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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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궁전*
Welterbe.svg 유네스코 세계유산
London Parliament 2007-1.jpg
웨스트민스터 궁전, 런던
영어명* Palace of Westminster
프랑스어명* Palais de Westminster
등록 구분 문화유산
기준 Ⅰ, Ⅱ, Ⅳ
지정 역사
1987년  (11차 정부간위원회)
웹사이트 공식 사이트

* 세계유산목록에 따른 정식명칭.
** 유네스코에 의해 구분된 지역.

웨스트민스터 궁전(Palace of Westminster)은 영국 런던에 소재한 국회의사당(Houses of Parliament)이다. 런던 자치구시티 오브 웨스트민스터템스 강 북쪽에 있으며, 정부 청사들이 있는 화이트홀과 가깝다.

궁전은 복잡한 배치를 띠고 있다: 기존 건물을 포함하여 약1100개의 방과 100여개의 계단 그리고 4.8km의 복도가 있다. 건물 대부분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역사적 원형 건물 가운데 살아남은 요소는 오늘날에는 유해의 정장(正裝) 안치와 같은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를 때 사용하는 웨스트민스터 홀보석 탑 등이다. 웨스트민스터 궁전의 빅토리아 탑에는 200만 건이 넘는 서류가 보관되어 있으며 높이 106m의 세인트스티븐 탑에는 빅벤이라 불리는 대형 탑시계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궁전과 궁전 주위는 시종 장관이 여왕을 대신하여 몇 세기 동안 관리하고 있다. 1965년 왕실과의 협정에 따라 두 채의 건물 관리를 통과시켰다. 일정한 의식용 방들은 시종 장관이 계속 관리하고 있다.

1834년 큰 화재를 겪은 후 소실되었으며, 오늘날의 의사당은 건축가 찰스 배리(1795-1860)와 그의 조수 아우구스트 웰비 노트모아 푸긴(1812-1852)에 의해 30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웨스트민스터 홀과 화재에서 살아남은 세인트 스티픈 경당을 통합하도록 설계했다.

역사[편집]

오늘날에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자리잡고 있는 템스 강 뒤쪽은 중세 동안 중요한 전략 요충지였다. 적어도 앵글로-색슨족 시대부터 이곳에 건물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중세 시절 크누트 대왕이 최초로 궁전을 세웠으며 참회왕 에드워드에 의해 시티 오브 런던 서쪽 소니 아일랜드에 궁전과 웨스트민스터 사원(1045-1950)이 세워지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궁전과 사원의 인근 지역을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서쪽 수도원(West Monastery)의 약칭인 것으로 보인다. 1066년 노르만 정복윌리엄 1세런던 탑을 자신의 주거지로 삼았지만 나중에 웨스트민스터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색슨족들이나 윌리엄 1세가 살았던 건축물은 오늘날에는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 궁전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은 윌리엄 1세의 후계자인 윌리엄 2세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존 록큐가 1746년에 제작한 런던 지도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중세 후반기 이래 왕의 주거지로 계속 사용되었으며, 공공시설의 상당수가 웨스트민스터 인근에 세워지게 되었다. 의사당의 전신인 추밀원은 웨스트민스터 홀에 설치되었다. 1295년 궁전 안에서 최초의 잉글랜드 의회인 모범 의회가 열렸다. 이처럼 거의 모든 의회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왕이 거주하는 이곳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열리게 되었다.

1529년 대화재가 일어나기 전까지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왕의 정궁 역할을 하였다. 1520년 토머스 울지 추기경에게서 요크 궁전을 손에 넣은 헨리 8세화이트홀 궁전으로 이름을 바꾸로 자신의 궁전으로 사용했다. 비록 웨스트민스터 궁전이 왕실 궁전이긴 했지만, 실제로는 상하원의 의회와 재판소로 더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본래 이곳은 궁전이었던지라 의회로서 이용하기에는 구조가 적합하지 못했다. 의회 개회식 등 중요한 국가 행사는 페인티드 챔버(Painted Chamber)에서 거행하였다. 상원은 화이트 챔버(White Chamber)에서 회합을 가졌고 하원은 고정된 개최 장소가 없었으며 이따금씩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챕터 하우스(Chapter House)에서 회합을 가졌다. 하원은 헨리 8세의 후계자인 에드워드 6세 치하 동안만이지만 궁전 내 왕실 전용 경당인 세인트 스티픈 경당을 회합 장소로 획득했다.

J. M. W. 터너의 1843년 대화재를 그린 불타는 상·하원.

1834년 10월 16일에 웨스트민스터 궁전에 대화재가 다시 발생하여 웨스트민스터 홀과 보석 탑, 세인트 스티픈 경당의 지하실, 회랑을 제외한 궁전의 대부분이 전소되고 말았다. 곧 궁전의 재건을 협의하기 위한 왕립 위원회가 설치되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다시 짓기로 결정을 내렸다.

1836년 왕립 위원회는 97가지 설계안을 검토한 후 찰스 베리가 설계한 고딕 양식의 설계안을 최종적으로 채용하였다. 1840년 주춧돌을 세우는 것을 시작으로 1847년과 1852년에 각각 상원의사당과 하원의사당이 완공되었다. 건물의 주요 부분도 1860년에 들어서야 완공되었다.

이후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1941년까지 이용을 계속하였지만, 같은해 5월 10일 독일군의 폭격을 받아 하원이 파괴되었다. 파괴된 하원은 건축가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의 지휘 아래 다시 지어져 1950년에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