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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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천도고려 문종(文宗)때 정배걸(鄭倍傑)이 설립한 사숙(私塾)의 명칭이다.

설립자[편집]

정배걸(鄭倍傑, ? ~ 1051년)은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초계 정씨(草溪 鄭氏)의 시조이다. 《고려사》 문종세가에는 정걸(鄭傑)이란 이름으로도 기록되어 있으며 예부상서(禮部尙書),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내고 문하시중(門下侍中), 광유후(光儒侯)에 추증되었다.

명칭유래[편집]

문종때 정배걸(鄭倍傑)에 의하여 개성 남문밖에 설립되었으며 홍문공도(弘文公徒)라고 불렀고 일명 웅천도(熊川徒)라고 하였다 한다. 문종 34년(1080년) 봄 2월 왕명으로 예부상서 중추사 정배걸(鄭倍傑)을 수태위 문하시중 광유후(守太尉門下侍中光儒侯)를 추증하라."는 기록을 볼 때 이때부터 시호인 홍문을 따서 홍문공도라 불렀고 그 이전에는 웅천도(熊川徒)라 불렀으리라 보며 웅천도야 말로 고려시대 생긴 사학 중 최초의 명칭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정배걸 이후 생긴 나머지 사학의 명칭들도 대부분 설립자의 시호를 붙여서 만들었다. 최충의 경우를 보더라고 최충의 생전에는 구재학당으로 불렀으나 사후에 문헌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문헌공도로 바뀌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