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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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 劉) 또는 (兪, 庾)씨는 중국 및 한국의 성씨이다.

개요[편집]

류(柳)씨는 본래 발음이 '류'이지만, 두음법칙을 적용한 '유'와 원음 '류'를 혼용하고 있다.

류/유(劉)씨도 본래 발음이 '류'이지만[1] 대부분 두음법칙에 따라 '유'로 표기하고 있다.

유(兪)씨와 유(庾)씨는 두음법칙과 상관 없이 본래 발음이 '유'이다.

류(柳)씨는 공문서에서는 두음법칙에 따라 ‘유’로 표기해 왔으나,[2] 2007년 8월 1일부터 ‘류’로도 쓸 수 있도록 허가하였다.[3][4] 류(柳)씨는 한글 표기를 할 때 원음 '류'와 두음법칙을 적용한 '유'를 선택할 수 있다.

버들 류 柳[편집]

한국[편집]

류(柳)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603,084명으로 조사되어, 대한민국 성씨 인구 순위 19위이다. 본관은 문화, 전주, 고흥, 풍산, 진주, 서산, 선산 등 55본이 있다.[5] 문화 류씨 측에 의하면, 한국의 류(柳)씨는 고려 태조 왕건의 경우와 같이 신라말 고려초에 성씨를 창성한 것이라고 한다. 황해도 토착인 "차달"이 본래 성씨가 없다가 신라-고려 전환기에 류(柳)씨로 창성하였다고 한다. 현재 여러 본관의 柳씨는 문화 류씨를 대종으로 한 분적종도 있고 그렇지 않는 본관도 있다. 한편 조선 초기 기록인 <世宗實錄地理志 文化縣> 편에는 문화 류(柳)씨는 내성(來姓)이라고 되어 있어, 문화 류씨가 중국이나 다른 지역에서 왔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6]

  • 문화 류씨(文化 柳氏)의 시조 류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당시 유주(儒州 :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일대)의 호족이었다. 2000년 인구는 284,083명이다.
  • 서산 류씨(瑞山 柳氏)의 시조 류성윤(柳成澗)은 문화 류씨의 시조인 류차달(柳車達)의 9세손이다. 류성윤은 고려시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참지정사(參知政事)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고,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졌다. 서녕 유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9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14,827명이다.
  • 진주 류씨(晉州 柳氏)는 류정(柳挺)을 시조로 하는 토류계(土柳系)와 류차달(柳車達)의 9대손 류인비(柳仁庇)를 시조로 하는 이류계(移柳系)의 서로 다른 두 계통이 있다. 2000년 인구는 60,104명이다.
  • 풍산 류씨(豊山 柳氏)의 시조 류절(柳節)은 고려 초에 호장(戶長)을 지낸 인물이다. 풍산류씨세보(豊山柳氏世譜)에 따르면 류절의 증손 류백(柳伯)이 고려 충렬왕 때 은사(恩賜)로 급제하여 가문의 기틀을 세웠고, 7세 류종혜(柳從惠)가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역임하고 낙향해 하회동(河回洞)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풍산 류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2명을 배출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 류성룡이 있다. 2000년 인구는 13,341명이다.
  • 고흥 류씨(高興 柳氏)의 시조 류영(柳英)은 고려 문종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고 추정될 뿐 상계는 전하는 문헌이 없어 알 수 없다. 류영의 7세손 유청신(柳淸臣)이 고려 충선왕 때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오른 후 고흥부원군(高興府院君)에 봉해졌다. 2000년 인구는 53,981명이다.
  • 전주 류씨(全州 柳氏)는 시조가 다른 세 계통이 있다. 각 계파는 류혼(柳渾), 류습(柳濕), 류지(柳池)를 각각 시조로 하나 문적(文蹟)이 부실(不實)하여 시조의 상계는 알 수 없다. 2000년 인구는 61,650명이다.
  • 영광 류씨(靈光 柳氏) 시조 류언(柳漹)의 손자 류규(柳規)가 1426년(세종 8) 무과에 급제하여 예종 때 행첨지중추부사(行僉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류자환(柳子煥)은 계유정난(癸酉靖難) 때 정난공신 3등에 오르고 도승지·대사헌·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류규의 서자인 류자광은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주도하며 공신의 지위에 올랐다. 2000년 인구는 1,475명이다.

중국[편집]

중국의 류(柳, Liu)씨는 크게 4가지 부류가 있다. 주(周)나라 제후국이자 주나라 왕족이 세운 노(魯)나라 계열과 초한쟁패기의 서초(西楚) 계열의 류(柳)씨, 중국 후한시기 고대 운남 애뢰국(哀牢國)의 류(柳)씨들, 그리고 중국 춘추전국시대 진(陳)나라 군주 중 한명인 회공(懷公) 류(柳)의 자손들 등이다. 그 중 주요 원류 두가지를 먼저 설명하자면, 첫 번째는 노나라 공족(公族)인 류하혜(柳下惠)가 유하에 살면서 후손들이 류(柳)씨로 창성하였고, 두 번째는 서초 황제 의제(義帝)가 류(柳; 현재의 후난 성 창더) 땅에 거주하여 후손들이 류(柳)씨로 창성하였다.[7] 이 중 두 번째인 의제 계열 류(柳)씨에 대해 설명하자면, 사마천의 <史記 項雨本紀>에 의하면 본래 의제(義帝)는 살아생전 우이(盱台), 팽성(彭城)에 도읍하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항우에 의해 침(郴: 현재 후난 친저우)으로 쫓겨가는 중에 항우의 명을 받은 영포의 장수 등에 의해 시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류(柳:현재 후난 창더)에 거주하였다는 기록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류우석(劉禹錫)이 인용한 <義陵紀>에 의하면 류(柳)땅 사람들이 의제가 침현에 이르러 시해되자, 류(柳)땅 사람들이 어찌 '우리 왕(吾王)'을 죽였는가 하며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고조 류방이 이를 듣고 옳게 여겨 류(柳)땅을 의릉현(義陵縣)으로 하였고 훗날 서한(西漢) 초에 다시 무릉현(武陵縣)으로 고쳐진다고 하였다.(劉禹錫《武陵書懷五十韻》序稱:“常林《義陵記》雲:初,項籍殺義帝于郴,武陵人曰:‘天下憐楚而興,今吾王何罪乃見殺?’郡民缟素哭于招屈亭。高祖聞而義之,故亦曰義陵。”)[8] 이런 측면에서 봤을때, 류성(柳城) 곧, 의릉, 무릉은 의제와 직, 간접적으로 깊은 관련이 있음이 확실하고 의제가 최소한 침현으로 가기 위해 이 류(柳)땅에 꽤 거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당시는 선조의 거주지나 선조와 관련이 있는 지명을 씨(氏)로 하는 것이 자명한 바,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의제의 후손들이 류(柳)씨로 칭했다는 것은 상당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오대에서 송대에 걸쳐 만들어진 <百家姓>에 현재 원류를 밝혀 나오는 거의 모든 중국 서적에서 이 의제 계열 류(柳)씨도 주요 류씨 근원으로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송대(宋代) 장정(章定)이 편찬한 《名賢氏族言行類稿》에도 이 의제 계열 류(柳)씨에 대한 설명이 기술되어 있다. 참고로 서초(西楚)는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와는 다르게 오, 월이 기반을 두었던 저장성에서 기원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류(柳)씨는 이 두 부류 이외에 소수민족의 성씨로도 존재한다. 곧, 중국 후한(後漢)시기, 운남성에 위치한 애뢰국(哀牢國) 말기의 황제들인 류승(柳承), 류모(柳貌) 부자는 모두 류(柳)씨였다.[9] [10] [11] 네 번째는 <姓纂>이라는 책에 보면 춘추전국시대 진(陳)나라 군주인 회공(懷公) 류(柳)의 자손들이 선조의 이름을 성으로 삼아 이어졌다고도 되어 있다.

묘금도 류(유) 劉[편집]

한국[편집]

류/유()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서 242,889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32위이다. 본관은 강릉, 거창, 배천, 충주 등이 있으며, 가장 인구가 많은 본관은 강릉 유씨이다.

  • 충주 유씨(忠州劉氏) 시조 유긍달(劉兢達)은 통일신라 말기 충주 지방의 호족이다. 그의 딸은 고려 태조의 셋째 부인인 신명순성왕태후(神明順成王太后)이다. 사후 태사내사령(太師內史令)에 증직(贈職)되었다. 2000년 인구는 1,597명이다.
  • 거창 유씨(居昌劉氏) 시조 유전(劉荃)은 송나라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와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고 한다. 『을묘보(乙卯譜)』 서문에는 유전이 한태조(漢太祖) 고황제(高皇帝)의 40세손으로 왕안석(王安石)에게 간언하다가 고려 문종 때에 고려로 들어와 영일군(迎日郡)에 터를 잡은 후로 경상도에서 세거하였다고 한다. 유전(劉筌)의 첫째 아들 유견규(劉堅規)가 거창군(居昌君)에 봉해져서 본관을 거창으로 했다. 2000년 인구는 19,419명이다.
  • 배천 유씨(白川劉氏) 중시조 유국추(劉國樞)는 유전(劉筌)의 8세손으로 고려에서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를 지냈다고 하며,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추증되어 배천군(白川君)에 추봉되었다고 한다. 2000년 인구는 2,252명이다.
  • 강릉 유씨(江陵劉氏) 중시조 유창(劉敞)은 유전의 12세손이다. 그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옥성은 강원도 옥계면 일대 옛 이름이므로 후손들이 그를 중시조로 삼아 강릉을 본관으로 하고 있음이 『거창구보(居昌舊譜)』 서문에 실려 있다. 『씨족원류(氏族源流)』에 의하면 유창(劉敞)은 초명이 유경(劉敬)으로 1371년(공민왕 20) 신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시호는 문희(文僖)이다. 강릉 유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8명을 배출하였다.[12] 2000년 인구는 178,913명이다.
  • 연안 유씨(延安劉氏) 시조 유극량(劉克良)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는 노비 출신이었으나, 홍섬의 배려로 노비 신분을 면제받고,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1년(선조 24) 전라좌수사가 되었고, 곧 조방장(助防將)으로 전임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활약하였다.

중국[편집]

중국의 '류'(劉, 刘 : Liu, Lau, Lao)씨는 6~7가지 계통이 있다. 주나라 이후 정(鄭)나라에서 류(劉)씨가 파생되었다. 한고조 유방과 어머니 류오(劉媼)도 류씨로, 남부 초나라 영토였던 저장성 출신이다. 그리고 요족들이 Liu, Lao 라는 성을 쓰고 있다. 또한 강소성 호족 항전이 유방에게 투항하고 류(劉)씨로 개칭하였다. 삼국시대 유봉은 본래 구(寇)씨였다. 흉노 어부라의 자손이 류(劉)씨로 변경하였다. 북위 선비족 출신의 독고(獨孤)씨가 류씨로 변경하였다. 몽골족들도 비교적 간단한 성씨인 류(Liu, Yu)씨를 성으로 많이 사용한다. 현재 중국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성씨이다.

서기 120년경 류헌(劉憲)은 낙랑태수였는데 왕조에게 피살된 기록이 전한다. 류인원(劉仁願)와 류인궤(劉仁軌)는 당나라 나당연합군의 무장으로 참가했다.

그러할 유 兪[편집]

한국[편집]

(兪)씨는 2000년 기준 178,209명으로, 대한민국 성씨 인구 순위 35위이다. 본관은 기계, 창원, 무안, 강진, 고령 등이 있다.

  • 기계 유씨(杞溪 兪氏)의 시조는 신라 6관등 아찬을 지낸 유삼재(兪三宰)이다. 후손 유의신(兪義臣)이 신라 멸망 후 고려 왕조에 불복하자, 고려 태조 왕건이 그를 기계현(杞溪縣) 호장(戶長)으로 강등시킨 이후로 후손들이 기계를 본관으로 정하였다. 기계 유씨고려시대에는 관직에 오르지 못했으나, 조선시대에는 문과 급제자 90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113,430명이다.
  • 무안 유씨(務安 兪氏) 시조 유순직(兪舜稷)은 고려 때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검교소부소감(檢校小府少監)을 역임하였다. 그의 증손 유천우(兪千遇)가 고려 고종 때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하고, 원종 때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를 지낼 때 김인준(金仁俊) 등과 함께 무신정권의 최의(崔誼)를 주살(誅殺)하는 데 공을 세워 정당문학(政堂文學)을 지내고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에 올랐다. 충렬왕때는 찬성사(贊成事)를 역임했다. 그가 죽은 후에 무안부원군(務安府院君)에 추봉되었다.[13] 2000년 인구는 6,629명이다.
  • 강진 유씨(康津 兪氏)의 시조 유적(兪迪)은 강진(현 전라남도 강진군)에 살아온 사족(士族)의 후예로서 고려 말에 감문위(監門衛)로 도성 문을 경비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2명을 배출하였다. 2000년 인구는 1,589명이다.

중국[편집]

중국에는 '유'(兪, Yu, Liu, Shu)씨가 10가지 정도 계통이 있다. 베이징 방언은 'Yu'이나, 'Liu'로 표기하기도 한다. 고대에 유(兪)족이라는 소수민족이 주나라 중엽에 유씨로 창성하였다. 정나라, 위나라, 초나라, 공족이 유(兪)씨로 창성하였고, 그 외 금이, 회, 만족, 토가족, 지금은 사라진 유족이 사용한 성씨다.

곳집 유 庾[편집]

한국[편집]

(庾)씨는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조사에서 16,802명으로 조사되어, 한국 성씨 인구 순위 103위이다. 본관은 평산, 무송 2본이다.

평산 유씨(平山 庾氏)의 시조 유금필(庾黔弼)은 평주(지금의 황해북도 평산군) 출신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통일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통합삼한익찬공신(三重大匡統合三韓翊贊公臣)에 봉해졌다. 유금필의 5세손 유녹숭(庾祿崇)이 추밀원사(樞密院使) 겸 태자빈객(太子賓客),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고, 무송부원군(茂松府院君)에 봉해지자 무송 유씨로 분적하였다.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명을 배출하였다.[14]

중국[편집]

중국의 '유'(庾, Yu)씨는 초나라 관직에서 나온 성씨라고 전한다. 관직에서 나온 성이므로 호족 성씨이며, 저장 성장쑤 성 사람들이 사용하는 성씨이다.

기타 유씨[편집]

몽골족에도 류, 유(兪), 유(庾)씨가 있고, 류, 유로 발음되는 留, 유로 발음되는 由, 余, 餘, 尉, 娛, 娱 등 20여개의 성씨 가운데도 몽골족이 있다. 余, 餘는 한국에서는 여지만, 중국에서는 유, 유어다. 기원전 2500년전 몽골족의 조상 가운데 하나였던 서융족이 중국에 남하하여 유씨가 되었고, 진나라 때 서융족 유여(由余, 여여)가 귀화했다가 다른 유(여)씨로 바꾸었다. 고대 한반도 북방에는 동호라는 민족이 있었는데, 그들이 후에 중앙아시아로 이주했다.

중국에는 유로 발음되는 성씨가 20여개 넘는다. 그 가운데 정확하게 Liu로 발음되는 성씨는 3~4가지, 20여 계통이 있는데 일부는 계통이 중복된다. 모두 합하면 주나라, 초나라, 요족 계통이 가장 많다. 유씨와 여씨는 같지는 않지만, 여는 중국에서 "유어"로 발음하기 때문에 영문으로 Yu로 표기한다. 중국, 몽골에서 유, 여는 흔한 성으로 동아시아 여러 민족, 국가에서 쉽게 발견된다. 려(呂, 余, 餘)의 광둥어는 류, 루이, 이다. 광둥어가 고대 중국의 발음 체계에 가깝다.

한국은 고려 이전 까지도 성이 없던 사람이 많았으며, 고려 초기 왕건 휘하의 장수 가운데 성을 바꾼 경우가 있다. 유는 비교적 간단한 성으로 문화 류씨을 비롯하여 한국 토착인이 존재한다. 조선씨족통보에는 선조을 모르는 경우 중국 인명 출자을 검증없이 인용하였는데, 그 내용이 오류라는 점이 몇몇 성본에서 나타났다. 유(柳, 兪, 庾)는 동아시아 모든 국가에서 한족을 비롯한 소수민족, 개별 토착인들이 흔히 사용되는 성이다.

주석[편집]

  1. http://hanja.naver.com/hanja?q=%EF%A7%87
  2. 이-데일리
  3. "잃어버린 姓 되찾는다" 환영 일색 - 2007년 연합뉴스 기사
  4. 성씨 ‘柳ㆍ羅ㆍ李’→`류ㆍ라ㆍ리'로 쓸 수 있다, 한겨레, 2007-07-29
  5. 두산백과 - 류(柳)
  6. 世宗實錄地理志 文化縣
  7. http://zh.wikipedia.org/wiki/%E6%9F%B3%E5%A7%93
  8. http://tc.wangchao.net.cn/baike/detail_535909.html
  9. http://zh.wikipedia.org/wiki/%E5%93%80%E7%89%A2
  10. http://b5.secretchina.com/news/13/01/18/483100.html
  11. http://b5.secretchina.com/news/13/01/18/483100.html
  12. 강릉 유씨 - 한국학중앙연구원
  13. <김진우의 성씨이야기> 강진유씨, 고령유씨, 무안유씨
  14. 무송 유씨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