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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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사원(人民寺院, Peoples Temple)은 1978년 11월 18일 가이아나 존스타운에서 일어난 집단 자살로 널리 알려진 준종교 집단이다. 1953년 짐 존스 목사가 미국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세운 예배당(사원)이 그 시초이다. 존스 목사의 기괴한 행위와 신도들의 집단자살로 인하여 사이비종교의 반(反)사회성을 보여주는 대표사례로 언급된다.[1]

역사[편집]

초기 역사[편집]

짐 존스는 1952년 경에 감리교회의 청년부 담당 전도사였으나 흑인 신도 거부에 대한 당시 교회의 방침에 반대하여 탈퇴했다. 이후 <해방의 날개> 교회를 설립했고 후에 <인민사원 가스펠 교회>로 이름을 변경했다. 그는 1964년 개신교의 한 종파인 <예수의 사도(Disciples of Christ)> 교회에서 목사의 자격을 획득했다. 존스의 교회는 백인 중심의 교회를 비판했고, 특히 미국 흑인차별없이 받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여 흑인신도가 많았다.

교세 확장[편집]

1965년 거점이었던 인디애나폴리스를 벗어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북부 캘리포니아로 세력을 옮겼다. 캘리포니아 주의 유키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존스 목사의 교회는 흑인, 마약중독자, 노숙자도시 빈민 계층 구호 활동으로 좋은 평판을 쌓았다. 무료 식당, 탁아소, 노인병원을 설립했고, 성매매 여성들과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제공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조지 모스콘 시장은 짐 존스 목사를 도시 주택 사업 위원으로 위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스 목사는 스스로를 예수, 아케나텐, 부처, 레닌, 신적인 존재(Divine)의 현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신도들은 존스를 "아버지(Dad)"라고 칭하며 그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믿었다. 또한, 존스는 신도들에게 파시즘, 인종간 전쟁, 전쟁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도들의 폭로[편집]

하지만 1970년대부터 존스 목사의 교회를 가까스로 탈퇴한 사람들에 의해 인민사원의 실상이 폭로되기 시작했다. 존스 목사가 신도들의 재산을 훔치고 있고, 그의 기적 치유는 조작이며, 신도들을 폭행하고, 남성 신도와 변태 성행위를 하고, 이젠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폭로가 이어지자, 신문기자, 관계당국, 정치가들이 존스 교주의 예배당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짐 존스는 연설을 통해 탈퇴자들이 거짓 증언을 일삼고 있으며 바깥 세상이 자신들을 파멸시키려는 의도라고 주장했지만, 점점 더 많은 탈퇴신도들에 의해 인민사원에서 일어나는 폭행과 학대 사례가 폭로되었으며, 신도의 일가친척들은 존스 목사가 신도들의 탈퇴를 신도의 의지에 반하여 폭력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이아나의 존스타운[편집]

강제노동[편집]

미국내의 언론과 정치권에서 이상기류를 감지한 존스는 일천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가이아나의 정글 속으로 거점을 옮겼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가이아나에 100만 달러에 사놓은 땅이었기에 1974년 소규모로 이동했고, 1977년 가이아나 정부의 허락 하에 대규모 이주(어린아이 포함)가 시작되었다. 신도들에게는 바깥 세상의 사악함이 존재하지 않는 열대의 낙원이라고 했지만 가이아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존스의 명령 하에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인권침해를 당했고, 모두 함께 존스타운을 건설해야 했다. 또한 신도들에게 탈출하면 독사와 원주민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광기에 가득한 목소리로 협박하여 누구도 인민사원을 탈출할 수 없었다.

살인[편집]

1978년 미국 하원의원 리오 라이언이 신도학대 사건 신고를 받고 조사[2]차 가이아나의 존스타운을 방문했는데, 당시 신도들은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이들이 짓는 웃음은 너무 어색했다. 처음엔 라이언 의원도 그들이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 속아 넘어갔지만, 현지 생활에 불만을 가진 한 신도가 쪽지를 전하면서 정착촌의 실상을 깨닫는다. 실제로 조사 중에 많은 신도들이 리오 의원과 함께 떠나기를 원하였다. 존스는 라이언 의원이 귀국 뒤 미국 정부에 실상이 보고됨은 불 보듯 뻔하다고 생각하여, 인민사원 신도인 경비들을 보내어 떠나려는 의원 30여명의 일행(귀국 희망 정착민 포함)에게 총격을 퍼부었다. 이 결과로 리오 의원, 세 명의 NBC방송국 기자, 한 명의 신도가 그 자리에서 살해당했다. 일행중 한 사람은 수로와 정글로 몸을 숨겨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전해진다.

집단자살[편집]

곧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짐 존스 교주는 신도들에게 억지로 집단자살을 명했고, 무장경비원들에게 둘러싸인 신도들은 청산가리를 탄 주스를 마셨다. 심지어는 어린이들에게 강제로 독극물을 먹이기까지 했으며, 일부 신도들은 을 맞거나 이 졸리기도 했다. 존스 자신은 머리을 맞은 채 발견되었는데, 살해당했는지 자살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이 집단자살로 총 914명이 죽었고 그중 276명은 어린이였다. 이전에도 존스 목사는 신도들을 대상으로 집단 자살 연습을 시켰다. 다만 1978년 11월 18일은 연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시 죽은 사람들은 최소 2세부터 최고 84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었다.

인민사원 집단자살 원인에 대한 분석[편집]

현재 주장된 분석들[편집]

인민사원 신도들의 집단자살은 교주의 명령하에 자살행위까지도 기도할 수 있는 사이비 종교의 극단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수많은 연구결과가 등장하였다. 현재 인민사원 집단자살을 연구한 이론들을 보면, 교주 짐 존스의 카리스마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이론(비슷한 사례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사이비종교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도 카리스마로 신도들을 지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민사원 신도들이 대부분 빈민층 출신이라 삶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론, 교주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사이비종교의 특징때문에 일어난 일로 보는 이론이 있다. 또한 인민사원 신도들은 젊은 여성이 어린이와 함께 음독자살한 일과 정글이라는 낯선 환경이 다른 신도들에게도 일종의 신드롬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가이아나 정글이라는 낯선 환경,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하는 유사한 환경에서는 다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는게 최선의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이비 종교 신자들이 집단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졌을 것이란 설명이다.[1]

인민사원 집단자살의 진실[편집]

하지만 2008년 11월 17일자 《아시아 투데이》신문에 따르면,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이 일어난 진짜 이유는 짐 존스 교주의 강요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민사원 신도였던 팀 카터의 증언에 의하면 존스 교주는 신도들을 모아놓고 집단 자살을 명령했는데, 당시 무장한 경비원들이 신도들 주위에 배치되었으며, 어린이들에게는 강제로 독극물을 먹였다. 팀 카터 본인도 존슨 교주의 자살 강요로 부인과 15개월짜리 아들을 잃었다.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은 신도들이 스스로 죽은 사건이 아니라, 짐 존스 교주의 강요에 의한 살인사건이었던 것이다.[3]

참고 자료[편집]

인민사원에 대한 가장 방대한 자료인 Alternative Considerations of Jonestown & Peoples Temple을 보면 1950년대 후반 존스 목사 부부는 두 명의 한국 어린이를 입양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함께 보기[편집]

  • 영화 'Eaten alive by the cannibals(1980)' : '인민사원'이야기와 아주 비슷

주석[편집]

  1. 《설득의 심리학》(Influence:Scinence and Practice,4th Edition)-불확실성과 유사성이 빚어낸 인민사원의 집단자살/로버트 치알디니 저/이현우 옮김/21세기 북스, 218~224쪽.
  2. 사고당일 인터뷰에서 그는 방문 목적을, "이곳에 있는 미국인의 보건과 복지를 조사할 것입니다" 라고 밝혔다.
  3. 아시아투데이 2008년 11월 17일 아시아 투데이 신문-전 세계 경악케 한 존스타운 '집단자살' 알고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