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글래드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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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유어트 글래드스턴(William Ewart Gladstone, 1809년 12월 29일 ~ 1898년 5월 19일)은 영국의 전 총리이다. 종교는 성공회이며, 신학적으로는 고교회파(High Church) 즉, 전례, 성사 등의 교회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주의 노선을 걸었다.
그는 리버풀에서 출생하여 이튼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를 졸업하였는데, 재학 시절에 이미 두각을 나타냈다. 1833년 보수당 하원의원이 되었다. 필 내각 때에 관세 개혁을 하여 자유무역의 길을 열었다. 또한 1852년 애버딘 연립 내각의 재무상이 된 후, 1853년에 획기적인 예산안을 성립하여 재정가로서의 명성을 확립하였다.
1867년 자유당의 당수가 되고 보수당의 디즈레일리와 상대하여 전형적인 정당 정치를 전개하였다. 여러 번 재무장관이 되어 활약하였다. 1868년 ~ 1894년까지 4번이나 자유당 내각을 만들어 교육 제도를 고쳐 국민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1894년 정계에서 은퇴하여 하워든에서 연구와 연설로 여생을 보내고, 백작 작위를 수여하려고 할 때 이를 사양하여 대평민 (The Great commoner) 으로서 일생을 마쳤다. 그는 내정면에 있어서는 자유주의 입장에서 하층 계급의 불만을 해소시키기 위해 많은 개혁을 단행하였다.
경력사항 [편집]
- 1828년 : 군입대
- 1830년 : 제대
- 중앙정보부장 역임
- 1831년 : 공무원으로 정치입문
- 하원의원 당선
- 1834년 : 상무장관 역임
- 1837년 : 식민지장관 역임
- 1839년 : 재무장관 역임
- 1840년 : 중국대상 전쟁선포여부선거 당시, 영국의회에서 아편전쟁 반대발언. "광둥에 휘날리고 있는 영광스러운 우리 대영제국의 국기가 지금 악명높은 금수품(아편)밀수를 보호하는 데 이용되고 있습니다."[1]
- 1842년 : 총리 당선
- 1846년 : 총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
- 1850년 : 총리에 재당선
- 1854년 : 총리에 출마했다가 낙선
- 1858년 : 총리에 재당선
- 1862년 : 총리에 출마했으나 낙선
- 1866년 : 총리에 재당선되었다.
- 1871년 : 총리직 사임
주석 [편집]
- ↑ 《교실밖 세계여행》-아편밀수를 강요한 영국,아편전쟁과 홍콩/김성환 지음/사계절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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