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전과 고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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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전과 고연전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정보
2006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정기전 야구 경기
2006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정기전 야구 경기
지역 서울특별시
경쟁 팀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첫 경기 1925년 5월 30일
2006년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양교 재학생들이 응원하고 있는 모습

연고전(延高戰) 또는 고연전(高延戰)[1]은 애교심을 고양하고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 또는 고려대학교연세대학교 양교의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으로[2] 스포츠 경기[3]를 비롯한 강연[4], 온라인 게임[5], 사회공헌활동[6][7]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승부를 겨루는 행사 일체를 의미한다. 유사한 대학교 스포츠 대항전으로 미국하버드 대학교예일 대학교미식축구 경기, 영국옥스포드 대학교캠브리지 대학교조정 경기와 일본게이오기주쿠 대학와세다 대학의 ‘소케이센’(早慶戰) 등이 있다. 연고전/고연전은 매년 9월에 5개 종목의 운동부 선수들이 맞붙는 정기전[2]과 정기전 이외의 기간에 열리는 비정기전[8]으로 크게 나누어볼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교내에 축구부, 농구부, 야구부, 럭비부, 빙구부 등 5개 종목의 스포츠단체가 활동하고 있다.[9] 흔히 일컬어지는 ‘연고전’이나 ‘고연전’이라는 명칭은 정기전을 의미하며[10], 아래에 이어지는 설명도 정기전에 관한 것이다.

역사 및 명칭[편집]

역사[편집]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가 처음으로 시합에서 만난 것은 1925년 5월 30일에 열린 조선 체육회 주최 ‘제5회 전조선(全朝鮮) 정구대회’였다.[11][12] 양교의 실질적인 첫 전면시합이 열린 것은 1927년 경성운동장에서 거행된 제8회 전조선 축구대회 준결승에서의 연희전문학교 축구부보성전문학교 축구부의 대결이었으며,[13] 1929년에는 보성전문학교가 연희전문학교를 이겨 두 학교의 대결이 일반인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어 1930년에 두 학교가 농구에서도 막강한 실력으로 서로 겨루게 되면서 이들 경기가 ‘연·보전’(또는 ‘보·연전’)으로 일반에 불리게 되었다.[11] ‘민족적인 경기’가 된 이들 대결에서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은 꾕과리와 징을 울리면서 안암동에서 동대문의 서울 운동장까지 행진하여 연희전문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양쪽으로 응원하면서 경기를 관람하였고, 경기에 이긴 쪽은 우승기를 들고 교가를 부르면서 종로 네거리를 행진하였다.[14] 1943년징병제가 실시되어 시합이 중지되기 전까지 연희전문학교는 보성전문학교를 상대로 한 축구대회에서 31전 14승 17패를, 농구대회에서 62전 32승 30패를 기록하였다.[15]

두 학교간의 대결은 광복 이후 1945년 12월 21일부터 이틀간 열린 ‘제1회 연보 OB 축구대회’를 통해 부활하였다. 1946년부터는 축구농구의 재학생 간 정기전이 매년 열리게 되었고, 1956년에는 야구, 럭비, 빙구의 세 종목이 추가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정기전의 기틀이 마련된 것은 1959년의 일이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는 5·16 군사정변 등의 이유로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다.[15] 1965년부터는 이틀 동안 다섯 경기가 일제히 치러지는 지금과 같은 경기방식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점차 정기전 때 고려대학교에서는 크림슨색 티셔츠를 입기 시작하였다.[16] 1971년과 1972년, 1975년, 1980년, 1983년, 1996년에는 정기전이 열리지 않았다.

명칭[편집]

정기전은 그 명칭에 대한 입씨름에서부터 경기가 시작된다고도 하였다. ‘보·연전’과 ‘연·보전’, ‘연·고전’과 ‘고·연전’의 명칭에 대한 양보 없는 주장 또한 함께 내려온 전통이라는 것이다.[17]

연고전 또는 고연전은 일제강점기에는 연보전 또는 보연전이었으나, 1946년에 두 학교의 교명이 바뀌어[18][19][20] 현재의 명칭이 되었다. 정기전이 시작된 이후로는 연고전의 명칭이 주로 쓰였으나, 1958년부터 고려대학교 측에서 이의를 제기하였다.[21] 1965년에는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 중 주최하는 학교가 상대방의 이름을 먼저 쓰기로 서로 약속하였다.[22] 언론에서는 고연전보다 연고전의 사용 빈도가 높은데, 이는 정기전이 시작된 첫 10년 간 연고전으로 사용되면서 관습적으로 명칭이 굳어진 탓이라고도 한다.[21]

두 학교 사이의 약속으로 정식 명칭이 실질적으로 방송 중계와 신문 보도 등의 공식 석상에서 사용되지만, 연세대학교에서는 연고전, 고려대학교에서는 고연전이라는 명칭으로 통용된다.[23]

1990년 전후로 연고 민족해방제 또는 고연 민족해방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24]

정기전 주최 및 일정[편집]

매년 9월에 열리는 정기전(정기친선경기대회)은 양교가 매년 번갈아 주관하며, 주최하는 학교에 따라 명칭이 바뀐다.[25] 연세대학교에서는 연고전을 며칠 앞두고 신촌 오리엔테이션과 원주 오리엔테이션, 양교 합동 오리엔테이션이 각각 진행된다.[26] 고려대학교 또한 고연전을 며칠 앞두고 세종 오리엔테이션과 안암 오리엔테이션, 합동 오리엔테이션이 각각 진행되며[27], 정기 고연전이 끝난 후에는 교우회 주최로 선후배 간의 화합의 장인 '1905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 행사는 동기회, 학과 교우회, 졸업생 개인이 학교 인근 주점을 예약해 후배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행사로, 68학번 동기회가 참살이길의 삼성통닭을 통째로 빌린 것이 그 시초이다.[28][29]

평가[편집]

매년 개최되는 연고전/고연전에 대해 서로 상반된 내용의 평가가 존재한다. 연고전이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전통적인 스포츠 친선 경기이며[30] 대학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는[31] 평가와 더불어 시대적 맥락을 저버린 채 즐거움만 추구하며[30] 폐쇄적인 엘리트 의식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있다.[32] 한편 선수들 간의 충돌이나 경기 파행 사태 등의 지나친 성적 지상주의도 부정적 측면으로 지적되고 있다.[31] 신촌안암의 상가 일대에서 벌어지는 고연전의 뒤풀이 문화와 주변을 고려하지 않은 응원 태도에 대한 비판도 있다.[33] 2003년에는 고려대학교내 일부 학생 단체에 의해 '안티 고·연전 실천단'이 결성되어 고연전을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34]

사건[편집]

고려대학교 축구부 감독 심판매수사건[편집]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상습적으로 심판을 매수하고 선수단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전 고려대학교 축구부 감독에 대해 2010년 3월 19일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광역수사대에 따르면 2009년 9월에 열린 연고전에서 이기기 위해 대한축구협회 경기분과 위원인 김 모에게 평소 친분이 있는 이 모와 윤 모를 심판으로 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며 이런 방식으로 심판 11명에게 2천 3백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으며, 2008년부터 2009년 11월까지 경남 남해 축구대회, 전국대학축구대회 등 모두 9개 경기에서 승리했다. 또 운영비 등 명목으로 학부모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기도 하며 2007년 11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학부모 40여명으로부터 걷은 5억 8000여만원 중에서 1억 700여만원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다고 한다.[35][36]

역대 전적[편집]

정기전[편집]

종합 전적[편집]

연도 축구 스코어 농구 스코어 야구 스코어 빙구 스코어 럭비 스코어 종합전적 승리팀
연대 고대 연대 고대 연대 고대 연대 고대 연대 고대 연대 무승부 고대
1965 1 1 84 89 3 2 4 4 11 3 2 2 1 연세대학교
1966 2 0 105 91 0 2 6 6 0 3 2 1 2 무승부
1967 0 0 83 87 0 5 2 6 3 5 0 1 4 고려대학교
1968 0 0 76 87 3 4 5 7 6 16 0 1 4 고려대학교
1969 1 0 64 64 3 4 5 6 5 3 2 1 2 무승부
1970 0 3 79 71 1 1 4 9 8 6 2 1 2 무승부
1971 학원사태로 유산
1972
1973 1 2 64 62 4 6 3 4 3 13 1 0 4 고려대학교
1974 1 1 83 87 5 6 3 5 12 16 0 1 4 고려대학교
1975 고려대학교 축구부 진해에서 버스 사고로 유산 (야구는 무승부 기록) - 1 - -
1976 0 1 90 67 3 3 9 3 6 6 2 2 1 연세대학교
1977 0 0 86 86 6 2 3 4 8 7 2 2 1 연세대학교
1978 1 0 72 70 2 1 2 4 4 10 3 0 2 연세대학교
1979 3 1 80 80 1 4 4 3 16 39 2 1 2 무승부
1980 학원사태로 유산
1981 0 0 76 77 3 0 6 5 14 12 3 1 1 연세대학교
1982 0 1 81 80 0 3 3 6 21 16 2 0 3 고려대학교
1983 유산 (양교 총장 성명서 발표)
1984 2 1 51 57 0 6 7 3 22 12 3 0 2 연세대학교
1985 0 4 65 61 5 1 11 2 19 0 4 0 1 연세대학교
1986 0 0 무(21:25) 2 4 6 4 3 0 2 2 1 연세대학교
1987 3 2 64 67 0 11 4 5 25 3 2 0 3 고려대학교
1988 3 0 69 57 4 3 3 5 16 10 4 0 1 연세대학교
1989 2 5 78 69 2 1 5 8 18 21 2 0 3 고려대학교
1990 2 3 74 58 2 3 2 2 7 21 1 1 3 고려대학교
1991 1 3 69 57 4 1 4 2 21 12 4 0 1 연세대학교
1992 0 1 67 65 1 3 8 3 11 17 2 0 3 고려대학교
1993 0 1 71 60 2 3 4 3 23 7 3 0 2 연세대학교
1994 1 3 59 73 0 7 5 3 10 10 1 1 3 고려대학교
1995 2 2 87 92 9 5 3 5 13 15 1 1 3 고려대학교
1996 한총련 사태로 유산
1997 2 1 68 62 1 1 4 5 18 9 3 1 1 연세대학교
1998 2 0 58 61 2 6 6 3 27 23 3 0 2 연세대학교
1999 2 1 72 69 3 3 4 3 취소 (무승부) 3 2 0 연세대학교
2000 0 2 54 61 1 1 3 2 22 10 2 1 2 무승부
2001 1 0 84 98 9 2 3 3 26 20 3 1 1 연세대학교
2002 0 4 73 70 3 8 3 3 24 30 1 1 3 고려대학교
2003 0 0 80 65 2 3 3 2 18 19 2 1 2 무승부
2004 0 2 88 74 1 2 5 3 16 19 2 0 3 고려대학교
2005 2 0 75 76 3 0 3 1 21 14 4 0 1 연세대학교
2006 1 1 53 66 6 1 3 2 3 27 2 1 2 무승부
2007 0 0 75 90 2 5 열리지 않음 22 30 0 1 3 고려대학교
2008 1 0 72 74 9 2 1 1 27 21 3 1 1 연세대학교
2009 1 2 74 58 4 5 4 2 18 18 2 1 2 무승부
2010 0 3 74 65 4 4 8 1 38 20 3 1 1 연세대학교
2011 1 3 61 67 3 1 1 1 5 8 1 1 3 고려대학교
2012 0 1 60 74 1 3 3 1 15 13 2 0 3 고려대학교
2013 3 2 62 75 3 1 2 2 17 20 2 1 2 무승부
2014 0 2 58 61 3 6 2 3 23 33 0 0 5 고려대학교
소계 14연 11무 19고 20연 4무 20고 15연 7무 23고 20연 8무 15고 21연 4무 19고 85 34 91 18연 9무 17고
우세 고대 우세 무승부 고대 우세 연대 우세 연대 우세 고대 우세 연대 우세

정기전 이외[편집]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인기를 이끌던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부 출신의 전현직 농구 선수들과 감독들이 모교의 유니폼을 입고 연고전을 펼치는 이벤트를 열어 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축구[편집]

  • 전조선축구대회 (1921년~1940년) 결승전
연도 스코어 승리팀
연희 보성
1928 3 0 연희전문학교
1930 3 2 연희전문학교
1932 0 2 보성전문학교
1934 1 2 보성전문학교
1935 3 1 연희전문학교
1936 2 1 연희전문학교
1938 1 4 보성전문학교
1939 0 2 보성전문학교
1940 0 2 보성전문학교
합계 4연 5보 보성 우세
  • 전국축구선수권대회 (1946년~2000년) 결승전
연도 스코어 승리팀
연세대 고려대
1974 고대 기권승 고려대학교
합계 0연 1고 고대 우세
U리그 2012
2012년 4월 20일
15:00
연세대학교 0 - 0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운동장
심판: 이천수
리포트
U리그 2012
2012년 6월 22일
15:00
고려대학교 3 - 1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운동장
심판: 최대우
선승우 득점 7'
이상협 득점 47'
김우현 득점 85'
리포트 김도혁 득점 62'

농구[편집]

연세대학교 vs. 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vs. 연세대학교


대학농구리그 2013 4강 플레이오프 1차전
2013년 9월 7일
고려대학교 vs. 연세대학교
수원대학교 체육관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공식 명칭은 두 학교의 협의에 의해 연세대학교 주최시 '고연전', 고려대학교 주최시 '연고전'으로 결정된다.
  2. 정기 고연전. 고려대학교 응원단. 2011년 6월 6일에 확인.
  3. 손지혜. "2011 고연전 '돌아온 호랑이, 고려대의 승리로 막내려'", 《한경닷컴》, 2011년 6월 26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4. 강건택. "고려ㆍ연세대 `강의도 고연전'", 《연합뉴스》, 2007년 10월 2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5. 문권모. "'사이버 고연전' 연다…기업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동아일보》, 2001년 6월 11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6. 김수한. "‘봉사활동 고연전’ 펼쳐진다", 《헤럴드경제》, 2010년 3월 30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7. 김병채. "'피 터지는' 고연전? '피 나누는' 고연전!", 《문화일보》, 2007년 10월 4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8. 비정기 고연전. 고려대학교응원단. 2011년 7월 28일에 확인.
  9. 스포츠단체. 고려대학교. 2011년 7월 28일에 확인.
  10. 한상용. "허정무.홍명보 등 축구 스타들의 고연전 추억", 《연합뉴스》, 2008년 5월 1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11. 思友 - 李性求 〈元老(원로)농구인〉 (3) 眞正한맞수, 《경향신문》, 1979.11.16
  12. 晴天에銳氣百倍 愈出愈奇한作戰策, 《동아일보》, 1925.5.31
  13. 朝鮮體育會主催·東亞日報後援 幾多의波瀾격고 最後의决戰에, 《동아일보》, 1927.11.5
  14. 大学街의 裏窓(6) 普專에서代를이은 高麗大學校(中), 《경향신문》, 1962.7.7
  15. 고연전 역사. 고려대학교 응원단. 2011년 6월 6일에 확인.
  16. 김다혜 기자. "캠퍼스 가득한 크림슨, 비슷해 보여도 다 달라요", 《고대신문》, 2011년 5월 22일 작성. 2011년 6월 9일 확인.
  17. 高延戰이냐·延高戰이냐 - 學園 토픽스, 《동아일보》, 1963.6.3
  18. "건국동량(建國動梁)의새요람(搖籃)", 《동아일보》, 1946년 5월 20일 작성. 2011년 7월 2일 확인.
  19. 연표. 고려대학교. 2011년 7월 31일에 확인.
  20. 연희대학교. 연세대학교. 2011년 7월 31일에 확인.
  21. [고연전 특집]'연고전' 넌 어디서 왔니?, 《고대신문》, 2010.9.6
  22. 우리는 맞수 (7) 蹴球 高麗大와 延世大, 《경향신문》, 1981.2.9
  23. 강현식 (2006년 7월 29일). 《세상 밖으로 나온 심리학》. 네모북스, 134쪽. ISBN 8990795311
  24. "고연(高延) 민족해방제 오늘부터 6일간", 《동아일보》, 1990년 10월 8일 작성. 2011년 7월 4일 확인.
  25. 정기전의 공식적인 명칭은 정기전을 주최하는 학교의 이름을 뒤에 붙이는 방식으로 정해지는데, 연세대학교가 주최하는 정기전 행사인 경우 ‘고연전’이 고려대학교가 주최할때는 ‘연고전’이 정식 명칭이 되는 식이다. 김일환. "100년 호랑이 vs 120년 독수리", 《한국일보》, 2005년 9월 22일 작성. 2011년 7월 28일 확인.
  26. 김병무. "연고제, 우리 모두 다 함께 가는거야!", 《연세춘추》, 2006년 9월 18일 작성. 2011년 6월 9일 확인.
  27. 조세현 기자. "응원오티에 참여하세요", 《고대신문》, 2010년 9월 5일 작성. 2011년 6월 9일 확인.
  28. "고려대 1905페스티벌 “나비처럼 돌아와 범처럼 쏜다”", 《뉴스와이어》, 2006년 9월 20일 작성. 2011년 8월 25일 확인.
  29. 김유경 기자. "고려대, 동시간 최다 동문화합 '1905페스티벌'", 《아주경제》, 2010년 9월 9일 작성. 2011년 8월 25일 확인.
  30. 이민주. "연고전을 바라보는 시선을 뒤집는다면", 《연세춘추》, 2010년 9월 6일 작성. 2011년 8월 24일 확인.
  31. 이혜진 (2010년 11월 17일). 고연전에 제안한다, 제 3부 우리 밖의 고연전. SPORTS KU. 2011년 8월 25일에 확인.
  32. 우승현. "“학벌의식 부추겨” 안티고연전 운동 일부 고대생 문제 제기", 《문화일보》, 2003년 9월 16일 작성. 2011년 8월 24일 확인.
  33. 탁현하. "연고전, 올해도 ‘그들만의 축제’", 《쿠키뉴스》, 2007년 10월 7일 작성. 2011년 8월 24일 확인.
  34. 임호섭 기자. "고대 학생단체 안티고·연전 운동 전개", 《파이낸셜뉴스》, 2003년 9월 16일 작성. 2011년 8월 25일 확인.
  35. 박상옥 기자. "심판 매수한 축구감독 구속영장", 《코카뉴스》, 2010년 3월 18일 작성. 2011년 8월 31일 확인.
  36. 김효은 기자. "심판 매수로 '고연전' 승리…고대 축구감독 영장", 《노컷뉴스》, 2010년 3월 18일 작성. 2011년 8월 31일 확인.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