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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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
출생 1912년
충청북도 충주
사망 2005년 2월 28일
서울
국적 대한민국
분야 동양화
학력 이당화숙

장우성(張遇聖, 1912년 ~ 2005년 2월 28일)은 한국의 한국화가이다. 아호는 월전(月田)이다.

생애[편집]

충청북도 충주 출신이다. 한학을 공부한 뒤 김은호 문하에서 한국화에 입문하였다. 그림 공부를 한 지 2년 만인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으로 등단하였는데, 첫 입선작은 바닷가의 파도와 갈매기를 묘사한 〈해빈소견〉이었다. 194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 추천작가가 됨으로써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도 얻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어용 전시회인 반도총후미술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불상을 제작하는 등 친일 행적이 있다.

광복 후 서울대학교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지내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대한민국 동양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을 역임했고, 은관 문화훈장(1976), 금관 문화훈장(2001)을 차례로 수여받았다. 전통 문인화의 화법을 현대적 감각으로 변용하여 대한민국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왔다는 평을 듣는다.

문인화 전통에 따른 수묵담채 위주의 인물화를 그리면서도 초기부터 서구풍의 사실적인 표현을 도입하였다. 대표작 중 하나인 〈춤〉은 간결한 선의 힘을 강조하고 여백을 활용하는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인물화, 산수화, 정물화를 즐겨 그렸고, 학과 백로도 주요 소재였다. 2001년 90세의 나이로 휴대전화를 든 여인의 모습을 그린 현대적 인물화를 발표했을 만큼 말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미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2005년 서울대학교 교내 단체가 발표한 '서울대학교 출신 친일인물 1차 1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1] 친일 행적과 관련하여 그가 그린 유관순의 표준 영정을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으며[2][3],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가족들은 장우성이 "일제시대 화가로 입문하기 위해 상을 받고 활동을 했을 뿐"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4]

같이 보기[편집]

참고자료[편집]

주석[편집]

  1. 조호진. "서울대 일제청산위, 1차 친일인물 12명 발표", 《오마이뉴스》, 2005년 4월 7일 작성. 2008년 5월 28일 확인.
  2. 윤평호. "유관순 열사 두 번 죽이려는 천안시 - 유 열사 영정 제작, 친일논란 장우성 화백에게 또 맡겨", 《오마이뉴스》, 2004년 2월 27일 작성. 2008년 5월 28일 확인.
  3. 윤평호. "'유관순영정' 제작 장우성화백 친일의혹 증폭 -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전 통해 장 화백 '친일 행적' 소개", 《오마이뉴스》, 2004년 10월 24일 작성. 2008년 5월 28일 확인.
  4. 류창석. "화가 장우성씨 아들 "아버지 '친일'은 억울"", 《연합뉴스》, 2005년 8월 2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