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원 비상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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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 비상 결의(senatus consultum ultimum)가 가결되면, 의결에 따라 생성된 권한은 그야말로 초법적인 권한이 되어 이제까지 존재해 있던 모든 법을 무시할 수 있고, 모든 권한을 집정관(또는 독재관)에게 양도할 수 있었던 로마 원로원의 최고 권위의 상징이며 최후의 무기였다. 현대에도 간혹 발동되는 ‘계엄령’의 시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원로원 비상 결의의 탄생[편집]

애초 원로원의 법령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던 원로원 결의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치르고 난 뒤 원로원이 초법적인 권한을 가지게 되면서 이러한 이름으로서 불리게 되었다.

비상 결의가 처음 발동되었던 시기는 기원전 121년으로, 이 때의 원로원은 가이우스 그라쿠스(Gaius Gracchus)등에 대해 원로원 비상 결의를 발동시켰다. 그들은 '공화정의 국제를 지키기 위하여' 시민의 권리를 일시 정지 시킨 후 그의 지지자 3,250명 이상을 학살하였다. 이 사건은 원로원 측이 불리하게 될 때에는 군대라도 동원하여 정치·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전례에 없었던 무력 폭력의 한 예를 남기게 되었다.

원로원은 이후에도 이 권한을 자신들의 정적을 축출하는데 계속 사용하였다. 기원전 77년에는 전 집정관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를 비상 결의의 대상으로 지목하였고 곧 죽였으며, 기원전 62년에는 원로원 의원이자 급진 개혁파였던 카틸리나(Lucius Sergius Catilina)등에 대해 원로원 비상 결의를 발동시켜 로마에 체류한 원로원 의원, 법무관 등 요직에 있던 5명이 처형되었고 카틸리나 본인은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이끌고 도주하였으나 곧 포위되었고 원로원은 그를 포함한 3,000명의 추종자를 학살해버렸다.

원로원 비상 결의의 종말[편집]

기원전 49년, 카이사르 역시 자신이 가장 혐오했던 법인 원로원 비상 결의에 의해서 반역자로 낙인찍히지만, 카이사르는 내전에서 승리하여, 원로원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했으며 그 뒤, 원로원 비상 결의는 사라지게 된다.

참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