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왜(倭) 또는 왜국(倭國, 왜나라)은 일본 열도 남서부에 위치했던 고대의 부족국가들의 집합을 일컫는 말로 현재의 일본(日本)을 가리킨다. 또는 일본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 타국에서 일본국을 부르는 명칭이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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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의 관계 [편집]
백제와 왜는 평소 문물을 교류하고 지냈다. 예를 들어, 백제인인 왕인 박사는 왜에 천자문과 기타 유교 경전을 전수했으며, 수수허리지는 일본에 술을 만드는 법을 전파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기술자들과 학자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였고, 백제는 이를 통해 군사적 이득을 얻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660년 백제가 멸망하게 되자 왜는 고교쿠 천황(사이메이 천황)이 백제를 돕기 위해 3만 대군을 출병시켰으나 백강구 전투에서 신라군에 의해 대패하였다. 멸망한 이후의 백제 유민의 상당수는 왜로 유입되어 정착하게 되었다.
신라와의 관계 [편집]
- 초기의 관계
8년에 왜인들이 군사를 몰아와 변경을 침범하려다가 시조 박혁거세가 거룩한 덕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만 돌아갔다. [1]
11년, 왜인이 병선 100여 척을 보내 해변의 민가를 약탈하였다. 6부의 정병을 보내 이를 방어하였다. [2]
59년 신라와 수교하였으나, [3] 73년에 목출도(木出島)를 침범해 신라에서는 각간(角干) 우오(羽烏)를 보내 막았으나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전사하였다. [4]
이처럼 초기에는, 왜와 신라는 대체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다.
- 하지만, 7세기 이후 왜는, 신라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하쿠호 문화를 발전시켰다. 하쿠호 문화의 불상, 탑, 가람배치와 율령, 정치제도는 신라의 불교와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왜는 견신라사 등을 파견해 문물을 배워가려고 한 노력이 보인다. 따라서 후기에는 왜가 신라에 조공하며 신라와 우호적으로 교류하는 관계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중국과의 관계 [편집]
기원전 1세기 초부터 100여 국의 왜가 낙랑을 통해 한(漢)나라 또는 위에 조공했는데 이들은 한반도에 있는 본국의 외교노선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5]
같이 보기 [편집]
주석 [편집]
- ↑ 8년~:《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시조 혁거세 거서간 편 條>, 八年, 倭人行兵, 欲犯邊, 聞始祖有神德, 乃還
- ↑ 59년~:《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남해 차차웅 條>, 十一年, 倭人遣兵船百餘, 掠海邊民戶, 發六部勁兵, 以禦之
- ↑ 59년~:《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탈해 이사금 條>,三年...夏五月 與倭國結好交聘
- ↑ 73년~:《삼국사기》<신라본기 제1권 탈해 이사금 條>, 十七年 倭人侵木出島 王遣角干羽烏禦之 不克 羽烏死之
- ↑ 김용운 (2010).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 한얼사, 45~46쪽. ISBN 978-89-89148 32-6 “또한, BC 1세기 초부터 100여 국의 왜가 낙랑을 통해 한(漢)나라 또는 위에 조공했는데 이들은 한반도에 있는 본국의 외교노선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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