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돌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온돌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한국의 전통적인 가옥 난방 방법이다. 방구들이라고도 한다. 한옥아궁이에서 을 피우고, 아궁이에서 생성된 열기를 머금은 뜨거운 연기가 방바닥에 깔린 구들장 밑을 지나면서 난방이 되고, 그 연기는 구들장 끝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의 난방법이다.

온돌과 비슷한 개념의 대표적인 장치로는 불목[1]이나 개자리[2]가 없는 원시적인 형식의 (아궁이와 고래[3]만으로 구성된) 로마 시대 대형 목욕탕 온수 공급 방법인 히포코스타(hypocaust)가 있다. 또한 히포코스타에서 파생되어서 중세 시대 의 난방 장치로 쓰인 글로리아(gloria)도 들 수 있다.

장점과 단점[편집]

서양벽난로일본이로리 등은 열원을 직접 이용하는 난방 장치인 데 비해, 온돌은 열기로 구들장과 구들장 아래의 고래를 데워 발생하는 '간접 복사열'을 난방에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잘 만든 구들장이라면, 아궁이에서 직접적인 열원을 제거한 이후에도 구들장의 열기가 비교적 장시간 지속된다. 좋은 구들의 조건은 이 '잔류 온기'가 얼마나 오래 가는가에 달려 있다.

단점은 구들(방바닥)이 갈라지거나 깨지면 연기가 올라와서 일산화탄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열효율의 문제도 들 수 있는데, 자기 전 불을 지펴서 그 잔류 온기로 온 밤을 지내기 위해서는 필요 이상 과하게 열을 가하게 된다. 또 다른 단점은 온돌의 구조상 아랫목과 윗목에 온도차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구조[편집]

시대와 지방에 따라서 온돌 설계 구조에 약간씩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요건만을 맞추어 온돌을 만든다면, 방 밖에 있는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고 그 아궁이의 열기가 구들장 아래에 있는 고래를 타고 밖에 만들어둔 굴뚝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온돌은 열의 전도, 복사대류를 적절하게 이용한 장치다.[4]

불기를 머금은 연기가 지나가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아궁이 - 부넘기 - 바람막이 - 개자리 - 굴뚝개자리 - 굴뚝

아궁이[편집]

운현궁 노안당의 아궁이.

부뚜막의 아궁이: 불을 피워 열기를 발생시키는 장소로 방 밖에 있다.

  • 방이 작은 경우에는 한 아궁이 (또는 두 아궁이)에 외방 구들이 연결된다.
  • 방의 크기나 집의 구조 등에 따라서 여러 개의 아궁이가 붙어서 하나의 구들로 연결되기도 하고, 하나의 아궁이에 여러 개의 구들이 연결되기도 한다.
  • 작은 집은 부엌의 부뚜막과 하나로 되어 있고, 큰 집에는 각 방 또는 건물마다 따로 난방용 아궁이를 놓기도 한다.

불목[편집]

불목(불고개, 부넘기 또는 부넹기)은 아궁이에서 발생한 열기가 방의 바닥 (구들) 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곳이다.

  • 솥을 거는 부뚜막 벽면에서 시작해서 구들장 밑의 고래로 연결되는 열기의 통로다.
  • 아궁이 뒷부분 (후렁이)을 통해서 들어온 열기를 구들개자리와 고래로 넘겨주는 턱진 공간이다. 아궁의의 세찬 화력이 제대로 빨려 들어올 수 있도록 그 넓이와 높이를 잘 조절하여서 만들어야 한다.
  • 불목 위로 돌을 고여서, 이것으로 불목의 넓이를 조정함으로 열기의 유입량을 조절할 수 있다.
  • 한반도 북쪽(북한)이나 만주 등의 혹한지역에서는 많은 열기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불목의 모양이 둔덕에 가까운 넓고 큰 구조로 되어있다.
  • 후렁이와 불목이 너무 좁으면 열기가 제대로 빨려 들어오지 않는다.
  • 후렁이와 불목이 너무 넓으면 화기가 없을 때 차가운 바깥 부엌의 공기가 그대로 흘러들어 오므로 구들이 빨리 식어 버린다.
  • 불목은 불을 피울 때의 연료량과 불이 꺼진 후 구들 전체의 '잔류 온기' 등의 열효율에 큰 영향을 준다.

구들개자리[편집]

구들개자리는 방의 첫 부분에 해당하며 이 윗부분이 아랫목이다.

  • 고래가 시작되기 전에 있으며, 고래보다 깊게 파여 있는 공기와 열기의 혼합 장소이다.
  • 불목에서 넘어온 열기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열기가 구들 내부의 비교적 차가운 공기와 섞여 퍼지면서 난방의 효과를 내는 실제적 첫 도입부이다.
  • 이 부분(아랫목)의 구들장은 윗목의 구들장보다 두껍게 깐다.
  • 너비가 구들장 1개 돌판보다 작고 깊이는 고래 바닥에서 약 30cm 정도의 깊이지만 그 너비와 깊이는 지역의 기온과 기타 설계에 따라 차이가 있다.
    • 혹한 지방은 얕은 구들개자리와 큰 불목으로 설계한다.

고래[편집]

고래방고래(房 - )라고도 하며 아궁이에서 땐 강한 불이 탈 때 생기는 열과 연기가 나가는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길이다.

구들장[편집]

구들장은 고래를 덮은 얇고 넓은 돌로 방바닥을 이루는 구조로, 한국의 조상들은 구주로 운모를 사용하였다. 그 중 백운모를 사용하였는데 백운모가 열 보존 시간이 크고, 절연체였기 때문이다. 구들장에 쓰이는 다른 암석들에도 주로 운모라는 광물이 대부분 함유되어 있다.

방바닥[편집]

방바닥은 구들장 위에 흙을 발라서 만드는데 보통 두껍고 질긴 종이에 기름을 먹인 유지 장판을 깔아 마감했다. 그 밖에도 광목에 기름을 먹여 쓰거나 솔방울·은행잎 등을 짓찧어 얇게 펴 바르는 등 오래가고 물이 스미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방바닥을 만들기도 했다.[4]

역사[편집]

백제 시대 온돌 유적.

온돌은 기원전 5000년쯤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볼 수 있으며 4세기경의 황해도 안악 3호분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그려져 있다. 온돌이 방으로 만들어진 통구들의 형태는 고려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 부유층에서 사용했으며 병자나 노인의 방에 주로 사용되었다. 만드는 어려움이나 관리, 그리고 연료의 소모로 볼 때 고급스러운 난방 방법으로 여겨졌다.

태종 17년 (1417년) 윤5월 14일조선왕조실록에서는 당시 설립한 지 얼마 안된 성균관의 유생들 중 병을 앓는 이들을 위해 온돌방 하나를 만들도록 한 기록이 있다. 이로 볼 때 전면적으로 온돌방을 사용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후 세종 7년(1425년)에는 성균관의 온돌을 5간으로 늘리도록 하였으며 16세기가 돼서야 전부 온돌방이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모두 침상을 사용하였으며 나무마룻바닥이었다. 조선 명종 18년(1563년) 2월 4일에 임금의 침실에서 화재사고가 있었는데 이때의 정황 설명 중에서는 임금의 침상에 작은 온돌구조를 만들어 자리를 덥혔는데 이때 부주의로 돌을 잘못 놓아 불기가 침상에 닿아 불이 나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인조 2년(1624년) 3월 5일의 조선왕조실록 기사에서는 광해군 때에 이미 사대부의 종들이 사는 방조차 모두 온돌인데 나인들이 판방에서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 하여 나인들의 방도 온돌방으로 바꾸었다는 대목이 나와 궁궐에 온돌의 보급이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기후가 유난히 추워서 소빙하기라고도 불리는 16세기 17세기를 거치면서 온돌은 점점 많이 보급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보통 백성의 초가집에도 온돌이 널리 사용되었다.

온돌은 한국의 추운 북쪽 지방에서 발달한 방식으로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한국의 모든 지역에서 받아들여 사용하였다. 그런데 온돌은 한국인의 생활 습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방바닥을 달구는 방식이다 보니 온돌은 한국인들이 바닥에 앉아서 생활하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한국인들은 온돌 덕분에 무슨 일을 하든 방바닥에 직접 앉아서 하는 데에 익숙하게 되었다. 이것은 모든 실내 가구에도 영향을 미쳐 가구의 크기나 가구에 달린 문과 손잡이의 위치도 앉아서 생활하는 데 알맞게 만들어졌다. 조선 시대에는 유학의 생활화로 방 안에 아궁이와 가까운 지점인 아랫목을 상좌로 하여 방 안에서도 자리의 위계 질서를 세우기도 하였다.[4]

온돌의 연료[편집]

전통적인 온돌은 아궁이의 연료로 주로 , 또는 나무를 사용했다. 숙종 때의 김덕기는 동래에서 말똥으로 만든 땔깜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이 이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온돌은 땔감으로 나무를 너무 많이 소모하였으며 환경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1] 조선시대에 땔감은 면포와 쌀과 함께 가장 중요한 생활용품이었다. 궁궐에서는 시목을 공물로 제공하는 기인(其人)이 땔감과 숯을 공급하였으며 민간에서는 보통 사내아이들이 나무꾼 노릇을 많이 하였다. 1960년대 이후로는 주연료가 연탄으로 대체되었으며 현재는 석유, 가스를 사용하는 보일러가 많이 보급되었다.

현대의 온돌[편집]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일산화탄소 중독의 피해를 줄임과 동시에 열효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돌 형식을 활용한 온수 보일러가 개발되어서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온수 보일러가 가정 난방법의 주력으로서, 전통의 온돌을 대신하여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도시 지역 등의 온돌용 연료 수급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전통 온돌을 보기 힘들며, 그 대신 온수 보일러, 온돌 마루, 심야 전력을 이용한 전기 온돌 등의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편의성, 전통적 연료의 공급 문제, 가스 중독 등의 안전성의 이유와, 설치와 관리의 용이함 때문이다. 현재의 온수 보일러는 연탄, 석탄, 석유, 전기 등, 다양한 에너지를 사용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 종류의 연료를 혼용할 수 있거나, 연탄이나 석탄 연료의 반자동 교체, 심야 전력의 사용 등 열효율과 편의성을 고려한 비용 절감형의 새로운 설계가 계속 연구 개발되고 있다.

온돌용 연료 구입에 큰 장애를 받지 않는 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전통 온돌이 시공되고는 있지만, 연료와 가스 중독 문제 때문에 사람이 거주하는 건물 등은 관계 법령에 따라서 엄격한 시공 규격과 시공 감독 사항이 적용된다. 사람이 사는 집 외에도, 축사와 온실의 난방법으로 농가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연료 (짚과 나무 혹은 연탄)를 사용하는 전통 설계 형식의 온돌이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온수 파이프의 동파나 관리상의 이유 등으로 온수 보일러의 설치가 적당치 못하고, 석탄, 석유, 가스 등의 지속적인 공급이 어려운 오지, 산지 고지대, 도서지역 등에서는 아직도 전통 온돌이 빈번하게 시공되어서 사용되고 있다.

1980년대한주택공사에서 조사한 난방방식은 연탄아궁이 42.5 %, 연탄보일러 13.9 %, 단독기름보일러 2.3 %, 중앙난방 보일러 3.0 %, 재래식 아궁이 37.9 %, 기타 0.4 % 이다.[5]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아랫목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
  2. 난방 효과를 높이기 위해 방구들 윗목에 고래보다 더 깊이 파 놓은 고랑
  3. 고래란 방의 구들장 밑으로 나 있는 통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궁이에서 들어오는 불길과 연기가 이곳을 통해 지나간다. 방고래라고도 한다.
  4. 한국 문화 기초용어. 국립국어원. 2012년 9월 10일에 확인.
  5. 대한주택공사 주택연구소 (1985년 12월). 아궁이식연탄온돌비교시험연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보고서). 《건설교통부 학술정보》. 2012년 5월 23일에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