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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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대한민국보물
Yongbieocheonga.jpg
용비어천가 권1
지정번호 보물 제1463호
(2006년 4월 28일 지정)
소재지 서울시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외 3곳
제작시기 조선시대
비고 2권2책(서울역사박물관), 3권3책(계명대),

보물 제1463-1호 권8, 9, 10 계명대
보물 제1463-2호 권3, 4 서울역사박물관
보물 제1463-3호 권1~2 서울대 규장각
보물 제1463-4호 권1~2, 7~8 고려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조선 세종권제·정인지·안지 등이 세종의 명을 받아 지은 악장·서사시이다.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권제(權踶) 등이 짓고,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 등이 주석, 정인지가 서문을 쓰고 최항(崔恒)이 발문(跋文)하였다.

1445년(세종 27년)에 지어 1447년(세종 29년)에 간행하였다.

한글 창제 후 첫 시험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한글 문헌이며 악장이다.

모두 125장으로 조선 건국의 위대함과 시련을 노래했고, 그것이 하늘의 명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강조했다.

내용은 목조·익조·도조·환조·태조·태종 등 조선의 선대인 6대에 걸쳐 그 사적을 노래했다.

제1장, 제125장 등 10여 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각 장이 2절로 되었는데 앞절에는 중국 역사상의 사적을 적고, 뒷절에는 앞의 중국 사적과 부합되는 조선 건국의 사적을 노래했다.[1] [2]

배경[편집]

『용비어천가』는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함으로써 민중의 복속을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송축가였다.

이 작업을 위해 당대 일류의 유학자들이 집결해 온갖 종류의 사서와 경전을 뒤져 하나의 모범적 사례를 만들었다.

또한 그들은 이 노래를 통해 왕조를 창업한 이들의 업적을 찬미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영원히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군주의 도덕적 수신을 덧붙임으로써 미(美)와 자(刺), 곧 찬미와 규계라는 동아시아의 전통적 정치 사상을 구현했다.

이러한 『용비어천가』는 한글 창제에 의해 이루어진 조선 문학사상 최초의 국문시가로 고전 <동명왕편>(東明王篇) 같은 신화를 노래한 숭고성을 이어받고 <제왕운기>(帝王韻紀)나 <역대세년가>(歷代世年歌) 등 영사시(詠史詩)의 전통을 이은, 그리고 악장의 독자적 형식을 개척한 첫 작품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3]

지정 문화재[편집]

보물 제1463-1호[편집]

용비어천가 권8, 9, 10
(龍飛御天歌 卷八, 九, 十)
대한민국 대한민국보물
종목 보물 제1463-1호
(2006년 4월 28일 지정)
소유 계명대학교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훈민정음(訓民正 音)이 창제된 후 정음(正音)으로 기록된 최초의 문헌임과 동시에『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함께 조선시대 악장(樂章) 문학의 대표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책으로써, 세종조의 국어학과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4]

계명대학교 소장『용비어천가』는 전10권 중 권 8~권10의 3권으로 자체(字體)는 조선초기에 유행한 조맹부(趙孟 )의 송설체(松雪體)로 판각한 것이며, 판심(版心)에는 조선초기의 형식인 흑구(黑口)에 내향흑어미(內向黑魚尾)가 있어 초간본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책은 장차(章次)에 있어 몇 군데 오각이 있고 수정한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초판본 책판의 수정을 거쳐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4]

보물 제1463-2호[편집]

용비어천가 권3, 4
(龍飛御天歌 卷三, 四)
대한민국 대한민국보물
종목 보물 제1463-2호
(2009년 2월 23일 지정)
소유 서울역사박물관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용비어천가 권3,4
(龍飛御天歌 卷三, 四)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종목 유형문화재 제140호
(2001년 12월 31일 지정)
(2009년 2월 23일 해지)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용비어천가는 조선 왕조 목조(穆祖)로부터 태종(太宗)까지 6대의 사적(事跡)과 그에 대응되는 중국 역대 제왕의 사적(事蹟)을 대구로 하여 읊은 노래와 그 주석을 실은 책이다. 125장의 한 글가사와 그에 해당하는 한시(漢詩)를 본문으로 하고, 각장마다 주해를 붙인 체재로 되어 있다.[5]

본문은 조선의 건국이 천명에 의한 것임과 후대 임금에게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편찬하고 간행한 목적과 그 경위에 대해서는 책에 함께 실려 있는 1445년(세종 27) 정인지(鄭麟趾)의 서문과 권제(權踶) 등의 전문, 그리고 1447년의 최항(崔恒)의 발문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5]

이들 기록에 따르면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1445년에 본문을 만들었고, 세종이 최항, 박팽년, 강희안 등에게 주해를 덧붙이게 하여 1447년에 간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용비어천가의 초간본 중 권3~4부분이다. 비록 권3의 첫 부분과 권4의 말미에 결락 이 있지만 다른 부분은 보존상태가 좋고 인쇄상태도 매우 뛰어나다.『용비어천가』는 초간본이 간행된 이후 초간본의 체재를 그대로 따른 중간본으로 3가지 판본이 현전하고 있다.[5]

『용비어천가』는 한글 창제 이후 간행된 최초의 한글문헌으로 125장의 한글가사는 한글 사용의 가 장 오래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주해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 관직명의 한글 표기는 국어사 연구의 소중한 자료가 된다.[5]

보물 제1463-3호[편집]

용비어천가 권1~2
(龍飛御天歌 卷一~二)
대한민국 대한민국보물
종목 보물 제1463-3호
(2009년 10월 20일 지정)
소유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조선왕조의 건국이 천명(天命)에 의해서 정해졌다는 건국의 정당성을 알리고 후왕들에게 경천근민(敬天勤民)의 자세를 가르치기 위하여 서사체(敍事體)로 지은 악장(樂章)이다. 내용은 세종의 先代 六祖인 목조(穆祖), 익조(翼祖), 도조(度祖), 환조(桓祖), 태조(太祖), 태종(太宗)의 사적(事跡)과 그에 대응되는 중국 역대 제왕의 사적을 대구(對句)로 하여 읊은 노래와 그 주석을 실은 10권 5책의 목판본이다. 체재는 125장의 한글가사와 그에 해당하는 漢詩를 본문으로 하고, 각장마다 주해를 붙였다.[6]

«용비어천가»는 1445년(세종 27) 4월에 권제, 정인지, 안지(安止) 등이 125장의 한글 가사와 4 字 4句로 된 漢詩를 지었으며, 박팽년(朴彭年)·강희안(姜希顔)·신숙주(申叔舟)·이현로(李賢老)· 성삼문(成三問)·신영손(辛永孫) 등이 125장의 각 장마다 주해(註解)와 음훈(音訓)을 덧붙여 1447년 에 全 10권을 완성, 간행한 것이다. 그리고 『세종실록』권118 세종 29년 10월 甲戌조에 용비어천가 550本을 여러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頒賜〕는 기록이 보인다.[6]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가람 古貴 811.51-G995y> 1책은 『용비어천가』 전 10권 가운데 권1·2로 인쇄 상태가 양호하고 권수에 ‘선사지기(宣賜之記)’라는 인장이 찍혀 있어 1447년에 간행된 초간본의 초쇄본으로 보인다. 종이의 질〔紙質〕과 인쇄된 면〔印面〕의 상태가 뛰어난 점 등도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해 준다. 책의 본문 머리〔卷首〕의 진전문(進箋文) 3장 전면과 본문 권1의 1장 후면, 그리고 권2의 끝부분 44, 45, 46장이 떨어져 나갔으며, 권2의 41, 42장은 일부 훼손되어 배접되어 있다. 표지는 개장되었으며, 표제(表題)는 제첨(題簽) 형식으로 ‘龍飛御天歌 第一·二’ 라 되어 있다.[6]

이 초간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세종조의 국어 연구와 서지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25 장의 한글가사와 한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우리말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며 주해에 나오는 고유명사와 관직명 등의 고어(古語) 표기는 국어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일부에 떨어져 나간 부분〔落張〕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보존상태가 대체로 양호하고 전본이 희귀하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6]

보물 제1463-4호[편집]

용비어천가 권1~2, 7~8
(龍飛御天歌 卷一~二, 七~八)
대한민국 대한민국보물
종목 보물 제1463-4호
(2009년 10월 20일 지정)
소유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정보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고려대학교 도서관 만송문고(晩松文庫)에 소장되어 있는 『용비어천가』권1·2<만송 貴 369B1>와 권7·8<만송 貴 369B4> 각 1책은 1447년 초간본으로 서울대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용비어천 가』<가람 古貴 811.51-G995y> 및 기왕에 보물로 지정된 보물 제1463-2호 권3·4(역사박물관 소장)과 보물 제 1463-1호 권8·10(계명대 소장)과 같은 판본이다. 권1 권수의 서문 1~3장은 떨어져 나갔고 권2의 44~46장은 일부 훼손되어 45장은 3행만 있고 4~9행은 떨어져 나갔다. 권 7·8 은 표지에 제첨형식의 ‘龍飛御天歌’가 있으며 오래되어 닳아져 있으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6]

특히 권7은 유일본이고 권8은 지정된 계명대본보다 보존상태가 좋다. 지질이나 인쇄 상태가 아주 양호하고 각 책의 전체 내용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손색이 없다. «龍飛御天歌»는 한글창제 이후 간행된 최초의 한글문헌이다. 125장의 한글가사는 한글 사용의 가장 오래된 모습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주해 속에 나오는 고유명사, 관직명의 한글 표기는 국어사 연구에서도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만송문고(晩松文庫) 소장인 『용비어천가』권1·2와 권7·8 각 1책은 1447년(세종 29) 초간본으로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전본이 희귀하다는 점 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여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6]

함께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은 이 중 卷3과 卷4이며, 匡廓은 四周雙邊이고, 半廓의 길이는 25.9㎝×17.6㎝, 9行 20字에 注雙行이며 界線이 있다. 版心에는 上下 黑口가 있고, 魚尾는 上下內向黑魚尾이다. 卷3은 앞부분 8장이 缺落되었고, 卷4는 끝부분 1장(제46장)이 결락되었으며, 제 45장의 後面 제 6행~9행의 상단부가 1~5字 단절되었다. 이 책의 卷3과 卷4는 본래 1冊이었던 것을 후에 2冊으로 分冊한 것이다.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龍飛御天歌의 現存本은 活字本으로 간행한 기록이나 실물은 나타나 있지 않고, 세종 29년(1447년)에 처음 목판으로 550秩 간행한 후 수차에 걸쳐 간행된 목판본이 전한다. 그중 光海君 4년(萬曆 40年 : 1612年) 5월의 內賜記가 있는 본과 孝宗10년 (順治16년 : 1659년) 12월의 內賜記가 있는 본, 英祖 41년(乾隆 30년 :1765년) 6월의 內賜記가 있는 본 등이 전한다. 서울역사박물관 소장본은 飜刻本인 광해군4년본(萬曆本)이 갖고 있는 번각본의 특징인 書體가 힘이 없거나 글씨의 太細가 일정하지 않은 점, 1~3葉魚尾가 混在한다는 점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반면, 初刊本으로 알려져 온 奎章閣 伽藍本 卷1,2와 高麗大 晩松本卷7,8과 마찬가지로 全 卷에 걸쳐 純一하게 上下內向黑魚尾를 가지고 있다. 이 刊本은 일부 落張이 있고 初刊本 初刷인지, 後刷인지 그 印出年代를 둘러싸고 약간의 논란이 있으나, 世宗朝의 국어 연구와 書誌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상태가 양호하고, 卷3,4로는 壬辰倭亂 이전의 간행본중 唯一本이라는 점에서 2001년 12월 31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되었고, 2009년 2월 23일 보물 제1463-2호로 승격되었다.
  2. 서울특별시고시제2001-445호,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지정》, 서울특별시장, 서울특별시 시보 제2379호, 48면,2001-12-31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한국학중앙연구원(1998년)
  4. 문화재청고시제2006-40호,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관보 제16244호, 311면, 2006-04-28
  5. 문화재청고시제2009-16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대한민국 관보 제16944호, 22면, 2009-02-23
  6. 문화재청고시제2009-94호,《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대한민국 관보 제17113호, 49면, 2009-10-20

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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