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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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량(李成梁, 1526년 - 1615년) 은 명나라의 무관이다. 요동총병(遼東總兵)으로서 요동(遼東) 일대를 통괄해, 여진족의 진무에 해당된다.
[편집] 생애
자는 여계(如契). 일찍이 명나라로 건너간 조선인(조선으로부터 망명한 여진족이라는 설이 있지만 신빙성이 낮다.) 이영(李英)의 자손으로, 요동철령위(랴오닝 성 톄링)의 지휘첨사의 자리를 대대로 세습하고 있었지만, 융경 4년(1570년)에 요동총병이 되어, 당시 침입이 격렬했던 여진족에 대한 방어에 임하게 되었다. 이성량은 군비를 확충하면서, 건주 여진, 해서 여진 등에 나누어져 있던 여진족이 명과의 교역권을 둘러싸 싸우고 있는 것에 개입해 내부 분열을 도모한 것으로, 요동의 안정에 큰 공적을 올렸다. 이 시기, 이성량의 후원을 얻어 세력 확대에 성공한 것이 후의 청 태조 누르하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요동을 통괄해, 지방의 실력자로서 할거 한 이성량은, 한편으로 군비의 유용 등 독직이나 전단이 많아, 만력 19년(1591년)에 탄핵 되어 실직되었다. 잠시 복직했지만, 만력 36년(1608년)에 파면되었다.
소생으로는 임진왜란 때 일본군과 싸운 이여송, 임진왜란과 사르후 전투에 참가한 이여백(李如柏) 등 9명의 자식이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들 일가를 이가구호장(李家九虎將)이라 불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