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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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황 | |
|---|---|
| 면적 | 32.0 km² |
| 세대 | 208,567가구 (2007.12) |
| 총인구 | 568,905명 (2007.12) |
| 행정동 | 22개 |
| 법정동 | 9개 |
| 구청장 | 홍미영 |
| 구청 | |
| 소재지 | 부평구 부평대로 168 (부평4동 879) |
| 홈페이지 | http://www.icbp.go.kr/ |
| 상징 | |
| 구목 | 은행나무 |
| 구화 | 국화 |
| 구조 | 비둘기 |
목차 |
[편집] 역사
부평은 황해와 한강을 사이에 둔 지역으로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활동이 있었다. 인근의 가현산 북쪽에 140여 기의 고인돌 군이 있어 이 일대가 강력한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게해 준다. 부평이 역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한시대의 일로 부평은 마한의 영역에 해당하였다. 백제가 형성되면서 백제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나, 475년에 고구려 장수왕이 한강 이남을 공략하여 주부토군(主夫吐郡)을 세웠고 부평역시 주부토군에 편입되었다. 그 후 백제가 다시 이 지역을 회복하였으나 553년에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후부터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남북국 시대인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장제군이 되었고 하위 행정지역으로 술성현(戌城縣), 김포현(金浦縣), 동성현(童城縣), 분진현(分津縣) 등이 있었다.[1]
부평은 고려 초기에 수주로 불리었으며, 이후 이름이 바뀌어 의종 4년(1150년)에 안남, 고종 2년(1215년)에는 계양, 충렬왕 34년에는 길주 등으로 불렸고, 부평이란 이름은 충선왕 2년(1313년)에 붙여진 것이다. 그후로는 계속해서 부평으로 불렸다. 조선 시대에는 태종 13년(1413년) 부평도호부를 설치하였고 고종 32년(1895년)에 부천군에 편입되었다. [2]
부평도호부는 지금의 부평초등학교 자리에 있었고 계양산을 중심으로 지금의 인천 부평구, 서구, 계양구 지역을 관할하고 있었다. 근대에 이르러 행정구역이 변화함에 따라 계속하여 관할 지역이 분할되었고 1940년에 인천에 편입되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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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제1919호 인천시구설치에관한법률 신 행정구역 북구 부평동, 십정동, 산곡동, 청천동, 효성동, 계산동, 작전동, 서운동, 삼산동, 갈산동, 부개동, 일신동, 백석동, 시천동, 검암동, 경서동, 공촌동, 연희동, 심곡동, 가정동, 신현동, 석남동, 원창동, 가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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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령 제12367호 구 행정구역 (법정동) 신 행정구역 북구 검암동, 백석동, 시천동, 경서동, 연희동, 공촌동, 심곡동, 가정동, 신현동, 석남동, 원창동, 가좌동 서구 일원
- 1988년 5월 1일 자치구 승격
- 1989년 1월 1일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이 북구에 편입되었다.[5] (32법정동)
- 1995년 1월 1일 인천광역시 북구
- 1995년 3월 1일 북구를 부평구로 개칭하고, 부평구의 일부를 관할로 하여 계양구가 신설되었다.[6] (21행정동 9법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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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 제4802호 구 행정구역 (법정동) 신 행정구역 부평구 효성동, 계산동, 작전동, 서운동, 박촌동, 동양동, 귤현동, 상야동, 하야동, 평동, 노오지동, 선주지동, 이화동, 오류동, 갈현동, 둑실동, 목상동, 다남동, 장기동, 임학동, 용종동, 병방동, 방축동 계양구 효성동, 계산동, 작전동, 서운동, 박촌동, 동양동, 귤현동, 상야동, 하야동, 평동, 노오지동, 선주지동, 이화동, 오류동, 갈현동, 둑실동, 목상동, 다남동, 장기동, 임학동, 용종동, 병방동, 방축동 (변동없음) 부평구 부평동, 십정동, 산곡동, 청천동, 삼산동, 갈산동, 부개동, 일신동, 구산동
[편집] 행정 구역
| 행정동 | 법정동 | 설명 |
|---|---|---|
| 부평1동 | 부평동(富平洞) | 부평이란 이름은 고려 충선왕 2년(1310년)에 부평부라고 불린 데서 비롯된 것으로 원래 부평지역은 현재 계양구 계산동이 그 중심지였으나, 1899년 부평역이 생기면서 그 주변과 시장 지역을 부평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 지역은 한말에는 부평구 동소정면 대정리로 되었다가 1914년에 부천군 부내면 대정리로 되었고,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소화정이라 불렸으며, 해방과 더불어 1948년에 부평동으로 개칭되었다. |
| 부평2동 | ||
| 부평3동 | ||
| 부평4동 | ||
| 부평5동 | ||
| 부평6동 | ||
| 산곡1동 | 산곡동(山谷洞) | 산곡동은 한말에는 부평군 마장면 산곡리였고, 1940년 인천부역 확장으로 인해 인천부로 편입되어 백마정이라 불렀으며, 1946년 다시 산곡동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서 군마를 길렀던 관계로 마장면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뫼끝말"과 "장끝말" 2개의 자연부락이 있었다. |
| 산곡2동 | ||
| 산곡3동 | ||
| 산곡4동 | ||
| 청천1동 | 청천동(淸川洞) | 청천동이란 이름은 이곳을 흐르는 청천에서 연유된 이름으로 구한말에는 부평군 마장면 청천리였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청천리로 되었으며, 1940년에는 인천부에 편입되면서 천상정으로 되었다가 1946년에 다시 청천동으로 개칭되었다. 이곳은 부평평야가 시작되는 넓은 곡창지대에 속했으나 1960년대부터 부평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급격히 발전하여 오늘날에는 농경지가 전혀 없는 자동차공업의 요람으로 변모하였다. 이곳에는 "마제이","동양사택"과 같은 자연부락이 있다. |
| 청천2동 | ||
| 갈산1동 | 갈산동(葛山洞) | 갈산동이란 칡넝쿨이 많은 갈산밑에 있는 마을이란 데서 유래된 명칭으로 옛부터 이곳은 "갈월리"라고 불리었다. 이곳은 한말에는 부평군 서면 갈월리였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갈월리로 되었고, 1940년 다시 인천부에 편입되어 갈야정이라 불렸으며, 해방 후에 갈산동으로 개칭되었다. |
| 갈산2동 | ||
| 삼산1동 | 삼산동(三山洞) | 삼산동이란 이 지역이 영선산, 갈산, 금산 등 3개 산줄기 밑에 둘러싸인 분지 모양의 지형에서 생긴 이름으로 한말 부평군 서면 후정리라고 불렸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후정리로 되었고, 1940년 다시 인천부에 편입되어 삼립정이라 불리다가 1946년에 삼산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55년에는 갈산동에 편입되었다가 1992년에 분동되어, 독립된 행정동이 되었다. 2006년 삼산1동, 삼산2동으로 분동하였다. |
| 삼산2동 | ||
| 부개1동 | 부개동(富開洞) | 부개동이란 부평의 초입지로써 부평이 시작되는 곳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한말에는 부평군 동소정면 마분리였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마분리로 되었고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명치정으로 되었다가 1946년 부개봉의 산이름을 따서 부개동으로 개칭되었다. 1955년 일신동, 구산동을 통합하였다가 1982년에 일신동(구산동 포함), 1985년에 부개2동, 1992년에 부개3동으로 각각 분동되었다. |
| 부개2동 | ||
| 부개3동 | ||
| 일신동 | 일신동(日新洞) | 일신동은 해방 후 모든 것이 새로워진 동네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구한말에는 부평군 동소정면 항동이었으나, 1914년 부천군 부내면 항동리로 되었다가 1940년에 인천부로 편입되면서 향취정이 되었고, 1946년에 이르러 일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전에는 항동을 항굴이라 불렀으며, 동네가 배(舟)의 형국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으로 옛부터 동네안에 우물을 파면 동네가 망한다는 전설이 있었는데 개화의 물결에 힘입어 주민들이 동네안에 우물을 판 결과 일본군이 군용지로 수용하면서부터 마을사람들이 밀려나게 되었으며, 아직까지도 일신동 지역의 대부분이 군주둔지로의 역할이 계속되고 있으나, 현재 대규모 APT 단지의 조성과 도시외곽순환도로의 건설 등으로 동네가 다시 일신(日新)되고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고 있다. |
| 구산동(九山洞) | 구산동은 원래 거마산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형세가 마치 거북의 등성이와 같다하여 구산(龜山)이라 불렸으나, 1914년 행정착오로 구산리(九山里)로 오기한 것이 오늘날까지 九山洞이란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구한말에는 부평군 동소정면 구산리였는데, 1914년에 부천군 부내면 구산리가 되었고,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어 이등정이 되었으며, 1946년에 다시 구산동으로 개칭되었다. | |
| 십정1동 | 십정동(十井洞) | 십정동이란 우물이 많은 마을이란 뜻에서 부르는 명칭으로 이곳에는 "웃열우물", "아랫열우물"과 같은 자연부락이 있었다. 구한말에는 인천군 주안면 십정리였으나, 1914년에 인천부의 다소면과 주안면이 통합되어 부천군 다주면 십정리로 되었다가 1940년 인천부로 편입되어 대도정이 되었으며, 1946년부터 십정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곳은 한국 최초의 천일염전(1907년)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
| 십정2동 |
[편집] 교육 기관
- 특수학교
[편집] 교통
[편집] 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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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지하철 7호선 (온수역 - 부평구청역구간 2011년 개통예정)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 삼산역 - 굴포천역 - 부평구청역 → (시종착역)
- - 추후 서울 지하철 7호선이 연장 개통되면 부평구청역에서 인천 메트로 1호선으로 갈아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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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출신 인물
- 신지(본명 : 이지선) : 음악 그룹 코요태의 구성원.
- 구혜선 : 배우, 소설가, 영화 감독, 일러스트레이터 등
- 진보라 : 피아니스트
- 이천수
- 김남일
- 조용형 :
- 최태욱 : 이상 축구 선수.
- 김디에나 : 모델, 방송인, 가수 등
- 성동일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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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주석
- ↑ 부평 옹진지역의 역사, 인하대박물관
- ↑ 가 나 계양산을 중심으로 한 부평 지역, 인천테마 학습실, 이성구, 개화의 선구지 인천, 참글사, 1997 에서 재인용
- ↑ 법률 제1919호 인천시구설치에관한법률 (1967년 3월 30일)
- ↑ 대통령령 제12367호 서울특별시송파구등13개구설치와구의관할구역변경에관한규정 (1987년 12월 31일)
- ↑ 법률 제4051호 부산직할시강서구설치및시·도의관할구역변경에관한법률 (1988년 12월 31일)
- ↑ 법률 제4802호 서울특별시광진구등9개자치구설치및특별시·광역시·도간관할구역변경등에관한법률 (1994년 12월 22일)
- ↑ 부평구 조례 제899호 행정운영동의설치및동장정수조례 (2005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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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의 행정 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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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소재지: 남동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