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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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학교 UCL
University College London
University College London -quadrant-11Sept2006 (1).jpg
표어 최고의 보상을 받을 만한
우수한 모든 이들은 오라

라틴어: Cuncti Adsint Meritaeque
Expectent Praemia Palmae

영어: Let All Come Who By Merit
Deserve The Most Reward

설립 1826년
종류 공립대학
총장 Professor Michael Arthur
국가 잉글랜드 잉글랜드
위치 런던 블룸스버리
학생 수 29,000
교직원 수 11,000
상징 공리주의
교색                                                
웹 사이트 http://www.ucl.ac.uk/

런던대학교 UCL은 1826년에 설립된 영국 런던에 위치한 연구 중심의 공립 종합대학교이다. 대학 명칭은 University College London 혹은 머리글자를 따 UCL이라고도 불린다. 약 150여개국에서 온 학생들과 교직원들로 구성된 만큼 모토 또한 '런던의 글로벌 대학교'라고 쓰고 있다.

1826년 제러미 벤섬의 영향을 받은 제임스 밀과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영국 최초의 민간대학으로 설립하였다. 영국 국적의 성공회 남성 신자만을 대상으로 교육한 옥스퍼드대학교케임브리지대학교와 달리 영국 대학 처음으로 계급, 종교, 성별, 인종에 관계없이 학문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UCL은 연구 중심의 종합대학교로, 런던왕립대학교, 런던정경대학교런던대학교를 구성하는 대학들 가운데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가장 규모가 크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러한 인본주의자유주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9년까지 16개 기관을 합병하며 성장하였고, 경쟁력을 더 높이기 위하여 2002년 임페리얼 칼리지와의 통합과 동시에 런던 대학교 탈퇴를 논의하였으나, 인본주의와 자유주의 전통이 훼손될 것을 염려한 교수진과 학생 그리고 동문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러한 자유주의 전통은 인도의 간디타고르,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 등 동양 유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국 최초로 유대인, 비국교도 및 가톨릭교도들에 대한 입학이 허용된 곳이기도 하다.

UCL의 주 캠퍼스가 있는 블룸즈버리(Bloomsbury)는 바로 앞뒤로 영국도서관·영국박물관이 위치해 있을만큼 런던의 심장부이면서 유서 깊은 지역이다. 그 밖에 인근의 고든 스트릿과 고든 스퀘어에도 건물이 있으며, 런던 곳곳에 대학교 건물이 흩어져 있다. 부속기관으로 도서관·페트리 이집트고고학박물관·그랜트동물비교학박물관·지질학컬렉션·아트컬렉션·고고학수집연구소·민족지학컬렉션·골턴컬렉션·사이언스컬렉션·UCL의학병원·암연구소·이종문화학연구소·나노테크연구센터 등이 있다.

UCL은 1913년 아시아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1944년 방사성 동위 원소를 발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오토 한, 1962년 DNA의 이중 나선의 구조를 밝힌 업적으로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크릭,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찰스 카오 등 25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3명의 필즈상 수상자, 케냐의 국부 조모 케냐타, 인도 전 총리 마하트마 간디, 일본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플레밍의 법칙을 고안해낸 과학자 존 앰브로즈 플레밍과 양자역학과 블랙홀의 대가 로저 펜로즈, 데시벨 단위와 전화기의 아버지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스릴러 영화의 대부 앨프리드 히치콕다크 나이트인셉션을 제작한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BBC의 인기 진행자인 조나단 로스 그리고 세계적인 얼터너티브 록 밴드 콜드플레이 등을 배출하였다.


세계대학순위[편집]

런던대학교 UCL은 수년간 세계대학순위에서 5위권 내를 유지하며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MIT, 하버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평가기관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Quacquarelli Symonds[1] 4위 7위 4위 4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학평가기관이며 많은 언론의 기준이 되는 QS는 2009년 이래로 2011년 만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UCL을 옥스퍼드 대학교보다는 높고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바로 다음인 세계 4위로 평가하고 있으며 데일리 텔레그래프[2]파이낸셜 타임스[3] 등과 같은 주요매체들은 이와 같은 결과를 옥스브리지의 명성이 독보적이던 영국대학교육의 최상위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있다고 분석하였다.

한국어 명칭[편집]

University College London을 한국어로 번역할 시 혼란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College를 단과대학으로 University를 대학교로 번역하는데 이는 미국식 표현이며 영국에서 단과대학은 주로 Faculty 또는 School이 사용된다. 따라서 UCL이 소속된 연합체인 University of London이 런던대학교이기 때문에 UCL을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취급하여 런던대학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또한 한국에서 대학이라는 명칭은 주로 2년제 전문대를 지칭하므로 종합대학교인 UCL을 런던대학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혼동을 초래할 염려가 있으며 University of London이 하나의 대학교라기 보다는 대학교 간 연합체의 성격을 띤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University of London을 런던대학교 그리고 UCL을 런던대학이라고 번역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

UCL은 설립 당시 London University로 불렸으나 1836년 현 킹스 칼리지 런던과 합하여 University of London이라는 연합체를 구성하게 됨으로 새로운 이름을 채택한 것이 University College이다. 런던대학교의 연합체 내 가장 오래된 학교로써 University를 대표하는 College라는 의미로 University College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조지 4세에 의해 설립되었던 King's College는 이름을 유지하게 된다. 연합의 구조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옥스브리지 또한 최초의 학교들을 University College라 부른다. 따라서 University College London은 런던대학교 UCL 그리고 University of London은 런던대학교로 번역함이 옳을 것이다.

역사[편집]

런던대 UCL 설립자들의 사상적 지도자, 제레미 벤담의 실제 시신으로 만든 박제. 머리 부분은 가짜이다.
런던대학대학교 본관의 1827년 모습

런던대학교 UCL은 1826년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주장한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와 그의 제자라 할 수 있는 존 스튜어트 밀의 아버지 제임스 밀의 영향과 기부에 의해 1826년 설립되었다. 'The common end of every person's education is happiness.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교육의 목표는 행복이다.), 제레미 벤담.' 벤담은 인종, 종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행복을 위한 교육을 추구했으나, 당시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대학은 국교도들만을 위한 대학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벤담의 사상을 따르던 제임스 밀에 의 주도 하에 새 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1826년 개교 당시에는 London university로 명명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836년 University of London이 설립되면서 London University는 University College London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옥스브리지 즉 옥스포드와 캠브리지를 포함한 여러 개의 연합된 학교들로 구성되는 영국의 전통체제에서 University에 소속된 College들 중 가장 최초의 학교에게 주어지는 이름이 University College인 것이다. 옥스브리지에도 University College들이 각각 하나씩 있다. 그러나 옥스브리지와는 달리 University of London 소속 학교들 중 상당수가 독립적인 운영을 지향하고 있다. 런던대학대학교(UCL)은 2005년부터 자체적인 졸업장을 발급하고 있으며 이공계와 의학이 전문화된 런던제국대학교(Imperial College London)는 2007년 런던대학교에서 탈퇴하였다.

비국교도가 세운 비종교 대학이자 최초의 민간대학으로, 영국 최초로 계급 종교 인종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학을 허가하였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적 혁신 정신을 내세워 세계 최초로 의학, 법률과 통계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 사회, 의학, 공학 분야에 체계적인 강의를 도입했다. 1878년부터 영국에서 최초로 여자에게도 학위를 수여하였다[4]

2002년에 UCL과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양 학교의 통합 논의가 있었으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재학생과 졸업생이 반대한 일이 있다. 또한 2005년에 유럽 최대 규모의 대학병원 [5] 인 UCLH(UCL Hospital)을 완공하였고, 2007년에 1조원의 예산이 들어간 Nano-tech 연구센터를 설립하였다. 2008년 현재 The Wellcome Trust와 합작하여 8500만 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의학 연구단지를 추가로 설립하고 있다.

2011년 현재 25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3명의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며, 필즈상 수상자 수로는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많다.[6]

연구 및 수업의 특징[편집]

학제간 연구[편집]

런던대학교 UCL은 강력한 기초학문을 토대로 학제간 연구를 활성화해 최근에는 실용화된 연구를 각 분야에서 내놓았다. 학부생들의 경우 전공 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을 함께 공부하도록 적극 권장받으며 재학생들은 72개의 학과 내에서 자신의 전공 이외에 관심분야의 학문을 찾아 얼마든지 공부하고 학점을 취득하여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으로의 졸업이 가능하다. 또한 최근에는 도시학이나 자연과학과 같은 일부 통합형 학과들을 통해 전체 수강과목의 3분의 1 이상을 자유선택으로 지정하여 학생들이 자유롭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공동연구 및 수업[편집]

같은 런던 대학교의 학교들인 런던 정경대 킹스 칼리지 런던런던 비지니스 스쿨등에서 원하는 강의를 듣고 학점을 취득할 수 있다. 런던대 UCL 의대는 미국의 예일 대학 의대와 연구/수업 파트너쉽 (UCL-Yale Partnership)을 맺어, 학점 취득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7] 또한 UCL의 바틀렛 건축계획대학원 (Bartlett Faculty of Built Environment)과 런던대 경영대학원인 런던비즈니스스쿨 (London Business School)이 Centre for Scentific Enterprise Ltd (CESL)를 공동 설립하여 각 학교의 재학생들이 자신의 흥미에 맞추어 관련 공부를 교류하고 학점을 취득할 수 있게 되었고, 공동 석사과정도 신설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8]

문화와 학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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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은 자유롭지만 스스로 절제하는 학풍을 가졌다. 면담수업 역시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누리면서도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 절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UCL 학생회관에 있는 Bar(선술집)이다. 이곳은 간단한 식사와 함께 알콜 도수가 낮은 맥주를 판매한다. 한국의 생활협동조합과 비슷한 곳에서 운영하는데 수익금으로 장학금도 지급한다고 한다. 학생들을 배려해 맥주가격도 시중가격의 반 정도다. 접근성이 좋은 학내에 그것도 대대적으로 할인된 가격이라면, 이로 인한 문제도 많았을 터. 그렇지만 이곳 학생들은 누군가 술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자유로운 캠퍼스 환경을 제공하지만 학생 스스로의 절제를 요구하는 UCL만의 철학이 담겨있는 사례다.

이런 자유로운 학풍은 영국의 유명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낳았다. 콜드플레이의 멤버 크리스 마틴과 조니 버클랜드는 1996년 UCL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만난다. 둘의 음악적인 호기심은 Pectoralz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만들었고, 대학시절 동안 밴드활동을 하며 가수의 꿈을 키운다. 결국 콜드 플레이는 윌 챔피언, 가이 베리맨 이라는 UCL 출신의 두 멤버를 영입하고 1998년 결성된다. 그들은 2008년 680만 장의 판매고로 전 세계 앨범 판매량 1위를 달성했다. 콜드플레이는 UCL의 학생 활동이 낳은 최고의 스타라고 볼 수 있다

저명한 동문[편집]

UCL 동문 마하트마 간디 -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인도의 독립과 평화의 상징인 마하트마 간디런던대학교 UCL의 법학과를 졸업하였고 그와 대비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자 2차 세계대전의 최대전범인 이토 히로부미는 교내 최초의 유학생들 중 한명으로 UCL의 화학과에서 수학하였다. 2000년대 초반 일본정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1968년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UCL은 지금까지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들과 3명의 필즈상 수상자들을 배출하였으며 가장 최근에는 UCL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찰스 카오[9]가 20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런던대학교연합 전체를 기준으로는 2010년까지 무려 72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배출되었다. 현 UCL 교수진 중에는 왕립학회에 53명, 대영학회에 51명, 왕립공학학회에 15명 그리고 의료과학학회에 117명 등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오랜 라이벌인 AA 건축학교와 함께 영국은 물론 세계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UCL의 바틀릿 건조환경대학[10]은 1841년 영국 내 최초의 건축대학으로 시작하였으며 현재는 크게 건축학부, 계획학부, 건설학부 및 여러 연구센터들로 구성되어 있다. 패트릭 아베크롬비나 패트릭 게데스[11]와 같은 현대 도시학의 창시자들이 교수나 학생의 신분으로 UCL을 거쳐갔으며 현재는 건축학부의 피터 쿡 교수와 계획학부의 피터 홀 교수[12]가 전 세계적으로 저명하게 알려져 있다.

한국인으로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장하준의 동생이자 유명한 저작 '온도계의 철학'으로 러커토시 임레상을 수상한 장하석[13]이 UCL의 과학철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UCL에는 명예교수로써 이름을 남기고 있다.

주석 및 인용[편집]

  1. http://www.topuniversities.com/university-rankings/
  2. http://www.telegraph.co.uk/education/6269348/Oxford-beaten-by-UCL-in-league-table.html
  3. http://www.ft.com/cms/s/0/af38128a-b3a1-11de-ae8d-00144feab49a.html#axzz32qTtkHX6
  4. UCL | Fulbright University Partners | US-UK Fulbright Commission
  5. University College London Hospital (UCLH) - Hospital Management
  6. http://www.ucl.ac.uk/research/excellence/nobel
  7. Transatlantic Research and Healthcare Alliance Announced Between Yale University, UCL and Yale-New Haven Hospital
  8. Universities and business schools – never traditional partners – are breaking the mould and linking up
  9. http://www.ingenia.org.uk/ingenia/articles.aspx?Index=606
  10.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40519001353
  11. http://news.knua.ac.kr/news/articleView.html?idxno=637
  12. http://news.donga.com/3/all/20090709/8753537/1
  13. http://news.donga.com/3/all/20070322/8421154/1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