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 차우셰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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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나 차우셰스쿠

엘레나 차우셰스쿠(루마니아어: Elena Ceauşescu, 1916년 1월 7일 ~ 1989년 12월 25일)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부인이고 혼인하기 전의 이름은 레누차 페트레스쿠(Lenuța Petrescu)이다.

경력[편집]

혼인[편집]

부쿠레슈티 부근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젊은 시절 섬유 공장에서 일하면서 루마니아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으며 루마니아공산당에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만났다. 두 사람은 1947년 혼인해 세 자녀를 두었는데 세 자녀 가운데 한 명은 입양한 자녀였다.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공산당이 집권한 후 외무부에서 비서로서 근무했고 1950년대화학을 공부해 화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남편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1965년 루마니아공산당 서기장이 되자 엘라나 차우셰스쿠는 연구소장이 된 일변, 그 과정에서 화학 박사학위를 얻었으나 박사학위 취득 과정은 불투명하다.

독재정치[편집]

니콜라에 차우셰스쿠1967년 이래 국가원수가 되었고 독재의 뿌리인 개인 숭배 체제를 구축하면서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국모로서 추앙받기 시작했다. 남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해외 순방에 동행하고 국제 외교 무대에도 등장했으며, 때로는 외국에서 호감받기도 했으나 국내 정치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73년 루미니아공산당 정치국 집행위원으로서 권력의 실질에 부합한 제2인자가 되었고 1980년 제1 부총리로서 임명되었다. 1980년대 들어 엘레나 차우셰스쿠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정치에 참여하면서 족벌 독재체제가 구축된 일변, 자신의 지위를 높이고자 화학 전문가라고 자처하고 나서 많은 논문을 발표했으나 이 논문은 조작됐다고 알려져 있다.[출처 필요] 독재정치와 경제 파탄으로 루마니아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짓밞히고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졌지만, 엘라나 차우셰스쿠는 대통령궁에서 궁핍한 국민과 달리 호화롭게 생활했다. 결국 1989년 12월 독재정치를 대상으로 한 불만으로 화난 민중이 일으킨 루마니아 혁명으로 차우셰스쿠 정권은 갑작스럽게 붕괴됐고 차우셰스쿠 부부는 외국으로 도망치려 시도했으나 붙잡혔다. 차우셰스쿠 부부를 다룬 재판은 신속히 진행돼 차우셰스쿠 부부는 12월 25일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형으로서 처형되어 죽었다. 총살형을 집행할 사람을 모집하자 루마니아 군인 수십 명이 서로 하겠다고 나섰고 차우셰스쿠 부부는 총탄 160여 발을 맞고 죽었다.

바깥 고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