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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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일본어: 女子高生コンクリート詰め殺人事件 조시코세이 콘크리토츠메 사츠진지켄[*])은 1988년 11월 26일부터 1989년 1월 4일에 걸쳐, 일본 도쿄 도 아다치 구 아야세에서 일어난 유괴·약취, 감금, 강간, 폭행, 살인, 사체 유기 사건의 통칭이다. 사건번호는 헤이세이 21058이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이던 여고생을 납치, 감금한 뒤 폭행하였으며 인분과 배설물, 쓰레기, 곤충을 먹게 한 뒤 피해자를 타살하였다. 타살한 시신은 드럼통에 넣은 뒤 콘크리트를 부어 암매장하였으나, 이상한 냄새를 맡은 행인의 제보로 사건이 드러나게 됐다. 이 사건은 가해자가 모두 소년이면서도 범죄 내용이 중대·악질적이며, 범죄 기간도 장기적이며, 처벌이 미약하다는 점, 여고생 소녀가 감금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주위의 목격자들도 피해자들을 구하지 않았다는 점 등으로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현재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사건이다.

사건의 경과[편집]

사건의 배경[편집]

사건 현장이 된 가정은 부모님이 맞벌이로 인해 집이 비어있는 상태가 많았고, 가정 불화로 인한 폭력으로 부모들은 자식을 무서워 해, 자택 2층 거실은 불량 청소년 집단의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

범죄[편집]

1988년 11월 25일, 리더격인 미야노 히로시(宮野裕史, '소년 A'로 통칭, 당시 18), 부 리더 격인 오구라 유즈루(小倉譲, '소년 B', 당시 17)를 비롯, 미나토 노부하루(湊伸治, '소년 C', 당시 16), 와타나베 야스시(渡邊恭史, '소년 D', 당시 17) 등을 위시한 여러 명의 소년들은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 중이던 여고생 후루타 준코(古田順子, 당시 16세)를 납치하여 미나토 노부하루의 자택 2층 거실에 감금하고 40일 이상에 걸쳐 강간 행위나 가혹한 폭행을 반복했다. 그 결과로 후루타는 사망했고, 1989년 1월 5일 사망을 눈치채어 시체의 처리에 곤란을 느낀 가해자들은 사체를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채워 도쿄 도 고토 구 와카스에 있는 매립지에 유기했다.

이후 주변에서 이상한 부패한 냄새가 난다는 행인들의 제보가 경찰관서에 접수되었고, 그 해 3월 29일, 네리마 소년 감별소에서 다른 사건으로 인한 강간, 절도 등의 혐의에 의해 소년감호소에 보내진 가해자의 진술로 피해자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의 실체가 공개되었다.

<17세, 악의 이력서>에 나오는 그들이 저지른 범행의 일부[편집]

15살의 여학생을 하교길에 납치한 뒤 그들의 아지트(소년C의 2층집)로 끌고가 수시간 폭행을 가했고, 신고를 한다거나 하면,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시킬거라고 겁을 준 뒤, 공중전화로 집으로 전화하여 친구집에 있으니, 걱정말고 신고같은 것을 하지 말라고 하여 부모님을 안심시켰다. 그 뒤 그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뒤, 무참히 폭행하는 등 그 여학생은 단지 스트레스를 푸는 기계였다.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의 폭행과 성적 고문 등을 당했고, 집에 돌려보내달라고 요구를 하면 그 폭행은 더욱 심해졌다. 그 여학생은 신고를 시도한 적이 있으나, 발각되어 전화가 끊긴 뒤,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켰다. 그 뒤 그 여학생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야했고, 신고의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그 여학생에게 가했던 것은 실로 인간으로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물과 음식을 주지 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즐기다가 우유와 건포도를 먹이자 몸이 반응하지 못하여 토해내면, 더럽다며 구타하고, 손, 발, 정강이, 무릎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발라 불을 질러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즐기며, 그것을 끄기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하지 말라며 폭행하고, 그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였다.

이 행위로 인해 소녀는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또한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하며 토해내는 모습을 즐기고 더럽다며 폭행했으며, 항문과 성기 등에 불꽃을 안쪽으로 꽂아놓고 터뜨렸으며(부검 당시 그 여학생의 대장에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고 한다.),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여 웃지 않으면 무자비한 폭행을 가하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 여학생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른 볼과 눈 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 놓고, 성경험이 없었던 여학생의 성기와 항문에 온갖 이물질과 벌레 등을 삽입하였으며, 심지어 페트병까지 넣었다. 소녀의 부검당시 안면부도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손상되어 있었다.

성기와 항문 부분은 더욱 심각했다고 한다. 여학생은 그들의 요구에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야했고, 미친짓을 해보라는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혹한기에 베란다에 알몸으로 나가게 하여 여러개의 담배를 한꺼번에 피게하였으며, 그때마다 웃지않으면 폭행을 가하였다. 폭행을 가하다가 넘어진 여학생이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자, 이를 꾀병이라며 6킬로그램에 달하는 철아령을 복부에 던지는 등 여러 가혹한 폭행을 하여 여학생이 반응을 않자 몸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이는 등 반응을 보이자 불을 끈 뒤 2시간 가까이 폭행을 가하였다.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심지어 맞아서 나온 혈흔까지 햝아먹어야했고, 소년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손과 발에 비닐 봉지를 씌우기 등의 폭행을 가하였다. - <17세, 악의 이력서>

재판[편집]

주범이라고 일컬어지는 네 명은 형사 처분의 근거가 상당하다는 이유로 가정재판소에서 검찰청으로 송치되어, 형사 재판에 회부되었다. 도쿄 고등재판소는 주범 격인 미야노를 징역 20년, 오구라, 미나토, 와타나베를 각각 징역 5년이상 10년이하, 징역 5년이상 9년이하, 징역 5년이상 7년이하에 처했다. 그 외 비교적 혐의점이 작은 세 명의 소년은 소년원에 송치되었다.

그 후[편집]

'소년 B'로 통칭되었던 부 리더인 가미사쿠 조(출소 후 개명)는 다시 2004년 5월 19일에 또다른 감금치상 사건을 일으켜, 같은해 6월 4일 체포되었으며, 다른 가해자들은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히키코모리가 되거나, 평범하게 살아가는 등 제각각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반응과 영향[편집]

평론가 아카츠카 유키오는 이 사건을 ‘광연범죄 (狂宴犯罪)’라고 묘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지식인층에서는 미성년자라 하여 처벌을 유예하거나 가볍게 처벌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일반인의 반응[편집]

범인이 소년인 것에 대해 같은 나이 또래의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이치카와 일가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세키 데루히코는 본 건 피의자들이 모두 징역형에 그친 점을 들며 자신은 이 사건의 피의자들에 비해 별 것 아니라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 및 범인에 대하여는 각 문서를 참고하라.

서적·영화화[편집]

2003년,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소설 〈17세, 악의 이력서〉가 출판되었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영화 〈콘크리트〉가 〈17세, 악의 이력서〉를 원작으로 영화화 되었다. 이 영화의 개봉을 둘러싸고, 사건의 잔혹성과 ‘굳이 영화화 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한 의견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펴져, 극장 상영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그 영향으로 5월 29일에 예정되어 있던 개봉은 중단되었지만 그 후, 다른 극장에서 7월 3일부터 7월 9일까지 일주일간만 공개되었다.

제작자 측에 의하면, 대기업 대여점에서도 이 영화의 비디오나 DVD를 취급하지 말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이 영화의 등급은 ‘R-15’로 15세 관람가였다.

관련 서적[편집]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