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다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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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타쿠로(일본어: 吉田 拓郎 (よしだ たくろう), 1946년 4월 5일 ~ )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이다. 작곡가로서 곡을 제공할 때는 入江剣이라는 예명을 쓰기도 한다. 카고시마현 이사시에서 태어나 히로시마에서 성장, 대학까지 히로시마에서 마쳤다. 가수인 요스미 케이코(四角佳子), 배우 아사다 미요코(浅田美代子)와 이혼하고 현재 세 번째 부인인 배우 모리시타 아이코(森下愛子)와 살고있다. 부인인 모리시타 아이코가 속해 있는 타케다 기획竹田企画 소속이다. 음반사는 ELEC Record~CBS SONY~For Life Records~Imperial Records~Avex를 거쳐왔다.

일본 싱어송라이터의 효시로 볼 수 있는 존재. 당시 마이너였던 포크와 록을 단숨에 일본 음악의 주류로 만들고, 대규모 단독 야외 콘서트, 라디오의 활성화, 콘서트 투어, 프로듀서, 레코드 회사 설립등, 여러가지 새로운 길을 개척한 개척자로서 일본 팝뮤직 역사상 가장 중요한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생애[편집]

성장 과정[편집]

양친이 조선 라남구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로 양친의 출생지나 성장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다. 타쿠로는 가고시마현 오오구치시(鹿児島県大口市) 에서 태어났으나 왜 가고시마였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1]。부친은 요시다가의 양자로 가고시마현청에 근무. 가고시마현의 향토사에 관한 연구를 하는 일을 했다.

  • 1955년 : 양친 별거. 형은 동경의 대학에 다니고 있었고, 어머니는 누나와 타쿠로를 데리고 히로시마로 이사를 했다. 히로시마는 외할머니의 출신지이다. [1]. 릿쿄 대학 재즈과에 들어가 피아니스트를 목표로 하고있던 형이 방학때만 되면 여성과 동반으로 귀향하는 것을 계기로 음악에 대한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부터 기관지 천식을 가지고 있어서 몸이 약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일이 많았고, 어머니가 책을 사다주었으나 음악에 흥미를 가졌기에 우쿨렐레를 사달라하여 음악을 시작했다.
  • 1962년 : 히로시마현립 히로시마 미나미 고교에 입학하여, 친구들과 '톤 다이아몬즈'(「トーン・ダイヤモンズ[2]」라는 이름의 연주밴드를 결성, 우쿨렐레를 담당했다.
  • 1963년 : 고교 2학년 시절, 집에 하숙하던 히로시마대학학생에게 클래식기타를 배우고 작곡을 시작했다.
  • 1964년 : 밴드는 비틀즈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비틀즈의 카피전문 밴드가 되어 결국 밴드명도 '플레이보이즈' 라고 변경하였다.

앨범[편집]

  • よしだたくろう 青春の詩(1970年)
  • よしだたくろう 人間なんて(1971年)
  • 元気です。(1972年), 차트 1위
  • 伽草子(1973年), 차트 1위
  • 今はまだ人生を語らず(1974年), 차트 1위
  • 明日に向って走れ(1976年)
  • ぷらいべえと(1977年), 차트 1위
  • 大いなる人(1977年)
  • ローリング30(1978年)
  • Shangri-La《シャングリ・ラ》(1980年)
  • アジアの片隅で(1980年)
  • 無人島で…。(1981年)
  • マラソン(1983年)
  • 情熱(1983年)
  • FOREVER YOUNG(1984年)
  • 俺が愛した馬鹿(1985年)
  • サマルカンド・ブルー(1986年)
  • MUCH BETTER(1988年)
  • ひまわり(1989年)
  • 176.5(1990年)
  • detente(1991年)
  • 吉田町の唄(1992年)
  • Long time no see(1995年)
  • 感度良好 波高し(1996年)
  • ハワイアン ラプソディ(1998年)
  • こんにちわ(2001年)
  • 月夜のカヌー(2003年)
  • 午前中に…(2009年)

주석[편집]

  1. すばる(잡지 스바루)、2010년3월호、集英社、p122-150
  2. 이 밴드명은 리틀 달링(little darling) 이라는 곡으로 대히트를 거둔 미국의 록밴드 '다이아몬즈'에서 따왔다고 한다. (いつも見ていた広島 〜小説吉田拓郎 ダウンタウンズ物語、2007年、田家秀樹、小学館、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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