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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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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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Flag of Austria-Hungary (1869-1918).svg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종류 해군
규모 33,735명 (1915년)
노급함 4척
노급전함 9척
해양경비함 4척
무장 순양함 3척
경순양함 6척
구축함 30척
어뢰정 36척
잠수함 6척
명령 체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쟁성
본부 아드리아 해 해군본부
참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의화단 운동
제1차 세계대전
지휘관
지휘관 빌헬름 폰 테게토프
안톤 하우스
호르티 미클로시
1915년에 제정된 문장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정식 명칭은 제왕 전쟁 해군(帝王戰爭海軍, Kaiserliche und Königliche Kriegsmarine)이며, K.u.K. Kriegsmarine으로도 표기된다. 1915년 당시 해군 총병력은 33,735명이었다.

현재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모두 내륙국이다.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해안 지방을 상실함에 따라 해군은 해체되었다. 해군 전력은 이탈리아유고슬라비아에 넘어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해였던 아드리아 해는 현재 이탈리아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몬테네그로, 알바니아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

해군의 함명 앞에는 SMS가 붙었는데, 이는 황제 폐하의 군함(Seiner Majestät Schiff)을 의미한다.

역사[편집]

기원[편집]

요제프 2세
아드리아 해의 현재 지도 그림

18세기 후반까지 오스트리아 해군 창설 시도는 제한적이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다뉴브 강에서 오스만 제국과 싸우는 동안 합스부르크 가(家)는 무장선을 고용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로부터 선박을 보호하는 상선(商船) 해군을 사용했으나, 이들은 밑에서부터 공통적인 지휘계통을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공통적인 목적으로 군대에 복무할 생각이 없었다. 7년 전쟁 후 지중해에서 사략선(私掠船, 전시에 적의 상선을 나포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민간 무장선)에게 공격받기 쉬운 오스트리아에서 카우니츠 백작이 소규모 전력의 프리깃 함대 창설하도록 이끌었다. 빨강-하양-빨강의 가로형으로 그려진 해군기(Marineflagge)는 요제프 2세의 통치기간에 소개되었다.

상황은 1797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서 캄포 포르미오 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많이 바뀌었다.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 프랑스에 양도하였고, 코르푸아드리아 해에 있는 몇몇 베네치아 섬들을 포함하여 지중해에서 몇몇 섬들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었다. 베네치아와 베네치아의 해외 영토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에 의하여 분할되었으며, 오스트리아 황제는 베네치아 시를 따라 이스트리아달마티아를 받았다. 베네치아 해군과 베네치아 해군의 시설물들은 오스트리아의 소유가 되었으며, 오스트리아 해군의 앞날을 밝게 한 토대가 되었다.

19세기[편집]

1820년의 오스트리아 해군 장교와 수병

해군의 현대화[편집]

노바라 탐험[편집]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편집]

보오 전쟁[편집]

전쟁이 없는 기간[편집]

폴라르 원정[편집]

세기 사이에서[편집]

크리티 반란[편집]

의화단 운동[편집]

몬테네그로[편집]

제1차 발칸 전쟁 기간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와 함께 몬테네그로바르 지역의 항구를 봉쇄하는 데 기여하였다.


드레드노트 시대[편집]

제1차 세계 대전[편집]

두라초 전투[편집]

오트란토 해협 전투[편집]

1918년 폭동[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종결[편집]

전함 손실[편집]

제1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손실된 전함:

제1차 세계 대전 후 손실된 전함:

유명 인사[편집]

지도자들[편집]

해군 총사령관[편집]

함대 사령관 (1914~1918)[편집]

국방성의 해군부장[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