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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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李澔, 일본식 이름: 李家澔, 1914년 2월 7일 ~ 1997년 5월 24일, 경북 영천)는 일제 강점기의 검사를 지낸 법조인, 법률가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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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편집]

영천에서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부유했기에 일찍 일본으로 유학하여 立命館中學를 거쳐 佐賀高等學校를 졸업한 뒤 도쿄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이 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에 이미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수재였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경성지방법원 검사, 경성고등검찰청 검사로 일했고, 광복 후에도 이러한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1946), 대검찰청 검사(1948), 내무부의 초대 치안국장(1949) 등으로 계속 승진했다.

한국 전쟁 중에는 입대하여 육군 법무감(준장)과 계엄 부사령관, 정전위원회 대표 등을 지냈고, 1953년 국방부 차관에 올랐다. 이후 제1공화국 법무부 장관(1955), 4·19 혁명으로 들어선 과도 정부의 내무부 장관(1960), 제3공화국의 내무부 장관(1967), 주일본 대사(1971)를 지냈다. 12·12 군사 반란 이후에는 전두환이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장을 맡았으며,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지냈다.

1981년 국정자문위원회 위원에 위촉되었다. 1987년 11월 4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만찬에 국무총리 김정렬의 초청을 받았다.

장남인 이동서울시립대학교 총장을 지내는 등 6남 1녀가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한 가문으로 유명하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사법 부문에 선정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참고 자료 [편집]

전 임
조병옥
(경무부장)
초대 치안국장
1949년 1월 7일 ~ 1950년 3월 1일
후 임
김태선
전 임
강영훈
제5대 국방부 차관
1953년 1월 18일 ~ 1955년 9월 16일
후 임
김용우
전 임
조용순
제8대 법무부 장관
1955년 9월 16일 ~ 1958년 2월 19일
후 임
홍진기
전 임
홍진기
제20대 내무부 장관
1960년 4월 25일 ~ 1960년 8월 19일
후 임
홍익표
전 임
서석순
(서리)
제7대 국무원 사무처장
1960년 7월 4일 ~ 1960년 8월 19일
후 임
오위영
전 임
엄민영
제31대 내무부 장관
1967년 6월 28일 ~ 1968년 5월 21일
후 임
박경원
전 임
권오병
제20대 법무부 장관
1968년 5월 21일 ~ 1970년 12월 20일
후 임
배영호
전 임
이후락
제4대 주 일본 대사
1971년 1월 ~ 1974년 1월
후 임
김영선
전 임
김용우
제7대 대한적십자사 총재
1975년 7월 ~ 1981년 7월
후 임
김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