소 대한민국 임진강 일대 (적성 ~ 도감포)
결과 중공군이 큰 피해를 입고 승리
교전국
국제 연합 국제 연합
중화인민공화국 중국
지휘관
미국 매슈 리지웨이

대한민국 강문봉

중국 펑더화이
병력
34만 명 35만 명
피해 규모
1만 6092명 7만 명 (유엔 추측)

적성 전투(積城戰鬪)는 한국 전쟁 중, 1951년 4월 22일부터 4월 25일 동안 임진강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임진강 전투라고도 한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임진강 하류의 국제 연합군 진지를 공격하였는데, 이는 1951년 3월 수복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다시 점령하기 위한 것이었다.

Central Korea during Communist Spring Offensive 1951.jpg

전투가 벌어진 지역은 주로 영국군으로 구성된 29 보병 여단에 의해 방어되었다. 29 보병 여단은 영국의 3개 보병 대대, 벨기에의 1개 보병 대대, 지원 전차포병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투 중 영국군은 미군과 필리핀군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수적으로 우세한 중공군에 맞서 29 보병 여단단은 이틀간 그 자리를 지켰다. 이 전투로 중공군의 기세는 무뎌졌고, 유엔군은 후퇴하여 서울 북부에서 방어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여 1957년에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마지리에 영국군 참전 기념비가 세워졌다.[1] 임진강 전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영국의 대니얼 고든 감독에 의해 제작되어 한국전쟁 60주년인 2010년에 개봉될 예정이다.[2] .[3]

같이 보기[편집]

참조[편집]

  • 온창일 외, <<6.25전쟁 60대 전투>>, 황금알 2010, p.210~212 (여기서는 적성 전투를 '설마리 전투'로 소개하고 있음)

주석[편집]

  1. 파주 영국군 설마리전투비는 2008년 10월 1일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건군 60주년을 맞아 국산1호 항공기 ‘부활’ 및 한국전쟁유적(6건) 문화재 등록, 《YTN》, 2008.9.30.
  2. "영국인들, 6·25 자체를 아예 몰라요", 《조선일보》, 2009.4.6.
  3. 한국전쟁 60주년 임진강전투 다큐멘터리 영문판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