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퍼니 하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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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퍼니 하더웨이
Anfernee Hardaway
No. 1,7 – 올랜도 매직 (1993년~1999년)
피닉스 선스 (2000년~2004년)
뉴욕 닉스 (2004년~2006년)
마이애미 히트 (2007년)
가드
선수 경력
메달 기록
미국 미국의 선수
올림픽
1996년 애틀란타 남자 농구

앤퍼니 “페니” 하더웨이(Anfernee Hardaway, 1971년 7월 18일 ~ )는 전 미국의 농구 선수이다.

어린 시절[편집]

어린 시절 하더웨이의 할머니는 손자를 남부식 느린 말투로 '프리티'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 단어는 마치 '페니'처럼 들렸고 하더웨이의 별명이 되었다. 어머니가 일하러 나가면 할머니가 페니를 돌봐주곤 했다. 어린 시절 페니는 미식축구를 좋아했지만, 페니의 할머니는 손자가 다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편집]

하더웨이는 성장하면서 농구를 하게 되었는데, 멤피스의 트레드웰 고등학교 재학시절인 2학년 때 경기당 36.6점과 10.1개의 리바운드, 6.2 어시스트, 3.9 가로채기를 기록했다.

대학교 시절[편집]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의 멤피스 주립대학교(현 멤피스 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2년 통산 2420분동안 20.0점(1319점)과 7.7개(510개)의 리바운드, 5.9 어시스트(392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대학시절 등번호인 25번은 영구결번 되었다.

NBA 시절[편집]

멤피스 주립대학교(현 멤피스 대학교) 2년 중퇴하고, 1993년 신인 드래프트에 1차 3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 후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된 크리스 웨버와 트레이드 된다. 그 후 1993년 11월 5일 프로데뷔를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등번호 25번이 아닌 1번을 달고 뛰었다. 이미 올랜도에는 닉 앤더슨이 25번을 착용하고 있었다. 1994년 처음으로 열린 루키올스터전에서 초대 MVP를 수상했고, 4년연속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NBA 올스타게임에 출전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참가했다. 1999~2000시즌 피닉스 선스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부상으로 인해 올랜도 시절때보다 활약이 적었다. 결국 2003~2004시즌도중 뉴욕 닉스로 트레이드되고 2005~2006시즌(당시 나이 34살)까지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하지만 2007~2008시즌 마이애미 히트에 컴백했지만 16경기 뛰고 다시 은퇴했다. 프로 통산 성적이 14시즌동안 704경기출전에 평균 15.2득점, 5.0어시스트, 4.5리바운드, 1.6스틸을 기록했으면, 2년 연속(1995년, 1996년) All-NBA 퍼스트팀 수상했다.

경력[편집]

  • 1993년 ~ 1999년 : 올랜도 매직
  • 1994년 루키 올스타 게임 MVP 수상 (초대 루키올스타 MVP임.)
  • 1996년 : 애틀랜타 올림픽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 (금메달 획득)
  • 1999년 ~ 2004년 : 피닉스 선스
  • 2000년 ~ 2006년 : 뉴욕 닉스
  • 2007년 : 마이애미 히트

등번호[편집]

  • 25번 (1991년 ~ 1993년, 멤피스 주립대학교(현 멤피스 대학교) 시절 번호(영구결번))
  • 1번 (1993년 ~ 2006년, 올랜도 매직, 피닉스 선스, 뉴욕 닉스 시절 번호)
  • 7번 (2008년, 마이애미 히트 시절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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