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주 정제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우문천에서 넘어옴)

주 정제
周 靜帝
개국공(介國公)
재위 581년 3월 4일 ~ 581년 7월 9일
북주의 제5대 황제
재위 579년 4월 1일 ~ 581년 3월 4일
즉위식 대상(大象) 원년 2월 20일
(579년 4월 1일)
전임 선제(宣帝)
북주의 황태자
재위 579년 3월 9일 ~ 579년 4월 1일
즉위식 대성(大成) 원년 1월 26일
(579년 3월 9일)
전임 선제(宣帝) 우문 윤(宇文 贇)
노왕(魯王)
재위 579년 2월 22일 ~ 579년 3월 9일
즉위식 대성(大成) 원년 1월 11일
(579년 2월 22일)
이름
우문 천(宇文 闡)
시호 정황제(靜皇帝)
능호 정릉(定陵)
연호 대상(大象) 579년 ~ 580년
대정(大定) 581년
신상정보
출생일 건덕(建德) 2년 6월 18일
(559년 8월 1일)
사망일 개황(開皇) 원년 5월 23일
(581년 7월 9일) (21세)
부친 선황제(宣皇帝) 우문 윤(宇文 贇)
모친 천대황후(天大皇后) 주만월(朱滿月)

주 정황제 우문 천(周 靜皇帝 宇文 闡, 573년 8월 1일(음력 6월 18일) ~ 581년 7월 9일(음력 5월 23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 북주의 제5대 황제(재위 : 579년 ~ 581년)이다. 본명은 우문연(宇文衍)이다. 선제의 장남이다.

생애[편집]

573년 2월, 장안(長安)의 동궁에서 태어났다. 579년 1월, 노왕(魯王)으로 봉해졌다. 그 다음에 황태자가 되었다. 2월, 고작 7세에 아버지 선제에게서 양위받았다. 선제가 천원황제(天元皇帝)를 칭했기 때문에, 정제는 정양궁(正陽宮)을 칭했다. 어렸기 때문에, 양황후의 아버지인 승상 · 수국공 양견(楊堅)이 보필했다. 즉위후 이름을 천(闡)으로 바꿨다.[1]

선제 시대에 이미 약해지고 있던 북주이지만, 정제의 시대에는 신주자사 이혜(申州刺史 李慧)와 황족 소국공 우문주(邵國公 宇文冑) 등이 군사를 일으켜서, 국내에 혼란을 가져왔다.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정제는, 581년 2월에 수왕(隋王) 양견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북주는 멸망하였고 퇴위 후의 정제는 개국공(介國公)에 봉해졌지만, 결국 5월에 양견에게 처형당했다.

가족 관계[편집]

조부모와 부모[편집]

  • 조부 : 고조(高祖) 무황제(武皇帝) 우문 옹(宇文 邕)
  • 조모 : 제태후(帝太后) 이아자(李娥姿)
  • 부친 : 선황제(宣皇帝) 우문 윤(宇文 贇)
  • 모친 : 천대황후(天大皇后) 주만월(朱滿月)

황후[편집]

  • 폐황후(廢皇后) 사마영희(司馬令姬) - 재위는 579년 ~ 580년이다. 부친은 형양공(滎陽公) 사마 소난(司馬 消難)이다.

기년[편집]

정제 원년 2년 3년
서력
(西曆)
579년 580년 581년
간지
(干支)
기해(己亥) 경자(庚子) 신축(辛丑)
연호
(年號)
대상(大象)
원년
2년 대정(大定)
원년

참고 문헌[편집]

각주[편집]

  1. 주서 권 8, 靜皇帝諱衍,後改爲闡,宣帝長子也
전 임
선제 우문윤
제5대 북주 황제
580년 ~ 581년
후 임
북주 멸망
(수 1대 수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