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야스시
이노우에 야스시(
연보 [편집]
- 1907년(메이지 40년) 5월, 홋카이도(北海道)의 아사히카와쵸(旭川町, 지금의 아사히카와 시)에서 군의관이었던 아버지 이노우에 하야오(井上隼雄)와 어머니 야에(八重) 사이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이노우에 집안은 시즈오카(靜岡) 현 이즈(伊豆) 유이가하라(湯ヶ島, 지금의 이즈 시) 지역 대대의 의원 집안이었다.
- 1908년(메이지 41년), 아버지가 한국에 종군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시즈오카 현의 이즈 유이가하라로 이주했다.
- 1912년(다이쇼 원년), 양친과 헤어져 호적상으로는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 1921년(다이쇼 10년), 시즈오카 현립 하마마쓰(浜松) 중학교(지금의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쓰키타北고등학교)에 입학한다.
- 1922년(다이쇼 11년), 시즈오카현립 누마즈(沼津) 중학교(지금의 시즈오카현립 누마즈히가시東고등학교)로 전학한다.
- 1930년(쇼와 5년),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金澤)시 제4고등학교 이과를 졸업하고, 본명과 글자만 다르고 발음이 비슷한 '이노우에 야스시(井上泰)'라는 필명으로 호쿠리쿠(北陸) 4현의 시인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동인시집 『일본해시인(日本海詩人)』에 작품을 투고하며 작시 활동을 시작했다. 규슈(九州) 제국대학 법문학부(法文學部) 영문과에 입학한다.
- 1932년(쇼와 7년), 규슈 제국대학을 중퇴하고, 교토 제국대학 문학부 철학과에 입학한다.
- 1935년(쇼와 10년), 교토 제국대학의 교수 아다치 분타로(足立文太郞)의 딸 후미코와 결혼한다.
- 1936년(쇼와 11년), 교토 제국대학 졸업. 『센터 마이니치(毎日)』에 투고한 소설이 입선되어 이를 계기로 마이니치(每日) 신문 오사카(大阪) 본사에 입사해 학예부(學藝部)에 배속되었다. 중일전쟁에 소집되어 출정했지만 이듬해에 의병제대하고 복직했다. 이때 그의 부하로 근무했던 인물로는 『하얀 거탑(원제: 白い巨塔)』, 『화려한 일족(원제: 華麗なる一族)』으로 한국에도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 야마사키 도요코(山崎豊子)가 있다. 전쟁 뒤에는 학예부부부장을 맡아 바둑의 혼인보전(本因坊戰)이나 장기의 명인전(名人戰) 운영도 맡게 된다.
- 1950년(쇼와 25년), 소설 『투우(闘牛)』로 제22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다.
- 1951년(쇼와 26년), 마이니치 신문사를 그만두고 이후 작품 창작과 집필, 취재 강연을 위해 여행한다.
- 1955년(쇼와 30년), 강연을 위해 고향 아사히카와를 방문한다. 이 해에 단편소설「이사(姨捨)」를 발표했다.
- 1964년(쇼와 39년), 일본예술원(日本藝術院) 회원이 된다.
- 1976년(쇼와 51년),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는다.
- 1982년(쇼와 57년) 이후, '세계평화어필7인위원회'의 회원을 맡아 힘쓴다.
- 1988년(쇼와 63년), 나라 실크로드 박람회의 통합프로듀서를 지냈다.
- 1991년(헤세이 3년), 사망. 계명(戒名)은 봉운원문화법덕일정거사(峰雲院文華法德日靖居士). 묘소는 시즈오카 현 이즈 시에 있으며 그의 장례는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가 집전했다.
- 2007년(헤세이 19년), 이노우에 야스시 탄생 100주년을 기려 그의 소설 『풍림화산(風林火山)』이 NHK 대하드라마로 방송되었다.
작품 경향 [편집]
그의 소설은 크게 「엽총」, 「투우」, 「빙벽」등 현대를 배경으로 한 것, 「아스나로 이야기」처럼 자전적 색채가 강한 것(후술)과 함께 역사를 소재로 한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역사 소설의 경우 「풍림화산」, 「사나다 군기(眞田軍記)」, 「요도 부인의 일기(원제: 淀どの日記)」같은 일본의 전국시대를 다룬 것이 많고, 중국사에서는 주로 「돈황(敦煌)」, 「누란(樓蘭)」, 「덴표의 용마루(원제: 天平の甍)」등의 서역을 소재로 다룬 것이 많다. 한국사에 대해서는 몽골의 압제에 놓인 고려의 1·2차 일본 원정을 배경으로 한 「검푸른 해협(원제: 風濤)」이 유일하다.
교묘한 구성과 시정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작품은 역사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소설은 각국어로 번역되었고, 펜클럽 회장을 맡고 있었을 무렵에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자주 거론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연극 무대 및 영화·드라마로의 각색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로방바(しろばんば)」, 「여름 풀과 겨울 바다(원제: 夏草冬濤)」, 「북쪽의 바다(원제: 北の海)」는 이노우에 야스시 자신을 모델로 한 주인공 이가미 고사쿠(伊上洪作)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이 될 때까지를 그린 자전적 작품이다. 「시로방바」는 이즈 유이가하라에서 보냈던 유년 시절, 「여름 풀과 겨울 바다」는 누마즈 중학교의 학생이었던 시절, 「북쪽의 바다」는 누마즈 중학교를 졸업한 뒤 누마즈에서의 겪었던 1년에 가까운 재수생 시절의 일들을 그린 것으로, 작가 주위에 실재했던 인물들이 모델로서 많이 등장한다. 특히 「시로방바」에 등장하는, 증조부의 첩으로 주인공과는 피가 섞이지 않은 「꿰매는 할머니(おぬいばあさん)」(실제 이름은 「아카노」)와의 생활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인격 형성을 말하는데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 밖에 노년의 친어머니 야에에 대해 쓴, 이노우에 야스시 만년의 단편 3부작으로 불리는 「꽃 핀 나무 아래서(원제: 花の下)」, 「달빛(원제: 月光)」, 「눈의 표면(원제: 雪の面)」이 있다.
기타 [편집]
- 일단 그는 홋카이도 태생이지만 출신지는 시즈오카 현이다. 수필 「고향 이즈」에서 그는 "나는 홋카이도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연감이나 명부 등에서는 나의 출생지는 대부분 시즈오카 현으로 되어 있다. 내가 쓸 때는 출생지는 아사히카와, 출신지는 시즈오카 현이라 구별해 쓰지만…"라고 적고 있다. 한편으로 「나의 자기 형성사(원제: 私の自己形成史)」속의 '자연과의 분방한 생활'에서는 "이 소년 시대를 보낸 원적지 이즈가 진정한 의미의 나의 고향이며, 여기서 나라고 하는 인간의 근저가 되는 것은 모두 만들어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 이노우에 야스시의 맏아들 이노우에 슈이치(井上修一)는 독문학자로서 도쿄대학 독문과를 졸업해, 히토츠바시(一橋) 대학·츠쿠바(筑波) 대학 교수를 거쳐 풀학원 대학(プール学院) 학장에 취임했다. 일본 독문학회나 독일어학문학진흥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세기말 빈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 천수를 다했다고 할 정도로, 늘그막의 암을 제외하면 잔병치레도 없었지만, 일본 문단에서는 애주가 순위로 거의 1,2위를 다투었으며, 예순, 일흔이 넘어서도 주량은 갈수록 늘기만 했다고 한다. 노벨상을 놓친 밤은 술자리에서 "이건 노멜상이구려"라며 지인들을 대접하기도 했다.
- 만년에 신란(親鸞)을 소재로 다룬 소설을 쓰려고 했으나 이루지 못했다.
- 일본화가 히라야마 이쿠오(平山郁夫)와는 일·중 문화 교류로 친했으며 관련 직무를 잇기도 했다.
- 신사나 불각, 일본사에도 조예가 깊어 여러 출판사의 관련 서적에 감수 및 편집을 맡았다.
| 이 글은 일본 사람에 관한 토막글입니다. 서로의 지식을 모아 알차게 문서를 완성해 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