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차이나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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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차이나타운
일본어식 한자 표기: 横浜中華街
가나 표기: よこはまちゅうかがい
영어: Yokohama Chinatown
Yokohama Chinatown's East Gate
Temple in Yokohama Chinatown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중국어 정체: 横濱中華街, 병음: Hèngbīn Zhōnghuá Jiē, 광둥어: kwong doe chung wah gai, 일본어: 横浜中華街 (よこはまちゅうかがい), 영어: Yokohama Chinatown)는 일본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에 위치한 차이나타운(Chinatown, 中華街)이다. 도쿄 도남쪽에 위치해 있고, 형성된 지가 150년 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한족들이 모여 살고 있지만 인구수는 3~4천명이 거주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광저우에서 이주했지만, 일부는 다른 지역에서 이주했다.

일본의 4대 차이나타운 중 나머지 3곳인 고베 차이나타운, 나가사키 차이나타운, 도쿄 이케부쿠로 차이나타운 그리고 동아시아(에서도 가장 큰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세계적으로도 대규모의 차이나타운 중 하나이다. 이곳에는 200개 이상의 음식점들이 위치하고 있다(다만, 다른 상점들은 이 수치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중국인보다도 일본인이나 유럽인이 훨씬 많은데 이는 다른 나라의 차이나타운 뿐 아니라 같은 일본 내의 차이나타운인 고베, 나가사키 등에서도 보기 힘든 예라고 한다. 유명한 명소로 관우묘가 있다.

역사[편집]

1859년에 요코하마 시가 개항할 때, 요코하마에 들어오는 유럽 상인들은 한자를 아는 유능한 중국인 통역관들을 스카우트해옴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중국인들의 거주지역이 형성되었다. 나중에는 상하이홍콩 사이의 페리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많은 중국 상인들은 일본에 오면서 학교를 세웠고, 중국인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여러 가지 다른 기능을 갖춘 차이나타운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일본 정부의 규제로 이주자가 지정된 곳 이외에 사는 것은 제한되었다. 1899년 법이 바뀌어서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규제가 완화되었다.

1923년간토 지방에서 간토 대지진이 일어났다. 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1900만 명[모호한 표현][출처 필요]은 집을 잃었다. 차이나타운도 이때 고생했는데 많은 이민자가 이때 중국으로 되돌아갔다.

1937년에 중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차이나타운은 잠시 경제가 침체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성장했다. 1955년 대문이 지어지면서 차이나타운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요코하마 중화가라고 불리게 되었다(지금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

1972년 중일 관계가 맺어지면서 차이나타운은 요코하마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2004년 2월 2일에는, 미나토-미라이 선와 차이나타운을 연결하는 모토마치-추카가이 역이 개통되었다.

교통[편집]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기차, 버스, seabus,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다.

기차[편집]

버스[편집]

요코하마 역 동쪽 버스 정거장에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6개의 버스 노선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사쿠라기초 버스 정거장을 통해서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16개의 버스 노선이 있다.

Seabus[편집]

  • Seabus (페리)

같이 보기[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