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춘추 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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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越)은 춘추 전국 시대에 있던 나라이다. 무여(無余)가 주나라 왕실로부터 책봉 받았으며, 구천(句踐)왕 때 전성기를 누렸다.

국성과 민족[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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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월 스스로는 황제 후손을 주장하였다. 현재는 오는 주나라 희성, 월은 하나라 사성으로 정의 된다. 사마천은 사서에서 월나라 국성은 사(姒)씨로서 하왕조에서 나왔다고 한다. 하나라 시조 우 (하나라)의 무덤은 월나라 영역 저장성 사오싱에 있는데 실제 우의 무덤인지 고증되지는 않았고, 중원으로 비정되는 허난성과는 지역적 차이가 너무 크다. 월나라 왕성은 고(顧)씨인데 중국에서 "구"로 발음되므로 구씨이다. 중국의 발음 체계는 고대와 현재가 차이가 있는데 베트남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고(顧)씨다.

월은 고대 남방 민족의 통칭이르서 이 지역 사람들과 중원 사람들과는 언어가 달라 대화가 되지 않았다. 중국에서 백월은 '배예'이며 중국 '배', '백'씨의 일부는 백월과 관계한다고 믿어진다. 주나라 이후에는 점차적으로 중원 사람들이나 다른 소수 민족들이 저장성에 들어와 살게 된다. 유전자 조사 결과 중원의 중국인과는 차이가 크며, 심지어 중국의 소수 민족 보다 중국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 더 이질적인 DNA로 조사되었다. 쉽게 말해 일본인과 유사한 사람들이 월에 살았지만, 한나라 이후에는 한족이 대거 이주하여 민족이 물갈이 됐다.

지리[편집]

월나라의 위치는 오늘날 저장성 사오싱(소흥)을 중심으로하여 광둥성, 장시성, 푸젠성등의 중국 동남부와 베트남 북부에 이르는 지역이었다. [1] 기원전 473년에 오나라를 멸망시켰고, 그 후 초나라에 멸망당한다. 범려구천을 보좌할 때 가장 세력이 강력했으며, 후에 점점 쇠락의 길을 걸었다. 기원 전 306년 구천의 6대손인 무강 때 초나라에 멸망했다.

중심지인 저장성 사오싱에우 (하나라)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저장성유방의 출신지이며, 진나라 반군의 군사 기지였다. 초한쟁패기 서초가 재건된 지역이며, 전류 (오대)가 건국한 오월이 있었던 지역이다. 이 지역은 사람들은 한국, 일본과 교역을 많이 하였다. 백제 시대 문헌에 월나라 성씨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흥망성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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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서가 지키고 있는 오나라를 반간계와 이간계 등의 책략으로 멸망시킨 월나라는 안정기에 접어들지만, 당시 월나라를 지탱한 두 공신인 범려문종의 실각으로 점차 몰락의 길을 걷는다.

구천의 시기심을 잘 알고 있는 범려는 그를 피해 제나라로 잠적했다. 그러나 문종은 구천의 질투심으로 숙청당하고 만다. 이후, 나라는 조금씩 쇠락하기 시작했고, 기원전 464년 구천이 사망하면서 월나라는 그저그런 나라로 전락한다.

멸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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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 전 306년, 구천의 6대손인 무강의 시대에 초나라 위왕의 원정으로 초나라에 패했다. 무강은 초나라의 추격을 받다가 포로로 잡혀 처형되었다.

월나라 세력은 멸망 이후 일부는 초나라에 흡수되었다. 한나라 건국 한나라에게 귀속되어 민(閩), 동월(東越)등이 제후국이 되어 해양 세력으로 발전한다. 이 지역 사람들은 기원전 2~3천년 이전부터 해양을 통하여 다른 나라와 교류하였다. 주로 배을 타고 한반도와 일본 열도을 돌아다녔는데, 중국 기록에 의하면 이들의 일부가 일본에도 월국을 세웠다고 한다. 고대 중국의 영토 개념은 현재와 달라 한반도 낙랑군 까지는 만주 주변이었고 한반도 남부와 열도는 같은 범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역대 군주[편집]

대수 작위 재위 기간 재위 연수 출신과 관계 사료 출처
1 (子) 무여(無餘) 하나라 소강(夏少康)의 서자(庶子) 사기 월세가(史記 越世家)
2~9대 군주 미상
11 무임(無壬) 오월춘추(吳越春秋)
12 무역(無䁺) 오월춘추
13~32대 군주 미상
33 부담(夫譚) 사기 월세가
34 (王) 윤상(允常)
? ~ 기원전 497년
부담의 아들 사기 월세가
35 구천(勾踐) 기원전 496년 ~ 기원전 464년 33년 윤상의 아들 사기 월세가
전국사(戰國史)
36 녹영(鹿郢) 기원전 463년 ~ 기원전 458년 6년 구천의 아들 사기 월세가
전국사
37 불수(不壽) 기원전 457년 ~ 기원전 448년 10년 녹영의 아들 사기 월세가
전국사
38 (翁),
주구(朱勾)
기원전 447년 ~ 기원전 411년 37년 불수의 아들. 사기 월세가
전국사
39 (翳) 기원전 410년 ~ 기원전 375년 36년 월왕 옹(주구)의 아들 사기 월세가
전국사
40 착지(錯枝) 기원전 374년 ~ 기원전 373년 2년 월왕 옹의 손자 사기 월세가
전국사
41 무여(無余)
지후(之侯)
기원전 372년 ~ 기원전 361년 12년 착지의 친척 사기 월세가
전국사
42 무전(無顓) 기원전 360년 ~ 기원전 343년 18년 사기 월세가
전국사
43 무강(無彊) 기원전 342년 ~ 기원전 306년 37년 무전의 동생 사기 월세가
전국사

출처[편집]

  1. http://100.naver.com/100.nhn?docid=120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