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조선 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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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李琚, ? ~ 1502년 2월)는 조선중기의 학자, 문신으로, 왕세자 시절 연산군의 스승이었으며 춘추관편수관으로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했다.

영중추부사 이변(李邊)의 손자이며 임진왜란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의 증조부이며 정묘호란때 살해된 이완의 고조부이다. 과거 급제 후 연산군 즉위초 정3품 당하관인 통훈대부와 당상관인 통정대부로 승진했다. 본관은 덕수(德水)이고, 자(字)는 자미(子美)이다.

생애[편집]

생원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480년(성종 11년) 식년시 문과에 을과 6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1482년(성종 13년) 경연청 설경, 1483년(성종 14년) 홍문관 박사, 경연사경, 1484년(성종 15년) 경연검토관, 홍문관수찬을 지냈다. 1484년 암행어사로 나가 경기도를 시찰, 과천현감 최급(崔伋)을 오리(汚吏)로 잡아 봉고파직시켰다.

1486년 1월 승의랑 사간원정언, 1487년 이조좌랑, 1491년(성종 22년) 7월 통덕랑으로 승진하여 수(守)사헌부장령이 되었다.

1493년(성종 24년) 종친부전첨, 1494년 세자시강원보덕을 거쳐 연산군 즉위 초 통훈대부(정3품 당하관)로 승진, 장악원정지제교 겸승문원판교, 한학교수를 역임했다. 연산군 초에 그는 춘추관편수관으로 《성종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497년 1월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로 승진, 순천도호부사에 임명되었다. 1499년 7월 임기만료로 행호군이 되었고, 이후 병조참의가 되었다. 1502년 2월에 사망했다.

가족 관계[편집]

장남 이백복은 음보로 관직에 올라 1535년(중종 30) 형조좌랑을 거쳐 통훈대부 함종현령에 이르렀고, 차남 이백록은 생원시에 합격한 후 선교랑 평시서봉사에 이르렀다. 이순신은 둘째 아들 이백록의 손자이다.

  • 증조부 : 이공진(李公晉)
    • 할아버지 : 이변(李邊)
      • 숙부 : 이효종(李孝宗)
      • 아버지 : 이효조(李孝祖)
      • 어머니 : 행주기씨(幸州奇氏, 기분(奇賁)의 딸)
        • 부인 : 임피진씨(臨陂陳氏, 현령 진세번의 딸)
          • 아들 : 이백복(李百福)
          • 아들 : 이백록(李百祿, 호는 풍암(楓巖), 이순신의 조부)
          • 자부 : 원주변씨(原州邉氏, 생원 변성의 딸)
            • 손자 : 이정(李貞, 1511년 - 1583년, 이순신의 부, 이완의 조부)
            • 손부 : 초계변씨(草溪卞氏, 변수림의 딸)
            • 손부 : 이름 미상, 이정의 첩
            • 손자 : 이현(李賢)
            • 손부 : 초계변씨(草溪卞氏, 손자 이현의 처
            • 손자 : 이귀(李貴)
            • 손부 : 우계이씨(羽溪李氏), 이귀의 처, 참봉 이준근의 딸

평가[편집]

왕조실록에 의하면 '성격이 강직하여 언관으로 있으면서 부정한 관리에 대해서는 관직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탄핵하였다. '고 평가했다. 또한 왕조실록은 '이거는 젊었을 때에는 청직(淸直)하다고 이름이 났으나, 순천부사가 되어서는 자못 청렴하지 못하였다' 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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