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반티에우
| 임기 | 1967년 9월 3일 - 1975년 4월 21일 |
|---|---|
|
전임: 판칵수(제8대)
후임: 쩐반흐엉(제10대)
|
|
| 출생일 | 1923년 4월 5일 |
| 출생지 | |
| 사망일 | 2001년 9월 29일 (78세) |
| 사망지 | |
| 종교 | 카톨릭 (전 불교) |
응우옌반티에우(베트남어: Nguyễn Văn Thiệu/ 阮文紹완문소, 1923년 4월 5일 ~ 2001년 9월 29일)은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대통령이다.
목차 |
[편집] 생애
[편집] 초기 생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닌투언 성(Tỉnh Ninh Thuận)의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비엣민에 참가했지만 1년만에 이탈하여, 그 후 해군학교에 입학하였고, 그 뒤에 달랏의 사관학교에 전학갔다. 1951년에 졸업 후에는 베트남국의 국군 안에서 착실하게 출세하여, 호찌민이 지휘하는 북베트남과의 전투의 지휘를 맡아 두각을 나타냈다.
[편집] 대통령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의 장군이였을때 1965년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에 응우옌까오끼와 함께 베트남 공화국의 실권을 잡아, 국가 지도 평의회 의장(국가원수)으로 취임했다.
그 후, 베트남 전쟁중에 1967년 9월 3일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38%의 득표를 얻어 응오딘지엠 이후로 대통령으로 취임하였고, 1971년 선거에서는 재선이 되었다.
[편집] 정권
열혈한 반공주의자이였다. 실제로 임기중은 항상 반공 정책을 시행하여,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해방 민족 전선과 베트남 전쟁에서 싸웠다. 그러나 그의 정권에는 다른 남베트남의 정권과 같이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타락해져가고, 그리고 남베트남군의 규율은 사기도 내려갔고, 완전한 당나라 군대였다.
1973년 미군이 철수하고, 북베트남군의 남하를 시작하자, 최종적으로 미국 정부에 군사 원조를 요청하지만 거부되었고, 사이공 함락 직전에 1975년 4월 21일에 대통령을 사임했다. 덧붙여서 사이공 함락시에 자택으로부터 대량의 금괴를 옮겨 도망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지만 진상은 불명하다.
[편집] 망명
사이공이 함락된 뒤에 미군의 도움으로 중화민국에 망명하였고,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갔다. 최종적으로 미국으로 옮겨가 나머지 인생을 보내다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