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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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섭(嚴詳燮, 1907년 5월 23일 ~ 1960년 5월 3일)은 일제강점기의 법조인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본관은 영월(寧越)이고, 호는 효당(曉堂)이다.

전라남도 광양 태생으로,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고 부산지방검찰청장, 대검찰청 검사, 변호사, 고등고시위원, 홍익대학장, 국회법제사법위원장을 지냈다. 제2대, 제4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형법 초안 작업에 깊은 관여를 하였고 한국 형법학의 기초를 다졌다.[1]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사법 부문에 포함되었다. 엄상섭을 포함한 검사 8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8년에 일괄 사표를 제출하면서 성명서를 발표해 민족정기 양양을 위해 퇴진한다고 밝혔다[2]

이후 회고록을 통해 애국지사들에게 면목이 없다면서 "왜제통치에 협력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해,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다.

한편, 엄상섭의 형법학 저술을 한데 모아 신동운 교수가 펴낸 《효당 엄상섭 형법논집》이 2003년 발간됐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50년 총선 2대 국회의원 전남 광양군 무소속 10,852표
31.25%
1위 초선
1954년 총선 3대 국회의원 전남 광양군 무소속 14,482표
47.97%
2위 낙선
1958년 총선 4대 국회의원 서울 용산구 갑 민주당 26,511표
69.83%
1위 재선

각주[편집]

  1. 김선주 (2008년 10월 28일). "엄상섭·장우성 친일인명사전 등재 가능". 머니투데이. 2009년 11월 8일에 확인함. 
  2. 이경태 (2008년 4월 29일). "나는 친일파, 책임지고 물러나는 게 마땅" - 스스로 친일을 반성한 사람들, 친일명단 발표날 그들이 빛난다”. 오마이뉴스. 2008년 5월 1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

전임
정문모
미군정청/과도정부 대검찰청 차장검사
1946년 8월 13일~1948년 8월 24일
후임
엄상섭
(대한민국의 대검찰청 차장검사)
전임
엄상섭
(미군정청/남조선과도정부 대검 차장검사)
제1대 대한민국의 대검찰청 차장검사
1948년 8월 24일~1949년 9월 30일
후임
김갑수
(직무대리)
전임
김옥주
제2대 국회의원(광양군)
1950년 5월 31일 ~ 1954년 5월 30일
무소속
후임
김정호
전임
(용산구 갑)남송학
(용산구 을)황성수
제4대 국회의원(용산구 갑)
1958년 5월 31일 ~ 1960년 7월 28일
민주당
(용산구 을)김원만
후임
(용산구 갑)장면
(용산구 을)김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