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문거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윤문거(尹文擧, 1606년 ~ 1672년)는 조선학자이다. 는 여망, 는 석호이며 본관파평이다. 윤증의 백부이고 우계 성혼의 외손자이다.

인조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부수찬 등을 지냈다. 병자호란(1636년) 때 아버지 윤황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모셨다. 승지, 이조참의, 대사간, 부제학,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지냈다. 그는 글씨에 뛰어났으며, 죽은 뒤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석호집》이 있다. 노성(魯城)의 노강서원(魯岡書院), 석성(石城)의 봉호서원(蓬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경(忠敬)이다. 또한 그의 직계후손이 윤기중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와 그 아들 윤석열 대통령이다.

저서[편집]

  • 《석호집》

가족[편집]

  • 할아버지 윤창세(尹昌世)
  • 아버지: 윤황(尹煌),호 팔송(八松) 대사간, 이조참의, 諡 문정(文正)
  • 어머니: 창녕성씨, 우계 성혼의 女
    • 배위: 평창이씨 이전(李瑑)의 녀
      • 아들: 윤단 - 송시열의 사위
    • 형: 윤순거(尹舜擧, 1596년 - 1668년) 호 동토(童土)
    • 제: 윤선거(尹宣擧, 1610년 - 1669년) 호 노서(魯西), 諡 문경(文敬)
  • 숙부: 윤전(尹烇, 세자시강원필선) 호 후촌(後村), 諡 충헌(忠憲)
  • 숙모: 해평윤씨, 해평부원군 윤근수의 손녀, 윤환(尹晥)의 딸
    • 사촌 형: 윤원거(尹元擧, 1601년 - 1672년) 호 용서(龍西)
    • 사촌 누이: 파평 윤씨
    • 사촌 매부: 송시형(宋時瑩, 송시열의 사촌 형[15])

행 력[편집]

  • 선조 39 1606 1세 8월 26일, 부친의 任所 北靑府衙에서 태어나다.
  • 인조 1 1623 18세 平昌李氏와 혼인하다.
  • 인조 5 1627 22세 호란이 일어나자 부친을 따라 江都로 들어가다.
  • 인조 8 1630 25세 生員試에 합격하다. 대사성 趙翼의 칭찬을 받다.
  • 인조 11 1633 28세 겨울, 式年 文科에 급제하다. 權知副正字가 되다.
  • 인조 13 1635 30세 4월, 注書가 되다. 이후 說書, 檢閱을 지내다.
  • 인조 14 1636 31세 8월, 정언이 되다. 斥和議를 陳啓한 일로 체차되다. ○ 10월, 예조 좌랑이 되다. 곧 병조 좌랑이 되다. ○ 12월, 호란이 일어나자 扈駕하는 부친을 따라 南漢山城으로 가다.
  • 인조 15 1637 32세 1월, 상소하여 斥和臣으로 지목된 부친을 대신하여 청 나라에 가기를 청하였으나, 윤허받지 못하다. ○ 3월, 부친이 斥和人의 죄목으로 永同縣으로 귀양가다. ○ 6월, 정언이 되다. ○ 10월, 풀려난 부친을 錦山에서 시봉하다. ○ 12월, 부수찬이 되다.
  • 인조 16 1638 33세 봄, 巡檢使 從事官이 되어 三南을 돌다.
  • 인조 17 1639 34세 6월, 부친상을 당하다. 곧 伯氏 尹勳擧 喪을 당하다.
  • 인조 19 1641 36세 8월, 服을 마치고 동생 尹宣擧와 함께 錦山 새 거처로 들어가다. 이듬해 市南 兪棨가 麻霞山 아래로 이사와 함께 강학하다.
  • 인조 20 1642 37세 6월, 修撰으로 召命이 내렸으나 상소하여 면직을 빌다.
  • 인조 21 1643 38세 6월, 堤川 縣監이 되다.
  • 인조 22 1644 39세 여름, 아들 尹摶이 宋時烈의 사위가 되다.
  • 인조 23 1645 40세 관직을 버리고 돌아오다.
  • 인조 24 1646 41세 1월, 石城 鳳頭村에 寓居하며 江湖의 정취를 즐기다. ‘石湖’의 號가 이에 유래하다. ○ 4월, 역적 安益信 등을 고발한 공로로 通政階에 오르다.
  • 인조 25 1647 42세 봄, 遯巖書院에 가서 愼獨齋 金集을 배알하다. ○ 여름, 市南 兪棨와 黃山書院에서 만나다.
  • 인조 26 1648 43세 5월, 五衛將이 되다. 入京하여 謝恩하다. ○ 9월, 모친상을 당하다.
  • 효종 1 1650 45세 12월, 동부승지가 되었다가 곧 체차되다.
  • 효종 2 1651 46세 봄, 水原에 머물다. 廣州 九浦로 가서 浦渚 趙翼을 배알하고, 楊州 石室로 가서 淸陰 金尙憲을 배알하다. ○ 4월, 동부승지가 되다. 상소, 사직하다. ○ 7월, 東萊 府使가 되다.
  • 효종 3 1652 47세 1월, 收債倭 平成扶가 나오자 狀啓하여 債錄을 비변사에 알리다. ○ 3월, 補役廳을 설치하고, 경내에 鄕約을 실시하다. ○ 6월, 狀啓로 청하여 倭館 大廳에서 開市하는 법을 복구하다. ○ 8월, 경내 忠烈祠를 移建하다. ○ 12월, 館倭의 난동으로 파직되어 돌아오다.
  • 효종 4 1653 48세 2월, 坡山의 牛溪, 栗谷 두 선생의 묘에 表碣을 세우다. ○ 8월, 李敬輿의 천거로 서용의 명이 내리다. ○ 9월, 동부승지로 召命이 내리니 入京하여 사은한 뒤 곧 상소, 체차되다. 이후 호조 참의, 경주 목사의 제수에 모두 呈狀, 체차되다.
  • 효종 5 1654 49세 2월, 형조 참의가 되고, 이후 공조와 이조 참의, 대사간이 되었으나 모두 상소하여 체차되다.
  • 효종 6 1655 50세 1월, 石城 甑山에 寓居하다. ○ 3월, 浦渚 趙翼을 哭하다.
  • 효종 7 1656 51세 1월, 대사간이 되는 등 수차례의 제수에 모두 呈狀, 체차되다. ○ 윤5월, 愼獨齋 金集을 哭하다.
  • 효종 8 1657 52세 4월, 이조 참의가 되고, 이후 대사성, 다시 이조 참의가 되었으나 모두 呈狀하여 체차되다.
  • 효종 9 1658 53세 滄江書院의 院長帖을 받다.
  • 효종 10 1659 54세 이후 부제학, 대사헌, 대사간, 이조 참판 등이 되었으나 모두 呈狀하여 체차되다.
  • 현종 10 1669 64세 1월, 仲氏 尹舜擧를 哭하다. ○ 4월, 季氏 尹宣擧를 哭하다. ○ 8월, 대사헌이 되었으나 呈狀, 체차되다.
  • 현종 13 1672 67세 4월, 別諭 召命이 내렸으나 상소하여 사양하다. ○ 5월, 公州 萬梅里로 移居하다. ○ 10월 8일, 부인상을 당하다. 尼山縣 長久洞 墓下에 移處하다. ○ 동월 28일, 長久洞 齋舍에서 졸하다. ○ 資憲大夫 吏曹判書에 증직하다.
  • 현종 14 1673 - 2월, 尼山 남쪽 葛山里에 장사 지내다. - 아들 尹摶 등이 遺事를 만들고, 宋時烈이 神道碑銘을 짓다.
  • 숙종 3 1677 - 尹拯이 墓表를 짓다.
  • 숙종 8 1682 - 尼山 魯岡書院에 종향하다. 禮官이 致祭하다.
  • 숙종 19 1693 - 石城 蓬湖書院이 낙성되어 배향하다.
  • 영조 32 1756 - 議政府 左贊成에 추증하고, ‘忠敬’으로 시호를 내리다.
  • 순조 16 1816 - 禮官이 致祭하다.

같이 보기[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