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건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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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건 통로

오리건 통로(Oregon Trail)란 미국 서부 개척자들의 이동로를 말한다. '오리건 산길' 이라고도 하며, 미주리 주에서 오리건 주에 이르는 약 3200 km의 산길을 지칭한다.미주리주 인디펜던스 부근에서 플래트강을 지나 윈드리버산맥의 남쪽 산마루를 넘고, 스네이크강을 따라 컬럼비아강가의 와라와라 성채까지 뻗어 있었으며 19세기에 몇 년이나 걸려 완성되었다.이 길은 1820년대에는 올가미 사냥 꾼이나 교역상인, 선교사만이 통행하는 길이었으나 1840년대 초 골드러시때 금에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이 금을 캐러 집단이동을 하면서 이 통로를 이용하게 되었고,서부개척에 큰 기여를한다.이밖에 캘리포니아 이주자. 유타 주로 가려는 모르몬 교도, 목장주, 카우보이등은 모두 오리건 통로를 이용했다.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르랜시스 파크먼이 쓴 The Oregon Trail이라는 책도 발간이 되었다.요즈음에는 일상생활에서 돈을 빨리 딸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동 중 생활[편집]

사람들은 정돈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수레를 타고 가는 것을 싫어했고, 대부분 그냥 걸어갔다.신발은 금방 만신창이가 되었고 발은 피투성이가 되기 십상이었다.서부로 가는길은 강,산,사막 등 험난한 지형의 연속이어서 개척자들은 산을 오르내리고,진흙과 먼지와 싸워야했다.

캠핑[편집]

개척자들은 짐마차 주변에 불을 피워놓고 캠핑생활을 했다. 지친 가축들의 울타리역할을 해주기 위하여 그들은 원을 그려 빙둘러 앉았다. 오리건통로를 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캠핑생활도 점점 힘들어졌다. 불을 피울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나무가 많지 않아 그들은 버팔로의 똥으로 연료를 대신했다.

버팔로[편집]

거대한 버팔로 떼가 오리건 통로를 지나는 사람들의 앞길을 막을때가 많았다. 개척자들은 이때 만사를 제쳐두고 버팔로 사냥을 하곤했다. 이때 무리한 사냥으로 인해 버팔로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인디언[편집]

오리건 통로로 가던 사람들이 제일 우려했던 두개의 인디언 부족은 북쪽의 샤이엔족, 남쪽의 파우니 족이었는데 이 두 족모두 개척자들에게 공격은커녕 친절을 베풀었다. 개척자들과 인디언 사이에서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졌는데 개척자들은 주로 그들의 옷이나 권총, 담배를 주었고 인디언들은 말이나 식량을 제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척자들이 가축을 지나치게 초원에 방목하고, 땔감을 위해 나무를 잘라내고, 버팔로를 사냥하기 시작했고, 인디언들은 피해를 입었다.

역경[편집]

강 건너기[편집]

개척자들에게 결코 피할 수 없었던 역경으로, 수백명이 북부 플라테강과 콜럼비아 강을 지나려다가 익사했다. 1850년 한 해만 하더라도 37명이 익사했다고 한다.

이동수단[편집]

수레에는 보통 짐을 실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3200km나 되는 거리를 맨발로 걸어가야했다.

사고[편집]

대부분의 사고는 개척자들 자신들의 과오로 일어났고, 황소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거나, 이동수단인 수레를 잘 운전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고들이 많았다.수레에는 어떤 안전장치도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수레바퀴 밑에 깔려 죽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동 중 기후[편집]

번개가 자주 쳤고, 그 벼락에 맞아 죽은 사람이 많았다. 환경이 열악했기 때문에 조금만 비가와도 수레나 마차에 비가 샜고 주변은 평원이었기때문에 마땅히 피할 은신처도 없었다.

콜레라[편집]

오리건 통로 이동중 가장 심각했던 문제로서, 마땅한 치료책이 없어 멀쩡하던 사람이 몇시간만에 죽었나갔고, 그중 소수만이 제대로 땅에 묻혔다. 나머지는 길가에 버려지거나, 마차나 수레 위에서 쓸쓸하게 혼자서 죽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