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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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민당(바라티야 자나타 당(Bharatiya Janata Party), 혹은 BJP라고 그냥 불리기도 함)는 1980년에 세워진 인도의 정당 중 하나로, 다수당 중의 하나이다. 인도인민당은, 자신의 당이 인도의 힌두 다수의 사회 종교적 문화적 가치, 보수주의, 그리고 국가 안보를 옹호하는 대변자라고 주장한다. 주로, 도시 지역 중산층, 사업가나 상인 계층, 그리고 종교 사회적 보수 계층을 지지층으로 가지고 있다. 인도인민당의 주변에는 여러 가지 힌두 민족주의 조직이 있는데, 이들은 주로 상 빠리바르(Sangh Parivar)라고 불린다. 그중 라쉬트리야 스와얌세박 상(Rashtriya Swayamsevak Sangh, RSS로 불림)이 가장 큰 조직이다. 인민당이라고 불리더라도 이 정당은 이념적으로는 좌파 정당이 아니라 우파 민족주의 정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도인민당의 반대파인 정당은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가 있다. 인도인민당은 1998년에서 2004년까지 집권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여러 우파 종교단체(대개 힌두교 조직)의 지원을 등에 업고 인도국민회의의 중앙집권적인 정책을 원점으로 모조리 돌려 놓았다. 인도인민당의 가장 대표적인 이념적인 정체성은 흔히 힌두트바(Hindutva)라고 불리는, 힌두 우파 민족주의이다.

1998년에서 2004년까지의 집권 기간 동안의 인도의 수상은 인도인민당 출신인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에(Atal Bihari Vajpayee)였고, 부수상은 랄 크리슈나 아드바니(Lal Krishna Advani)였다. 이 집권은 인도의 민족 민주 연합이라는 정당들의 연합체를 구성함으로써 이루어졌고, 인도인민당이 단독으로 정권을 잡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집권 기간 동안 아주 강력한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특히 그 집권 기간 동안의 파키스탄과의 마찰, 핵무기 개발과 핵실험 등은 많은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인도인민당의 기원인 인도인민연합(바라티야 자나 상 Bharatiya Jana Sang, BJS)은 1952년뱅골만 출신의 힌두 민족주의자 스야마 프라사드 무게르제(Syama Prasad Mookerjee)이 만들었다. 이 조직은, 힌두 민족주의자 조직인 RSS의 한 갈래였다. 인도인민연합이 급성장을 하게 된 것은, 1953년에 설립자인 무게르제가 카슈미르의 감옥에서 사망하게 되자, 이에 대한 항의로 많은 젊은 힌두 민족주의자들이 대거 이 조직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로 인해 BJS는 24년동안 더 조직을 갖추고 있었으나, 어떠한 주에서도 어떠한 국회의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인도인민연합은 결코 인도국민회의를 이길수가 없었다. 이 상황은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에가 이 연합에 가담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인디라 간디1975년, 선거 부정을 위해 선거 직전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자, BJS는 이에 항의하는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때 바즈파이에를 비롯한 많은 BJS의 정치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 그 후, 인디라 간디의 집권 정부가 1977년에 선거를 재개하기로 하자, BJS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시위에서 동지가 된 많은 조직들을 규합하여 새로운 인민당(Janata Party)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즉, 인민당은 사회주의자, 종교원리주의자, 전국회의원, 힌두 민족주의자 등 많은 출신 중 인디라 간디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탄생한 정당이다. 이 인민당은 이 선거에서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아탈 비하리 바즈파이에는 외무장관, 랄 크리슈나 아드바니는 정보통신장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집권은 2년을 지속하지 못하였고, 인디라 간디의 정당은 다시 국회의 다수를 점하게 되었다. 이에 인민당은 붕괴되었고, 태초 BJS의 정치 지도자들은 재규합하여 조직 재건을 모색하게 되었다.

초창기[편집]

BJS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렇게 1980년 12월에 새로 만든 정당이 BJP이다. 이 정당은 바즈파이에와 아드바니를 대표로 하여 구성되었다. 그 시작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인디라 간디가 암살된 1984년록 사브하(Lok Sabha) 선거에서, 인도국민회의는 엄청난 대승을 거두었고 그로 인해 BJP는 543석 중 단 2석만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상황이 개선되어 1989년의 록 사브하 선거에서는 88석을 차지하였다.

1991년의 록 사브하 선거에서, BJP는 제1야당으로 급성장을 하였다. 이때에 인도국민회의는 연정을 통하여 집권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6년 BJP는 집권 정당은 아니었으나 국회 내의 최다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인도의 대통령이었던 샹카 다얄 샤르마(Shankar Dayal Sharma)는 바즈파이에를 인도의 수상으로 임명하게 되었고 BJP는 집권을 위해서 노력을 했으나, BJP의 반대파들의 단결로 인해 바즈파이에는 단 13일만 수상으로 있다가 물러나게 된다. 인도의 정부는 범좌파 연합이 정권을 잡았다.

최초의 BJP 정부[편집]

록 사브하 선거가 1998년에 열렸을 때, BJP는 다시 최다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번에는 BJP는 민족 민주 연합이라는 연정체를 구성하여 아주 세세한 우위를 점하여 집권에 성공하였고, 바즈파이에는 수상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이 연정이 1999년 5월에 문제가 생겨 우위가 깨지게 되자 다시 새로운 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1999년 10월 13일, 새로 구성된 민족 민주 연합는 303석의 의석을 차지하였고, 이중 183석이 BJP의 의석이었다. 바즈파이에는 다시 세 번째로 수상자리에 올랐고, 아드바니는 부수상과 내무장관을 겸직하게 되었다. 이 민족 민주 연합연정 정부는 5년간 지속된다.

제2차 BJP 정부 (1998~2004)[편집]

수상 바즈파이에의 아래에서, 인도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예를 들면, 라자스탄(Rajasthan)주의 포크란(Pokhran)에서 1998년에만도 5회의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인도 민족주의적 노선을 대편하였다. 또 한편, 수천 명의 보병, 포병대, 공군력을 동원하여 카르길 지역을 무모하게 공격하여 파키스탄 점령지였던 곳을 다시 빼앗아 오기도 하였다.

2002년에는, BJP-NDA(민족민주연합) 정부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기도 하였다. 이 테러방지법은 경찰과 정보기관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요소들이 들어 있다. 이 테러방지법은, 2001년 12월 31일에 의회를 폭파하려는 테러 시도에 대한 대책으로 급격하게 통과가 되었다.

바즈파이에와 그의 경제수석들은, 많은 정부 소유의 국영기업을 매각하는 데에 주력하였고, 정보 자유법과 자유무역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였다. IT산업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였고,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산업체와 중산층 종업원에 대해서 감세안을 마련하였다.

2004년에는, 파키스탄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몰디브 등과 남아시아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2002년에 있었던 구자라트 폭동(Gujarat riots)를 계기로 BJP는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 폭동 사건 당시, BJP 당원이자 구자라트주의 주지사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이슬람교도를 학살한 힌두 폭도를 보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 당시 많은 BJP 당원들이 이 폭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2천 명 이상의 이슬람 교도가 학살되었으며, 수만 명이 부상을 입고 피신을 하였다.

2004년의 선거 이후[편집]

2004년에 있었던 선거에서 BJP와 NDA의 연합 세력은 패배하였다. 그리하여 바즈파이에는 인도국민회의의 만모한 싱에게 총리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이 선거 결과를 많은 정치학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즈파이에와 BJP는 여전히 아주 인기가 높았고, 경제는 급성장을 하고 있었으며, 집권 후반에는 파키스탄과의 평화 문제도 급진전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거 결과가 나온 후의 분석에 따르면, BJP의 패배는 선거 결과를 지나치게 유리할 것으로 낙관하여 별다른 득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이 원인으로 보인다. 또 다른 분석 중에는, 바즈파이에의 파키스탄과의 평화 노력이 오히려 지지도를 떨어트렸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BJP의 정치적인 기반은 우파 힌두 민족주의인데,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과의 우호관계 노력이 이들 힌두 민족주의자에게 달갑지 않게 보였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선거 패배 후, 바즈파이에는 명예 총재직을 가지고, 아드바니가 BJP의 총재가 되었다.

힌두 민족주의[편집]

BJP는 우파 민족주의 정당이다. 이 정당은 스스로를 인도 고유의 종교 제도와 문화 제도의 수호자로 간주한다. 많은 힌두 민족주의자에게 BJP의 이름에 등장하는 바라티야바라트(Bharat)가 바로 힌두 민족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BJP의 공식적인 당규에 따르면, 물론 바라트라는 말은 힌두 민족뿐만이 아니라 이슬람계, 혹은 기독교계, 혹은 다른 소수 종교 민족을 배제하는 말이 아니라 단지 인민을 뜻하는 말이고, 또한 이것은 인종주의적인 개념이 아니라 과거 수천 년간 인도 내에서 생성된 많은 문화적이고 종교적인 것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즉 정치 수사의 관점에서는 인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러한 힌두 민족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많은 BJP의 비판자에게 BJP는 외국인을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이며, 파시스트적인 조직으로 비치고 있다. BJP의 지지자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서 BJP가 단지 보수주의,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정당일 뿐이고, 어떤 종교적이거나 문화적인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1947년에 있었던 인도, 파키스탄의 분리와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다. 이 분리는 종교를 가진 많은 인도인들에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예컨대, 현재는 파키스탄의 일부가 된 지역에 살고 있던 힌두교도들과 시크교도들은 분리가 결정된 이후 급박하게 인도로 탈출했고, 그 반대로 많은 인도 지역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탈출했다. 이 와중에 1백만 명이 넘는 힌두교도, 시크교도, 무슬림이 종교간 충돌로 희생되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러한 일은 수백 년간 살아온 고향 땅을 버리고 급하게 이주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참담한 기억이 되었고, 인도에서 머물러 있던 힌두 민족주의자들에게는 극심한 무슬림 혐오증의 뿌리가 되었다.

종교적인 이유 이외 다른 관점의 차이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의 인도-파키스탄 간의 영토분쟁에서도 기인한다. 두 국가는 1947년에서 1948년까지, 1962년과 1965년, 1971년, 1999년에도 전쟁을 벌였고, BJP는 공식적으로 인접 국가인 파키스탄과 중국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BJP는 정치적인 이득을 위해서 종교적인 차별과 폭력에 참여하고 종교에 민감한 사안을 거론하는 것으로도 자주 비판을 받았다. 이러한 비판들 가운데 다수가 실제의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무슬림뿐만 아니라 힌두인 사이에서도 BJP의 이미지에 비판적인 경우가 있다. 많은 언론인과 외국인은 BJP가 파시스트 조직이며, 분명하게 반이슬람 정서를 표방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조직[편집]

인도인민당의 많은 정치인은 RSS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상 빠리바르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 중 대표적인 것으로, RSS를 포함하여 비슈와 힌두 파리샤드(Vishwa Hindu parishad), 스와데쉬 자그란 만치(Swadeshi Jagran Manch;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는 기관) 등이 있다.

이 외에도 BJP와 관련이 있는 조직은 다음과 같다:

인도의 바깥에는, BJP의 지지자들이 “BJP의 해외 친구들”(Overseas Friends of BJP)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당 정책[편집]

BJP의 핵심 전략은 주로 힌두 민족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중요도의 순서에 따라서 나열된 것은 아니지만, BJP의 주요한 목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헌법 조항 370의 철폐 - 헌법 조항 370조는 잠무 카슈미르 지역에 특별 자치권을 주고 있으며, 인도 시민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는 것을 장려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민의 다수를 이루는 무슬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2)균등한 민법 조항의 공표 - 힌두와 무슬림, 기독교도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의 민법을 공표할 것을 주장한다. BJP 지지자들은 현재의 방식이 인도의 각 종교 그룹 사이의 간극을 벌여놓고 있다고 생각한다.

(3)소 도살 금지 - 힌두교에서 소는 신성하기 때문에 인도 내에서는 소 도살 및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소비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4)종교 개종 금지 - BJP는 이슬람과 기독교 선교사들이 힌두교도들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것이 힌두주의를 해치고 있으므로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5)아요디야 지역에 람 잔마브후미 사원 건설하기 - 람 잔마브후미(Ram Janmabhoomi)는 고대 힌두의 전설적 영웅인 라마의 탄생지란 뜻이다. 1992년 힌두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아요디야의 바브리(Babri) 모스크가 헐리고 그 자리에 사원이 가설되었다.

(6)잠무 카슈미르 지역은 완전히 인도의 일부이다. - 현재는 약 40퍼센트의 지역이 파키스탄과 중국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

조직의 우두머리[편집]

총재[편집]

전임 총재들[편집]

장군 장관[편집]

회계 담당자[편집]

인도인민당의 발언[편집]

안드라프라데시[편집]

아루나찰프라데시[편집]

아삼[편집]

비할[편집]

관련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