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아 후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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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후케
Alexanderandjulia.jpg
바텐베르크 공비
후임자 헤센 공녀 빅토리아
배우자 헤센의 알렉산더
자녀 에르바흐쇤베르크 공작 부인 마리아
밀포드 헤이븐 후작 루이스
불가리아공 알렉산더
바텐베르크 공자 하인리히
베텐베르크 공자 프란츠 요제프
본명 Julie Therese Salomea Hauke​​
왕가 바텐베르크 가문
부친 한스 모리츠 후케
모친 소피 라퐁텐
출생 1825년 11월 24일(1825-11-24)
폴란드
사망 1895년 9월 19일 (69세)
헤센대공국 유겐하임의 하일리젠베르크성
종교 가톨릭에서 루터교 개종

바텐베르크 대공비 율리아 후케(Julia Hauke, Princess of Battenberg, 1825년 11월 12일 - 1895년 9월 19일)는 폴란드의 귀족 여성이다. 바텐베르크 공비. 독일 헤센 대공자 알렉산더의 아내, 바텐베르크 집안의 시조.

현 영국 왕위 후계자와 스페인 왕가는 율리아의 후손이다.

생애[편집]

탄생과 유년[편집]

한스 모리츠 후케와 아내 소피의 막내 딸로, 폴란드 왕국의 바르샤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독일계 폴란드 군인으로, 오스트리아 · 이탈리아 · 독일 각지에서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싸워, 반도 전쟁에도 참전 했다. 그는 훗날 러시아 제국군에 몸 담았다. 그의 능력을 높이 산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로부터 1829년에 폴란드 왕국의 국방 차관과 백작칭호를 받았다. 이듬해 1830년 11월 폴란드에는 폭동이 일어났고, 아버지는 도망가던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을 총격으로부터 감싸다 가족의 눈앞에서 사망했다. 어머니 소피는 정신적 충격으로 얼마 뒤 사망했기 때문에, 황제가 남겨진 자녀들을 후견인이 되어 거뒀다.

결혼과 말년[편집]

성장한 율리아는 황태자 알렉산더의 아내인 마리아의 시녀가되었다. 황태자비의 오빠로 러시아 군인으로 복무하던 알렉산더는 자주 동생을 방문하였고, 둘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황제는 왕족과 평민 출신의 백작녀의 결혼을 승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도망갔고, 1851년 10월 28일 브레슬라 우(현 브로츠와프 당시 프로이센 령 슈레지엔)에서 결혼했다. 율리아는 왕족과 결혼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기에 둘의 결혼은 귀천상혼이 되어, 알렉산더와 그 자녀들은 헤센 계승권을 잃었다. 그들은 헤센으로 돌아왔고, 1851년 알렉산더의 형인 헤센 대공 루트비히 3세는 율리아에게 바텐베르크 백작부인의 칭호를 주었고, 후에 바텐베르크 공비로 승격되어 자녀들은 바텐베르크공자, 공녀의 칭호를 받게된다. 1875년 5월, 율리아는 가톨릭에서 루터교로 개종했다. 율리아는 하일리젠베르크(헤센 남부 유겐하임 근교)에서 사망했다.

자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