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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편집] 중세 기독교 교육
타이틀 부터 수정해야합니다. 본문 내용이 중세기독교교육이 아니라 '현대 기독교' 혹은 '현대 프로테스탄티즘'이 적당합니다. 정말인가요?
[편집] 누구나 연습
여기에 내용을 적으면 되는 건가?
| 《연습장》 |
[편집] 슈몬 백수
어쩌구저쩌구 했다[1]
- 넘겨주기 [[1]]
[편집] 슈몬 백수#넘겨주기 [[2]]
- 넘겨주기 [[3]]
[편집] #넘겨주기 슈몬 유우
- 넘겨주기 슈몬 유우
[편집] 한일학생포럼(Korea Japan Student Forum)
한일학생포럼(Korea Japan Student Forum, 홈페이지 http://www.kjsf.org/)은 한일 양국 간 올바른 상호 인식 및 교류 확대, 나아가 동등한 이웃으로서 양국이 함께 지향하여야 할 가치를 대학생들의 힘으로 함께 생각해보고,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1986년 3월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순수학생, 학술문화교류단체입니다. 한일학생포럼은 일본측 파트너인 일한학생포럼(Japan Korea Student Forum, 홈페이지 http://jksf.cc)과 함께 이러한 설립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지난 27년 동안 각각 약 20명의 해당기수 멤버를 선발하여, 매년 8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격년제: 홀수기-일본 / 짝수기-한국) “Main Forum”이라고 하는 학술문화교류행사를 약 보름 간 개최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는 애증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이 자리잡은 이웃이면서,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성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투어왔으며 그 정점에는 일제강점기라는 35년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해방 이후 벌써 6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독도와 역사교과서, 위안부 문제 등에서 알 수 있듯 양국은 그 이해의 간격을 조금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 그것은 서로를 진정으로 바라 보고자 하는 용기와 노력의 부족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서로 자국에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옳다고 소리를 높이고 수많은 논리적인 근거를 대면서도, 정작 서로를 마주하고 있을 때는 그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정작 해결해야 될 문제를 외면하며 지금껏 그 엉킨 매듭을 풀지 못한 한국, 일본 양국의 소심함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986년 처음 시작된 한일학생포럼은 비록 그 규모에 있어서는 매년 양국 합해 40명 내외의 적은 규모였다고 할 수 있지만, 서로에게 솔직하고자 하는 의지에 있어서 만큼은 자신의 영역에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그것보다 훨씬 강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지난 27년 동안 한일학생포럼은 파트너 일한학생포럼과 함께 한국과 일본이 함께 헤쳐나가야 할 동북아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서로가 껄끄러워하는 역사 쟁점, 자이니치 문제, 영토 분쟁 등에 있어서도 서로의 솔직한 시각을 드러내고자 노력했으며, 깊은 대화를 통해 그 간격을 줄여왔습니다. 때로는 토론 중에 서로의 아픈 구석을 확인하고, 그 아픔을 보듬어 주는 한일학생포럼의 대화와 교류는 그 참가자들에게 인생에 길이 남을 기억으로 남아 왔습니다. 서로의 언어로 연극을 준비하고 자신들조차 익숙하지 않은 전통문화를 상대국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정은 평생의 우정으로 자리합니다. 그리고 학생 시절 한일학생포럼을 경험한 이들은 세월이 흐른 뒤 여전히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그 시절의 추억들을 잊지 못합니다.
[편집] 한일학생포럼의 역사
한일학생포럼의 역사를 1-27회 본회의(Main Forum) 중심으로 소개한다. 또한, 2012년 현재 활동하고 있는 28기의 활동 또한 소개한다.
[편집] 1기-27기 (1986-2011)
제1회 본회의 (1986년 3월 21일 - 23일): 서울의 YMCA호텔에서 열렸습니다. 한국 서울대학교 국제학생협회(ISA) 회원들이 일본 일미학생회의의 참가자들과 약 3주간의 공동 준비 기간을 거쳐 실험적으로 조직한 이 포럼에 한국측 17명, 일본측 12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였습니다. 행사 기간 중 NHK 서울 지국을 방문하였고, 동아일보 이종성 부 편집자님과 이종윤 교수님으로부터 한일관계와 언론 및 한일 경제 관계에 대해서 강연을 듣고 토론하였습니다. 제2회 본회의 (1986년 8월 26일 - 9월 1일): 서울 한국 기독교 수양관과 경주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측 29명, 일본측 12명의 참가자와 미국인 참관자 1명은 ‘21세기를 맞으며 한국과 일본의 학생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토론하였습니다. 또한 ‘교육에 의해 형성된 상대국에 대한 편견’ 및 ‘한일의 경제 관계’ 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제3회 본회의 (1987년 8월 16일 - 26일): 서울 반도 유스호스텔과 경주, 부산 등지에서 열렸습니다. 참가자는 한국측 26명과 일본측 19명 그리고 공식 참관인 3명이었습니다. ‘세계 속에서의 동아시아의 정치적 상황’, ‘한일 경제 관계의 현실과 이상’, ‘한일간의 이미지 형성과 문화 교류’, ‘역사 교과서 문제와 사적 관점의 비교’ 라는 주제로 4개의 분과로 나뉘어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제4회 본회의 (1988년 7월 28일 - 8월 11일): 일본 도쿄, 히로시마, 교토 등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한국측 19명과 일본측 20명이 참가했으며 영국인 공식 참관자도 포함되었습니다. 포럼기간 중에 분과 별로 정치, 경제, 문화, 역사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한일관계, 특히 무역마찰이나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하여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제5회 본회의 (1989년 8월 3일 - 16일): 일본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등지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참가자는 한국측 19명, 일본측 20명이었으며, 재일 한국 유학생 1명이 참관자로 포함되었습니다. 토론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의 4개 분과로 나뉘어 이루어졌으며 일본의 천황제 문제, 양국간 다방면에 있어서의 교류 문제 등이 비중 있게 논의되었습니다.
제6회 본회의 (1990년 8월 1일 - 15일): 안산 유스호스텔과 일본 나라에서 열렸습니다. 특히 6회 포럼은 일본 NHK가 그 활동 상황을 취재, 보도하였습니다. 한국측 19명과 일본측 20명이 정치안보, 사회문제, 교육인권, 경제, 민족 분과로 나누어져 토론을 벌였으며 독립기념관 등을 방문하였습니다.
제7회 본회의 (1991년 8월 1일 -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렸습니다. “신뢰 관계 형성,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통하여” 라는 대주제 아래, 한국측 18명과 일본측 19명이 정치, 경제, 사회문제, 인권, 역사, 문화 등의 분과로 나뉘어 토론을 가졌습니다.
제8회 본회의 (1992년 8월 4일 - 18일): “Challenge to Ourselves” 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한국 광명복지 수련원 등지에서 열렸습니다. 18명의 한국측 학생들과 19명의 일본측 학생들이 정치, 사회, 경제, 역사, 인권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신대 문제’ 와 ‘한반도 통일과 일본’ 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가지고 두 번의 심포지엄을 가졌습니다. 제9회 본회의 (1993년 8월 2일 - 16일): “Step Forward” 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일본 도쿄, 오사카, 나라에서 열렸습니다. 21명의 한국측 학생들과 19명의 일본측 학생들이 참가하였고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교육 환경 등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습니다. ‘재일 한국인 문제’, ‘아시아에서의 한국과 일본의 역할’ 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가졌습니다.
제10회 본회의 (1994년 8월 5일 - 19일): “Growing Up” 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한국 서울과 산정호수에서 행사를 개최하였습니다. 각각 18명의 한국측과 일본측의 학생들이 참가하였으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교육의 5개 분과로 나뉘어 분과 별로 토론을 벌였습니다. 회의 기간 중에 KBS의 시사저널 프로와 조선일보, 평화방송 등이 취재, 보도하였습니다.
제11회 본회의 (1995년 7월 31일 - 8월 14일): “Reconsidering Japan” 이라는 대주제를 가지고 일본 도쿄 요요기 센터와 교토 근처의 오츄 유스호스텔에서 열렸습니다. 한국측 일본측 각각 20명씩 참가했으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교육에 관해서 분과 별로 토론을 가졌습니다. 제 11회는 일본에서 종전 50주년을 맞이하는 해였으므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였으며 일본 후지 TV에서 우리의 활동을 취재하여 보도하였습니다.
제12회 본회의 (1996년 7월 31년 - 8월 14일): “Our Message to the Future” 를 주제로 한국측 18명, 일본측 21명의 인원이 한국 경기도 마석의 다윗 농원과 부여 삼정 유스호스텔, 그리고 서울의 아카데미 다솜 하우스에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역사, 교육의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으며 천안 독립기념관을 방문하였습니다. ‘독도문제’와 ‘한국교과서의 일본상과 한일 학생의 역사 인식’에 관한 두 차례의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제13회 본회의 (1997년 8월 1일 - 15일): “Reconsidering Our Relationship” 을 주제로 한국측 19명, 일본측 15명의 인원이 일본 히로시마, 교토, 도쿄 등지에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제 1분과는 정치외교, 역사, 경제, 사회문화 1, 2로 나뉘어 토론이 진행되었으며 제 2분과는 ‘Joint statement system'을 도입하여 포럼의 의의를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제14회 본회의 (1998년 8월 3일 - 18일): “Toward the Century of Coexistence” 를 주제로 17명의 한국측과 18명의 일본측 인원이 한국 김해, 청평, 서울 등지에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경제 협력, 역사 인식, 사회 문화, 안보의 4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으며 ‘Korea-Japan Relationship in the Asia Crisis', 'Communication between Koreans and Japanese'라는 두 주제에 대한 심포지엄이 있었습니다.
제15회 본회의 (1999년 8월 5일 - 19일): “What is the New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Aiming at the Good Neighboring Diplomacy” 를 주제로 한국측 16명과 일본측 18명의 회원이 일본 쓰시마, 후쿠오카, 도쿄 등지에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으며 ‘The Japan-Korea Relations from Tsushima Point of View’, ‘Can FIFA World Cup Korea Japan make the way to understand each other?’라는 주제에 대한 심포지엄이 두 차례 있었습니다. 제 15회 행사는 일본 요미우리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제16회 본회의 (2000년 8월 4일 - 18일): “The Exact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 between Korea and Japan in Now and Future” 를 주제로 2000 한국측 16명 일본측 17명의 회원이 한국 김해, 경주, 이천, 철원, 서울 등에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정치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으며, ‘The history of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ancient Korea and Japan', 'The reaction of citizen movement 과거-이론; 고대 한일사’ 의 이야기를, 심포지엄 Ⅱ에서는 ‘현재-실재; 전후 처리 문제에 있어 시민 운동의 대응’에 대해 토론하였습니다.
제17회 본회의 (2001년 8월 5일 - 18일): 한국 측 19명, 일본 측 15명의 회원들이 함께 일본 후쿠오카, 나가사키, 동경 등에서 Main Forum을 가졌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정치의 5개 분과로 나뉘었으며 “The Isahaya Reclamation Project Environmental Impact Assessment and the Ariake Sea Disaster"와 “For our Future we need self-respect and generous mind to other person who is different from me."의 주제로 두 차례의 심포지엄을 가졌습니다.
제18회 본회의 (2002년 8월 4일 - 18일): 한국 측 17명, 일본 측 19명의 회원들이 함께 한국 서울, 경주, 인제, 청평 등지에서 Main Forum을 진행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정치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습니다. 필드트립, 스포츠 미팅 등의 문화 행사가 진행되었으며 두 차례의 전체 심포지엄이 진행되었습니다.
제19회 본회의 (2003년 8월 4일 - 19일): 한국 측 16명, 일본 측 13명의 회원들이 함께 일본 교토, 도쿄 등지에서 Main Forum을 진행했습니다. JASC(Japan America Student Conference), AJSC(Japan America Student Conference)와 함께 심포지엄을 진행하였으며,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정치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습니다. JASC와의 회의는 일본 쿄토 신문 2003년 8월 10일자로 보도되었습니다.
제20회 본회의 (2004년 8월 2일 - 16일): 한국 측 17명, 일본 측 18명의 회원들이 함께 한국 서울, 철원, 송추 등지에서 Main Forum을 진행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정치의 5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하였으며, ‘Globalization in North East Asia’를 주제로 전체 디스커션 테이블이 진행되었습니다. 문화교류 행사로 Korea Night과 Japan Night이 진행되었고, 일본 측에서 한국어 연극을 준비해 이목을 끌었습니다.
제21회 본회의 (2005년 8월 4일 - 17일): “Discovery New Things by Studying the Past(溫故知新)” 이라는 주제로 한국 측 17명, 일본 측 17명의 회원들이 함께 일본 오키나와, 도쿄에서 Main Forum을 진행하였습니다. 특히 오키나와 대학생들과 현지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오키나와 주둔 미군문제, 아시아태평양전쟁의 오키나와인 학살문제 등을 얘기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활동 내용은 연세대학교 학보와 이화여자대학교 학보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제22회 본회의 (2006년 8월 5일 – 20일): 한국 측 17명, 일본 측 19명이 참가하여 “The Bridge for Brand ― New Tomorrow” 라는 테마를 가지고, 한국 서울과 그 주변에서 Main Forum을 개최했습니다. 한일 양국에 사는 학생들만의 토론뿐만 아니라 실제로 DMZ나 서대문 형무소 등을 직접 방문하고, “나눔의 집”에서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도 직접 들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을 피부로 느끼면서, 외관만이 아닌 진정한 토론을 목표로 했습니다. 또한 한일만이 아닌 동북아시아로 시야를 넓히기 위해서, 중국 학생들과 함께 북핵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 활동 내용이 YTN(2006년 8월 16일)을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제23회 본회의 (2007년 8월 5일 – 20일): 한국 측 16명 일본 측 18명이 참가한 23회 본회의에서는 “The Pioneers for the Coexistence through Mutual Understanding” 라는 메인 테마를 가지고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서로가 공존하고 있는 동반자임을 인식하였고, 상호이해를 위해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방문하여 일본의 아픔을 간접 체험하였고, 재일 한국인(자이니치)의 생활을 필드트립을 통하여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재일한국인들을 직접 초대하여 그들이 느끼는 차별과 감정들을 듣고 토론하는 심포지엄을 가졌습니다. 또한 양국 사이에 문제가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찾아가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고 그 해결책에 대해 간구해보았습니다.
제24회 본회의 (2008년 8월 10일 – 8월 24일): 한국 측 12명 일본 측 18명이 참가한 24회 본회의에서는 “The Canvas of Our Future ~ The Color of Our Hearts”라는 메인 테마를 가지고 다양한 색깔을 가진 모든 회원들의 마음을 모아 새롭게 펼쳐진 미래라는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마음으로, 한일간의 새로운 시각을 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서울과 천안, 강화도 등의 지역을 거치며 행한 24회 본회의에서는 북한과 위안부, 문화교류를 테마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이에 따른 DMZ, 나눔의 집, 문화공연관람 등의 Field trip을 함께 했습니다. 또한 개인 DT와 토론을 통해 다방면에서의 한일관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제25회 본회의 (2009년 8월 5일 – 8월 20일): 한국 측 14명 일본 측 20명이 참가한 25회 본회의에서는 한일간의 쌓여있는 제반 문제를 풀어나갈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국제적 교류단체로서의 의의와 학생 학술단체로서의 의미를 되새기며 과거로 얼룩진 한일관계가 하나된 미래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New Stage(新時代) ~ It’s time for action”을 메인 테마로 정했습니다. 도쿄와 오사카, 교토, 히로시마 등의 지역을 거치며 행한 26회 본회의에서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와 역사인식, 자이니치(在日朝鮮人)를 테마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이에 따른 야스쿠니 신사, 에다가와 조선학교,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등의 Field trip을 함께 했습니다. 또한 개인 DT와 토론을 통해 다방면에서의 한일관계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제26회 본회의 (2010년 8월 8일 – 8월 22일): 한국 측 12명 일본 측 17명이 참가한 26회 본회의에서는 “Open our mind, Create our vision”이라는 메인 테마를 가지고,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고 접근함으로써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서울, 경주, 부산에서 개최된 26회 본회의에서는 내셔널리즘, 북한, 일본군 위안부를 테마로 한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이에 따른 Field Trip으로 독립기념관, DMZ, 광주 나눔의 집에 함께 다녀오며 상호 이해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역사의 다섯 분과로 나누어 개인 DT와 토론을 하여 서로에 대해 다각적으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27회 본회의 (2011년 8월 8일 – 8월 22일): 한국 측 19명 일본 측 13명이 참가한 27회 본회의는 “Time to MOVE with one HEART”를 메인 테마로 하여,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하나된 마음으로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는 것을 되새기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습니다. 오사카와 나가사키, 후쿠오카에서 개최된 27회 본회의에서는 매스커뮤니케이션, 역사교육, 자이니치를 테마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이에 따른 Field Trip으로 나가사키 그라운드 제로, 요시노가리 역사 공원을 다녀왔고, 재일조선인으로부터 강의를 함께 들었습니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5개 분과로 나누어 개인 DT와 토론을 진행하였는데, 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밖에도 Korea Night, Japan Night를 진행하여, 학술적 교류 외에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서로의 언어로 연극을 준비한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편집] 28기(2011-2012)
[편집] 한일학생포럼 활동
[편집] 세미나
[편집] 메인 포럼(Main Forum)
[편집] DT
[편집] Symposium
[편집] KN(Korea Night)
[편집] JN(Japan Night)
[편집] 자매단체
- 일한학생포럼(Japan Korea Student Forum, 홈페이지 http://jksf.cc)
[편집] 도움
- (재)한일문화교류기금(www.kjcf.org/)
[편집] 관련사이트
- 한일학생포럼 http://www.kjsf.org
- 일한학생포럼 http://jksf.cc
- (재)한일문화교류기금 http://www.kjcf.org/
[편집] MMMG
MMMG(MILLIMETER MILLIGRAM INC.)은
[편집] 알선
알선(斡旋)은 제3자인 알선인이 분쟁의 당사자들을 소집하여 그 쌍방의 주장의 요점을 확인하는 등 당사자가 스스로 해결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는 절차로 당사자를 법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
[편집] IMD
국제경영개발원(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 IMD)은 스위스 로잔에 위치한 비영리 실무학교 이다. 상설 부속 기관인 세계경제포럼(WEF)을 통해 지난 1980년부터 해마다 세계 각국의 국가 경쟁력을 종합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있다
[편집] 스펙트럴 플럭스
스펙트럴 플럭스(Spectral Flux)는 신호 (전자공학)의 주파수가 블라블라
[편집] 스펙트럴 플럭스
스펙트럴 플럭스(Spectral Flux)는 신호 (전자공학)의 주파수가 블라블라
[편집] 스펙트럴 플럭스
스펙트럴 플럭스(Spectral Flux)는 신호 (전자공학)의 주파수가 블라블라
[편집] 심보선
심보선(1970~)은 대한민국의 시인이자 사회학자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 후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풍경>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편집] 수상경력
2009년 제 16회 김준성 문학상 2011년 제4회웹진 시인광장 올해의 좋은 시상 2011년 제 11회 노작문학상
[편집] 저서
[편집]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
[편집] 바깥고리
[편집] 대한민국
내가 태어난 곳{{풀기:[[분류:#넘겨주기 [[]]]]}}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존재하지만, <references/> 태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