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간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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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간문제 소강
梁 簡文帝 蕭綱

양나라의 제2대 황제
본명 소강(蕭綱)
재위 549년 ~ 551년
대관식 549년, 건강(建康)
별명 자 : 세찬(世讃)[1]
소자 : 육통(六通)
진안왕(晉安王)
출생일 503년
사망일 551년
사망지 건강(建康)
매장지 장릉(莊陵)
자녀 애태자 소대기 등
부친 고조 무황제 소연
모친 귀빈 정씨
전임자 고조 무황제 소연
후임자 중폐황제 소동
왕가 소씨(蕭氏)
왕조 남량
묘호 태종(太宗)
시호 간문황제(簡文皇帝)

양 간문제 소강(梁 簡文帝 蕭綱, 503년 ~ 551년)은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제2대 황제(재위 : 549년 ~ 551년)이다.

생애[편집]

진안왕(晉安王)으로 봉해졌지만, 형인 소명태자 소통(昭明太子 蕭統)의 죽음으로 황태자로 옹립되었다. 후경(侯景)의 반란에 의해서 수도 건강(建康)이 함락 된 후, 사망직전인 상태인 아버지 양 무제 소연를 대신하여, 549년에 후경에 의해서 황제로 즉위하였다. 그의 짧은 재위 동안에는 백제로부터 사신이 와서 대접을 했지만, 실권은 후경이 가지고 있어서 허수아비 군주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후경에게 상국우주대장군도독육합제군사(相國宇宙大將軍都督六合諸軍事)라는 고위 관직을 수여를 하였다. 또 대외적으로도, 후경에 대적하기 위해서 소역을 중심으로 하는 황족들에게 공격받는 입장이어서 국정이 불안정하게 돌아갔다.

이미 나이가 40대였던 간문제는 후경이 만만하게 이용하게 하는 황제는 아니었다. 551년 8월, 후경을 토벌하는 황족들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도망간 후경은 간문제를 폐위하여 황태자가 되기전의 봉작인 진안왕으로 강등하는 동시에, 황태자를 시작으로 간문제의 자식들을 모두 살해하고, 소명태자의 손자로 간문제의 조카였던 나이가 어린 예장왕(豫章王) 소동(蕭棟)을 제위에 오르게 하였다. 두달 뒤에, 후경은 소강을 죽이고자 하여 부하를 시켜 소강에게 술을 많이 마셔 취하게 한뒤, 소강이 잠을 잘 때 흙주머니를 이불 위에 올려놓아 압사시켰다.

주석[편집]

  1. 양서(梁書)》에서는 '세찬(世纘)'이라 하였고, 《남사(南史)》에서는 '세찬(世讚)'이라고 되어 있다. 형제들 중 소통(蕭統)의 자가 덕시(德施)인 것을 제외하면, 소종(蕭綜)은 세겸(世謙), 소적(蕭績)은 세근(世謹), 소속(蕭續)은 세흔(世訢), 소륜(蕭綸)은 세조(世調), 소역(蕭繹)은 세성(世誠), 소기(蕭紀)는 세순(世詢)이다. 모두 자에 '세(世)'란 글자가 있으며, 그 다음 글자는 모두 '언(言)'이 부수로 되어 있다. 마땅히 소종의 동생인 간문제 소강의 자 또한 '언'이 부수로 붙어야 한다. 그러므로 간문제 소강의 자에 대해서는 《남사(南史)》의 기록이 정확하고, 《양서(梁書)》의 기록은 마땅히 잘못된 것이다.
전 임
아버지 무제 소연
제2대 남조 양나라의 황제
549년 ~ 551년
후 임
종손 예장왕 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