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미르 쿠스투리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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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르 쿠스투리차

에미르 쿠스투리차(세르비아어: Емир Кустурица 1954년 11월 24일-)는 구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출신의 세르비아인 영화감독이다. 독특한 작품세계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으며,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많은 창작활동을 하였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두 차례 수상했으며, (작품《아빠는 출장중》과 《언더그라운드》로) 프랑스 문화부가 수상하는 문학및 예술훈장을 수상하였다.

목차

생애 [편집]

어린 시절 [편집]

쿠스투리차는 1954년 11월 24일에 사라예보에서 태어났다. 그 당시에 사라예보유고슬라비아의 일원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였는데(오늘날의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수도이다.), 그의 부모님은 비활동적인 무슬림이었으나,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선조는 세르비아 정교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무라트 쿠스투리차인데, 공산당원이었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정보부에서 일했다.

프라하에서의 교육 [편집]

18세가 되던 해 쿠스투리차는 교육을 받기 위해 사라예보를 떠났다. 그는 프라하(체코슬로바키아)의 권위 있는 “프라하 공연 예술 아카데미(FAMU)” 연극방송학과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밀로쉬 포르만, 이르쥐 멘젤, 고란 빠스칼레비치 들을 배출한 학교였다. 쿠스투리챠는 프라하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그의 첫 번째 영화를 만들게 된다. 단편 영화인 <진실의 일부>(1971) 과 <가을>(1972)이 그것이다. 그의 졸업 작품은 <게르니카>라는 이름의 25분짜리 영화인데, 1930년대 후반의 어느 유태인 가족을 둔 소년의 이야기 이다. 이 작품은 나치즘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는 내용인데, 그가 각본, 촬영, 감독을 모두 맡았고, 이 작품으로 카를로비바리 학생 영화 페스티벌에서 주요 상을 수상했다.

사라예보 [편집]

쿠스투리차는 사라예보로 돌아와서 지역 방송국을 통해 영화 두 편을 제작했다. 1978년에 그는 <돌아오는 신부들>(세르보크로아트어 : Nevjeste Dolaze)을 제작했으나, 윤리도덕적으로 부적절하여 화면으로 공개되지는 않았다. 이후 쿠스투리차는 책으로 출간된 <Le petit livre d'Emir Kusturica>에서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 영화를 촬영한 것은 그의 삶에서 가장 용기있는 행동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촬영한 것은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에서 금기시하는 테마였기 때문이다. 그 영화 이후 쿠스투리차는 빌코 필라츠라는 촬영가와 공동작업을 시작했다. 1979년에 이보 안드리치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TV작품 <타이타닉 바>(세르보크로아트어 : Bife Titanik)을 선보였다. 이 영화와 <게르니카>가 2차 세계대전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한다.

<돌리 벨을 아시나요?> [편집]

쿠스투리차는 1981년에 <돌리 벨을 아시나요?>(보스니아어 : Sjećaš li se Doli Bel?)라는 장편의 영화로 데뷔했는데, 슬라브코 슈티막이 출연했고 1960년대의 아동기와 사라예보에서의 성인기에 관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첫 번째 유고슬라비아 영화인데, 공식어인 세르보크로아트어로 촬영된 것이 아니라, 보스니아 방언으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의 최고 신인상과 FIPRESCI상(국제영화평론가협의회상)을 수상하여 쿠스투리차에게 첫 번째의 큰 성공을 이루게 해주었다.

<아빠는 출장중> [편집]

4년 뒤인 1985년에 다음 영화인 <아빠는 출장중>(보스니아어 : Otac na službenom putu)을 제작했다. 이 영화는 아이의 눈으로 본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다루었다. 티토가 이미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언급한 전후의 억압과 티토와 스탈린의 싸움 등그 모든 것이 아직 금기시되는 테마였다. <아빠는 출장중>에서 쿠스투리차는 처음으로 프레드라그 마노이로비치, 미르야나 카라노비치다보르 두이모비치를 출연시켰는데, 그 후에 몇 편의 영화에도 출연하게 된다. 그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서 쿠스투리차는 황금종려상과 FIPRESC상을 수상하게 되고, 또한 오스카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된다. 유고슬라비아황금종려상 심사 위원장 밀로쉬 포르만은 쿠스투리차를 유럽과 세계 영화계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집시의 시간> [편집]

쿠스투리차의 3번째 작품 <집시의 시간>(<매달려 있는 집> : 세르보크로아트어 : Dom za vešanje, 1988)에는 영국이탈리아의 감독들이 참여했다. 마케도니아에서의 촬영은 쿠스투리차가 처음으로 집시인들에게 가서 찍은 촬영이었고,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집시어집시에 관해 찍은 작품이었다. 주인공은(사춘기의 뻬르하나) 다보르 두이모비치였고, 고란 브레고비치와 쿠스투리차 그들 자신이 사운드트랙을 맡았고, 협력하여 만든 영화였다. <집시의 시간>으로 쿠스투리차는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대략 그 쯤에 그는 사라예보펑크락 그룹인 <Zabranjeno pušenje>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곧 그 임을 사람들이 알아채었다.

미국(USA) [편집]

이미 사라예보에 있는 영화학교에서의 교육경험이 있었기에,(감독생활을 쉬면서 <Zabranjeno pušenje>에서 활동중이었다) 에미르 쿠스투리차는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밀로쉬 포르만의 초청으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쿠스투리차의 학생인 데이비드 애킨스가 쓴 시나리오가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영어가 쓰인 영화 <아리조나 드림>(영어 : Arizona Dream)으로 제작 되었는데, 미국 스타배우 조니뎁페예 더너웨이가 출연했다. 그 작품은 긴 제작 시간 동안 굴곡이 아주 많아서, 시사회 날짜를 계속 연기하였다. 그 결과 영화 평론가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며, 비록 베를린 영화제에서 실버베어상을 수상하였으나, 박스오피스에서는 실패하였다. 이와 같이, <아리조나 드림>은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가 미국에서 만든 영화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 감독은 다시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논란 [편집]

1995년 작품 언더그라운드에서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를 옹호하였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였다. 또한 밀로셰비치를 옹호하였다는 점에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였다. 결국 영화계에서 은퇴선언까지 이어지면서 파장이 가라 앉았다. 이는 2010년 당시 터키에서도 불거지기도 하였다.

바깥 고리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