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히데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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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히데노부(織田秀信)
Odahidenobu.jpg
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에도 시대
출생 덴쇼 8년(1580년)
사망 게이초 10년 5월 8일(1605년 5월 24일)
개명 산보시 → 히데노부
별명 기후노 주나곤
관위 종 4위하 시종(従四位下・侍従), 사코노에곤쇼쇼(左近衛権少将), 산기(参議), 종 3위 곤추나곤(従三位・権中納言), 정 3위(正三位)
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리
씨족 오다 씨(織田氏)
부모 오다 노부타다
도쿠주인(徳寿院)
형제 오다 히데노리(織田秀則)

오다 히데노부(일본어: 織田秀信 (おだ ひでのぶ), 1580년 ~ 1605년 6월 24일)는 일본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의 다이묘이자 무장으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의 적손이자 노부나가의 적남인 오다 노부타다(織田信忠)의 적남이다. 아명은 산보시(三法師)이며 사부로(三郎)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기후(岐阜)의 성주이자 동시에 조정의 관위가 주나곤(中納言)이었던 연유로 기후노 주나곤(岐阜中納言)이라는 별칭도 있었다. 일본의 사료인 『구교부닌(公卿補任)』에는 다이라노 히데노부(平秀信)로 기록되어 있다. 기리시탄 다이묘로서 세례명은 페드로이다.

생애[편집]

덴쇼 8년(1580년) 오다 노부타다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덴쇼 10년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 당시 조부 노부나가와 부친 노부타다가 모두 주살되면서 마에다 겐이(前田玄以)의 보호 하에 본래의 거처인 기후 성에서 기요스 성(清洲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같은 해, 기요스 회의에서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의 추대를 받아 노부나가의 또 다른 중신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의 지지를 받던 숙부 노부타카(信孝)를 제치고 3세의 나이에 오다 가문의 당주가 되었다. 직할령은 오미 국(近江国) 사카타 군(坂田郡) 3만 석이었으며 나이가 어려 친정이 불가능하였으므로 호리 히데마사(堀秀政)가 영주 대리를 맡았다.

게이초 5년(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関ヶ原の戦い)가 발발하자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의 서군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동군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이케다 데루마사(池田輝政)에게 패하여 거성인 기후 성을 빼앗기고 지위를 잃은 뒤 고야 산(高野山)에 은거하여 승려가 되었다. 이후 1605년 25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