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근법
원근법(遠近法)은 눈에 보이는 사물(3차원)을 평평한 면(2차원)에 묘사하여 그리는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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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목차
[편집] 1. 원근법의 정의
원근법은 3차원의 물체와 공간관계를 2차원의 평면 또는 실제보다 얄팍한 판면(예를 들면 평부조면)에 도식적으로 묘사하는 기법이다. 이는 공간과 입체를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위치에서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지각적 표현법으로, 중국화와 르네상스 이후의 대부분의 서양화의 특징으로서 개념적인 표현법과 대조를 이룬다.[1] 알베르티는 “회화란 열린 창으로 바라본 세계의 표현(재현)이다”라고 언급하며 회화가 열린 창으로 바라본 3차원의 세계를 2차원적 회화로 그려내는 것임을 의미하였다. 이는 작가의 개념적 표현과는 상반되는 회화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 것이며, 원근법 역시도 이러한 욕구에 의해 생성된 표현방식으로 2차원을 3차원처럼 보이게 하는 일종의 회화적 일루젼illusion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원근법은 기본적으로 회화가 사실적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해 발전된 표현방식이며, 실제 현실의 공간을 그대로 화면 안에 재현하는 것(미메시스)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요컨대 원근법은 자신의 시점으로 세계를 관찰하고 구성하는 방법이다. 곧 대상을 실재화하여 이를 자기화하는 것이다. 본래 원근법은 르네상스 이후 세계를 인식하는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화가들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꿈꾸었다. 평면에 우리가 살고 있는 입체적 세계를 그럴 듯 하게 재현 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사실보다 더 사실 같지 않을까 하고 기대에 부풀었다. 회화의 사실적 재현에 대한 욕망은 그래서 끊이질 않았다. 비록 평면에 재현된 것이 실재가 아닐지라도 실재처럼 보인다는 것은 세상을 사실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충분히 갖게 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욕망은 15세기 이탈리아의 건축가 필립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1377~1446)와 레온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72)가 원근법의 기초를 다지면서 본격화 되었다. [2]
[편집] 1.1 서양의 원근법
서양의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였다. 르네상스 원근법의 표현 방식은 크게 선 원근법/대기 원근법/단축법/명암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편집] 1.1.1 선 원근법
선 원근법: 선 원근법은 특정 위치에 소실점이 있고 그 소실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크기를 크게 하여 원근감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가까이 있는 것일수록 크게 표현된다.
[편집] 1.1.2 대기 원근법
대기 원근법: 대기 원근법은 색채의 변화를 통해 공간적 거리감을 표현하는데, 대부분 가까이 있는 것을 짙게 칠하고 멀리 있는 것을 옅게 칠하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편집] 1.1.3 단축법
단축법: 단축법은 인체의 원근감을 묘사할 때 쓰이는 방법으로, 인체가 정면으로 서 있지 않고 누워 있거나 팔을 앞으로 뻗는 등의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그 길이를 단축함으로써 원근감이 표현된다.
[편집] 1.1.4 명암법
명암법: 명암법은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원근법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편집] 1.2 동양의 원근법
동양에서는 대체로 원근법을 잘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작가의 정신세계를 그림에서도 나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동양화는 주로 평면적인 표현을 많이 보여 서양과 같은 ‘보이는 대로의 재현’은 잘 나타나지 않지만, 원근법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양에서는 원근법이 서양과 같은 미메시스적 표현방식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서양과 비슷하게 색채를 이용한 대기 원근법이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동양 원근법은 일반적으로 평원/심원/고원의 삼원법三遠法으로 분류된다. 이는 인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보다 풍경을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는데, 동양화의 원근법은 소실점이 하나로 나타나는 서양화의 원근법과는 달리 소실점이 여러 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갖는다. 이는 자연의 모든 모습을 나타내기 위한 시도로서, 다시점적인 표현을 보인다.
[편집] 1.2.1 평원
평원: 평원平遠이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눈과 같은 높이로 산수를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편집] 1.2.2 심원
심원: 심원深遠이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듯 산수를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편집] 1.2.3 고원
고원: 고원高遠이란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듯 산수를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편집] 2. 원근법의 역사
[편집] 2.1 원근법 역사의 개요
원근법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할 때 일반적인 견해를 취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다양하게 세분된 인류 역사 속에는 광범위한 문명이 존재한다. 각각의 문명은 나름대로 자신을 재현하는 방법에 기여해 왔다.[3] 이런 재현의 방법 속에 미술가들이 오랜 꿈은 눈앞의 현실세계를 화면공간에 똑같이 옮겨 놓는 일이었다. [4]고대 이집트인과 아시리아인들은 하나의 평면위에 그들의 세계를 아주 만족스럽게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인물은 정면, 측면 혹은 3/4시점에서 동시에 보여 지고, 크기도 인물의 중요성에 따라 다르게 그려졌다.
위의 그림은 위의 설명을 예를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인물 전체가 같은 크기로, 동일한 시점에서 투사되었으며, 바닥면이 돌의 표면이라는 사실을 곧 알 수 있다. 또한 크기와 중요성의 상관관계는 4세기 이후 비잔틴 미술의 평면적인 성상화에 나타난다. 로마의 건축가이자 공학자인 비트리비우스(Vituvius B.C 1세기)에 따르면, 처음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무대 장면 그림 속의 건물에 환영적 외형을 부여하기 위해서 이미지의 후퇴와 투사 개념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수의 그리스와 초기 로마의 벽화가 상당한 수준의 공간적 환영을 보여 주고 있으며, 물체의 측면이 비록 한 점으로 수련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각도로 물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의 팔라틴가면실은 2차원의 벽 위에 배경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던 좋은 예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평면적인 기초 원근법의 사용은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다시 부활하기까지 수백 년간 쇠퇴하였다. 15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 마사치오(Masaccio), 도나텔로(Donatello)에 의해 예술의 새로운 이념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실체를 옮겨놓는 데에 눈으로 본 것을 그린다는 경험적인 해결방안에 의존하지 않고 원근법이라는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완전한 과학적인 해결방안을 찾아낸다.
[편집] 2.2 원근법의 최초 창안자 - 브루넬레스키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이 건축한 수많은 건물들을 통해 공간의 문제를 다루어 보았던 까닭에 패널위에다가 공간을 묘사하는 것 보다 간명하고 확실한 방법을 창안했다. [5] 이 실험은 경관이 비치는 거울로 판을 만들고 그 위에 비춰지는 건물의 이미지와 실제 경관을 비교 분석하였다. 거울 효과를 얻기 위해 패널바탕에 광택이 나는 은색의 도려를 칠하고, 그 패널 위에 반사되는 건물들의 윤곽을 그렸는데 바로 이 면에서 건물들 간에 나타나는 시각상의 선들이 한 점에서 만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사물들이 멀어질수록 더 작아 보이는 것과 같이 거리와 각도가 이루어내는 모든 시각적 왜곡이 이 원리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그가 이룬 것은 고정된 소실점을 향해 수학적이고 규칙적으로 축소되는 완전하고도 초점이 있는 투시도법 체계였다. [6]소실점을 갖는 이른바 선 원근법의 원리를 피렌체에서 건축과 조각을 누비며 실측과 소묘, 부단한 학습과 연구의 열정이 르네상스 원근법 발명의 기초가 되었다.
멀리 떨어질수록 형태는 작게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었지만, 브루넬레스키는 이것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체계화시켰다. 브루넬레스키는 거리에 따른 사물의 크기가 수학적으로 축소되는 과정과 함께 ‘소실점’, 즉 수평선이 하나의 지평선으로 모이면서 수직선도 우리 시선의 중심으로 수렴한다는 것을 최초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쉽게도 그가 원근법을 증명해내기 위해 그린 그림들은 지금은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그러나 동료 작가들이 남긴 그림을 살펴보면 브루넬레스키가 개발한 원근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뒤러(Albrecht Durer)는 자연에서 예술의 조화로운 비례를 찾아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투시도법과 비례를 통해 자연의 과학적인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뒤러는 대상물과 그것을 보는 화가의 눈 사이에 유리로 만든 스크린을 놓고 대상물을 향하는 시선이 스크린과 만나는 점을 이어가면서 투시도를 그렸다. 그러나 투시도 구성에 있어서 주된 목표중의 하나는 모방이다. 투시도의 주된 업적의 하나는 실제적인 지적과정을 형성하는 능력에 있다. 투시도 표현의 한면은 실제의 사실적 시각표현을 제공하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상적인 세계의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427년에 르네상스 양식을 성립시키고 원근법을 적용시켜 생생한 현실감을 화면 속에 과감히 반영시킨 사람은 마사치오였다. 그가 그린 성 삼위일체(그림11)에서 선 원근법이 정착하게 된다. 그는 성 삼위일체에서 미술역사상 처음으로 중앙투시원근법을 적용하였다.[7]
그림 11은 선 원근법의 일점투시와 상대적 크기 비례에 의한 천정 무늬의 크기감소가 보이는 중앙투시원근법이 처음 적용된 그림이다.
[편집] 2.3 원근법 이론 정립 - 알베르티
원근법의 체계가 잡히자 많은 작가들이 이를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대표적인 작가인 알베르티(Alberti)는 그림12에서처럼 원근법이 그림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화면 안쪽 깊숙이 끌어들인다는 것을 알고 이를 작품에 표현하였다. 이 작품의 소실점은 그림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시선을 화면 안쪽 깊숙이 끌어들인다. 소실점은 원형 신전의 중앙문을 지나서 파란 하늘 어디엔가 보이지 않는 무한점까지 달려간다. 알베르티는 이 창문이론으로 르네상스 원근법의 발명자가 되었다. [8]
브루넬레스키가 창안한 것을 마사치오가 그림에 완벽히 적용시켜냈지만 그것을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바로 알베르티였다. 알베르티는 1435년에 출판한[회화론]에서 원근법의 원리를 언어로 차근차근 풀어냈다. 알베르티는 원근법을 설명하기에 앞서 그림의 성격 자체를 새롭게 규정해야했다. 원근법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림이 관념적 세계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선언해야 했다. 그는 [회화론]에서 그림을 ‘열린 창’이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림의 평평한 화면은 열린 창처럼 바깥 세계를 입체감 넘치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창을 통해 우리 눈과 사물이 직선으로 연결되게 되는데, 이때 그림 화면은 사물과 시선을 잇는 선을 수직으로 절단하게 된다. 여러 사물을 바라보게 되면 무수한 점이 그림 속에 나타나는데 그 점을 이으면 입체감 넘치는 3D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 알베르티의 핵심 주장이다. 알베르티는 이러한 광학적 원리에 따라 원근법 작도법을 제시했다.
1. 그림 그릴 화면에 눈높이(H)를 따라 수평선을 그린다. 눈높이를 3등분한 후 이를 기본으로 그림 밑변을 구획한다.(P1,P2... P7) 2. 그림 속 눈의 위치(P)에서 밑변의 구획된 지점(P1,P2... P7)에 각각 선을 긋는다. 화면 속 모든 사물은 점 P로 수렴되는데 이 점이 바로 소실점(vanishing point)이 된다. 3. 화면 속에서도 공간적 깊이감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우선 실제 눈의 위치(E)에서 그림 밑변에 구획된 지점(P1, P2... P7)으로 선을 긋는다. 이 직선과 그림이 만나는 점을 각각 확인하고(H1, H2... H7), 이 지점에서 수평선을 각각 그어 나간다. 이렇게 그려진 수평선(직선 H1H'1, 직선H2H'2... 직선H7H'7)이 그림 속의 정확한 앞뒤 거리감이다. 4. 수평적 비례가 정확하게 되었는지 확인하려면 점 B에서 점 P1으로 대각선을 그어본다.(직선 BP1) 이때 선들이 서로 정확하게 교차하면 원근법은 바르게 작도된 것이다.[9]
[편집] 2.4 원근법의 진전 -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러나 원근법 미술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진전을 가져온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였다. 레오나르도는 천재적인 재능으로 우리가 세계를 보고 경험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원근법이 함축하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가일 것이다. 그는 특별히 넓은 각도의 시계와 시각 원추에 관한 그의 관찰보고서에서 선 원근법이 변칙을 제시했던 최초의 인물이다. 서구 사회의 역사를 보면 원근법 운용이 점점 더 교묘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르네상스의 실험에서부터 16세기 후반의 복잡한 바로크 환영주의에 이르기까지, 선 원근법은 관람자에게 그려진 그림 표면에 묘사된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조작되어 왔다. 그러나 19세기말 사실주의 회화의 포기와 사진술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추세가 단절된다. 사진술이 확산되면서 많은 화가들이 화면 자체의 해체를 겨냥하는 그림을 창조하기 시작하였다.[10]
[편집] 3. 원근법 발달 시기 유럽의 사상적 배경 =
[편집] 3.1 철학사적 배경 -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편집] 3.1.1 중세 신본주의
태초에 창조신이 있어 그가 해와 달과 별과 모든 만물을 다 만들었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 위대한 신(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는 사상이다. 중세 시대에는 교회의 권력이 막강했고 신과 관련된 것들이 최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졌는데, 이에 따라 회화 등의 예술 활동도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기독교 공인 후 교회미술이 본격적으로 발전되면서 이전 시대의 유물들이 우상 배격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었고 오로지 신과 관련된 예술품만이 제작될 수 있었다. 중세 시대의 유럽에서는 모든 것이 신 중심으로 돌아가야 했으며, 절대자인 신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성경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여겨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회화에도 반영되어 화려한 색채가 사용되지 않고 경건하고 엄숙한 느낌의 흑백이나 가라앉은 느낌의 색채가 사용되었으며, 표현의 측면에서도 세련되고 화려하며 생동감 넘치는 표현보다는 신적인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편집] 3.1.2 르네상스 인문주의
새로운 기하학적 도구를 가진 인간은 이제 만물의 척도가 되었다. 이제 세계는 표준화가 가능해졌다. 모든 것들이 같은 척도로 비교될 수 있었고, 단순히 철학적 성질 대신에 수학적 기능을 하는 용어로 묘사될 수 있게 되었다. 물체들의 움직임은 공통의 기준으로 측정될 수 있었고, 그것은 아마도 자연의 나머지 위치 관계들 이상을 확증하는 법칙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을 지배하는 공통의 표준적이고 측정 가능한 법칙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한 발견이 피렌체인들에게서 생겨날 것임에 틀림없으리라는 자신감은 그 실체를 드러내게 했다. [11] 15세기에 들어서면서 피렌체를 중심으로 인문주의자들의 활동이 일제히 전개되면서 고대 로마의 유산인 공화정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었다. 어떠한 사람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시민의 자유와 그것을 보호하는 공화정(共和政) 시대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이 가장 크게 열린 시대였으므로 피렌체의 이상은 로마공화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이는 치정의 정통성을 고대에서 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데, 인문주의자들은 고대의 역사와 학문을 배우고 여기에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정치와 도덕의 원리를 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입장에서 다양한 해석이 탄생하고, 각각의 논자가 각각의 휴머니즘을 주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인간의 가치를 긍정해서 인생의 존재의의를 명확히 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으며, 그 때문에 인간역사의 발전과 호응해서 끊임없이 반성과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휴머니즘이라는 것은 특정의 체계적 사상을 가리키기보다도 오히려 인간을 존중하는 윤리적 태도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좁은 의미의 휴머니즘, 즉 인문주의라는 것은 특정의 역사적 개념을 가리킨다. 그것은 서구 르네상스 시기, 특히 15세기의 이탈리아를 정점으로써 개화한 인간긍정의 지적운동으로, 고대의 재발견과 결부되어서 중세적 정신형태로부터의 탈피를 지향하며, 지상적 인간의 활동과 인격을 재평가함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문화ㆍ사상을 방향지었다. 이 운동은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으로 확산되고 르네상스에서 종교개혁을 거쳐서 계몽주의시대로 발전하는 근대적 인간관 확립의 기축이 되었다. 이 시기는 미술에도 고전주의적 이상주의가 확립된 시기로서 회화의(회화는 소재면에서나 양식면에서 모두 더욱더 사실적이 되어 갔다.) 마사치오, F.안젤리코, 그리고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S.보티첼리가 있고, 조각에서는 도나텔로가 뛰어났으며, 건축분야에서는 F.브루넬레스키 등이 배출되어 르네상스 미술의 황금시대를 구축하였다. 당시 르네상스 미술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메디치 가문의 강력한 후원 덕이었다. [12] 예술품을 주문하는 계층이 교회에서 상인 출신의 부유층으로 변하면서 예술의 세속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후원자들의 수와 재력이 늘어남에 따라, 예술가들의 독립성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네 스스로의 개인적 스타일로 그려라”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말은 의미없는 충고에 불과했을 것이다. 세계에 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견해는 적절치 못했으며, 신학적인 위험까지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확립된 원근법 규칙들은 그것들을 좀 더 안전한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 이 시기에는 중세와는 달리 원근법, 인체 해부학적 지식, 사실성, 섬세한 선과 세련된 색채 활용이 두드러진다. 중세의 청각 위주에서 시각위주의 세계로의 변화는 이로써 가능해졌다. 세계는 시각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신의 목소리를 수동적으로 청취해야만 했던 청각의 시대는 인간의 눈에 의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시각의 시대로 옮겨갔다. [13]
[편집] 3.1.3 종교개혁
16세기경 로마 가톨릭 교회의 지나친 세속화와 타락에 반발, 가톨릭으로부터 이탈하여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세운 그리스도교 개혁운동이다.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의 매출에 반대해 95개조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일어났으며, 츠빙글리, 칼뱅 등에 의해 전 유럽에 퍼져 마침내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신교의 성립을 보았다. [14] 1522년 루터가 라틴어로만 쓰여지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던 성직자만이 성경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민중들도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성직자의 위상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면죄부 판매 등 교회의 부패에 대한 비판 역시 절대적으로 여겨지던 교회의 권위가 하락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편집] 3.1.4 신교 득세(플랑드르 지역)
북유럽 지역에서는 이탈리아보다 약 50~100년 후에 르네상스가 나타난다. 이 지역은 극사실주의적인 화풍의 특징을 보이며, 신교가 발달한 지역으로서 종교적 주제를 다룰 때도 사실적인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전 시대와 차이를 보인다. 이 지역에서도 역시 르네상스 미술은 부유층에 의해 지원되며 그로 인해 후원자의 얼굴이 구원받는 사람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전과는 달리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르네상스적 특징을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편집] 3.2 과학사적 배경 - 신비를 걷어내고 과학적 사실 직시로
[편집] 3.2.1 갈릴레오 갈릴레이 -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탈리아의 천문학자•물리학자•수학자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였다. 지동설을 확립하려고 쓴 저서《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체계에 관한 대화》는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었으며 이단행위로 재판 받았다. 갈릴레이는 모든 천체는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고 여겨지던 당시의 통념과는 달리 망원경을 통한 관측으로 목성(木星)도 그것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을 발견했고, 피렌체에서 메디치 가의 전속학자가 되어 연구활동을 지속하였다. 갈릴레이는 자신의 천문관측 결과에 의거하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에 대한 믿음을 굳히는데, 이것이 로마교황청의 반발을 사기 시작하였다. 성서와 지동설과의 모순성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섬기는 대공(大公)의 어머니에게 편지형식으로 자기의 생각을 써 보냈는데, 이로 말미암아 로마의 이단심문소로부터 직접 소환되지는 않았지만 재판이 열려, 앞으로 지동설은 일체 말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제1차 재판). 1618년에 3개의 혜성이 나타나자 그 본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심한 논쟁에 휘말리는데, 그 경과를 1623년에 《황금계량자》라는 책으로 발표하였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지동설과 천동설의 문제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천동설을 주장하는 측의 방법적인 오류를 예리하게 지적하였으며, 우주는 수학문자로 쓰인 책이라는 유명한 말을 함으로써 자신의 수량적인 자연과학관을 대담하게 내세웠다. [15]
[편집] 3.2.2 뉴턴 - 만유인력의 법칙
17-18세기의 위대한 과학자인 뉴턴의 최대 업적은 역학에 있다. 일찍부터 역학 문제, 특히 중력 문제에 대해서는 광학과 함께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구의 중력이 달의 궤도에까지 미친다고 생각하여 이것과 행성의 운동(이것을 지배하는 케플러법칙)과의 관련을 고찰한 것은 울즈소프 체류 때 이루졌다고 한다. 167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당시 사람들도 행성의 운동중심과 관련된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수학적 설명이 곤란해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는데, 뉴턴은 자신이 창시해낸 유율법을 이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확립하였다. 1687년 이 성과를 포함한 대저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가 출판되었으며, 이로써 이론물리학의 기초가 쌓이고 뉴턴역학의 체계가 세워졌다. 한편 신학에도 관심을 보여 성서의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고대사 해석을 검증하고, 천문학적 고찰을 첨가해 연대기를 작성하였다. 이 성서 연구를 통해 삼위일체설을 부정하는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근대과학 성립의 최고의 공로자이며, 그가 주장한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라고 하는 역학적 자연관은 18세기 계몽사상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16]
[편집] 3.2.3 다윈 - 진화론
19세기의 학자인 다윈은 생물진화론의 정립에 공헌하였다. 1831년 비글호에 박물학자로서 승선하여, 남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여러 섬(특히 갈라파고스제도)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지를 두루 항해 •탐사하고 1836년에 귀국하였다. 그 동안에 널리 동식물의 상이나 지질 등을 조사하여 후에 진화론을 제창하는 데 기초가 되는 자료를 모았다. 특히 갈라파고스제도에서의 관찰, 즉 다른 환경의 섬과 거기에서 생활하는 같은 계통의 생물에서 볼 수 있는 사소한 변이와의 관련은, 다윈으로 하여금 진화사상의 심증을 굳히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1859년 《종(種)의 기원(起原)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 in the Struggle for Life》(정식 명칭은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이라는 저작에 진화사상을 공표하였다. 진화론의 골자는 바로 그 저서의 표제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자연선택설을 요인론으로 한 것이다. 자연선택설은 생물의 어떤 종(種)의 개체 간에 변이가 생겼을 경우에, 그 생물이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만이 살아남고, 부적합한 것은 멸망해 버린다는 견해이다. 곧, 개체 간에서 경쟁이 항상 일어나고 자연의 힘으로 선택이 반복되는 결과, 진화가 생긴다고 하는 설이다. 이 설에서는 개체간의 변이가 어떻게 생기느냐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고, 라마르크가 제창한 환경의 영향에 따라 생긴 변이가 다음 대에 유전한다고 하는 획득형질유전론을 채용하고 있다. 또한, 개체 간에 경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견해는 T.R.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시사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물리학에서의 뉴턴 역학과 더불어 사상의 혁신을 가져와 그 후의 자연관•세계관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17]
[편집] 4. 마무리: 유럽의 사상적 배경과 원근법과의 연관관계
신 중심의 사상이 쇠퇴하고 인간 중심의 사상이 발달하는 동시에 종교적 신비함으로 설명되던 자연이 과학적으로 설명되면서, 인간의 눈으로 보는 자연 그대로의 세상을 회화에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물려 원근법이 발달하게 되었다.
[편집] 5. 참고문헌/참고 웹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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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7a0063a
- ↑ 조용훈, <그림의 숲에서 동, 서양을 읽다.>, 효형 출판사
- ↑ 레이 스미스, <원근법(Perspective)>, 삼호미디어
- ↑ 박 홍, <회화 원근법 기반의 렌더링에 대한 연구>, 중앙대학교
- ↑ 김지영, <르네상스 선형 원근법의 원리연구>, 예술연구, vol. 5
- ↑ 노영화, <원근법형성과 디지털시대 디자인에 있어서 해체에 관한 연구>
- ↑ 엘케 폰 라치프스키,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 금호문화
- ↑ 박현우, <입체애니메이션 제작의 원근법활용에 관한 연구>, 상명대학교
-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159
- ↑ 레이 스미스, <원근법(Perspective)>, 삼호미디어
- ↑ James Burke 지음, 장석봉 옮김, <우주가 바뀌던 날>, 지호출판사
- ↑ http://100.naver.com/100.nhn?docid=725520,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30730 에서 일부 발췌
- ↑ 조용훈 지음, <그림의 숲에서 동, 서양을 읽다.>, 효형 출판사
-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571 에서 일부 발췌
- ↑ http://100.naver.com/100.nhn?docid=3747 에서 일부 발췌
- ↑ http://100.naver.com/100.nhn?docid=40656 에서 일부 발췌
- ↑ http://100.naver.com/100.nhn?docid=41965 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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