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레이 스티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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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레이 스티븐슨
(1953년 대한민국 방문)

애들레이 유잉 스티븐슨 2세(Adlai Ewing Stevenson II, 1900년 2월 5일 ~ 1965년 7월 14일)는 미국의 정치인이다. 1952년195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 맞서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이름이 같은 그의 조부1893년 ~ 1897년 부통령을 지낸 유력한 정치인이며, 부친도 일리노이 주 주정부에서 일한 공직자였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기반을 둔 일리노이 주 블루밍턴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프린스턴 대학교노스웨스턴 대학교를 졸업한 후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시카고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공직에 진출, 공화당이 우세하던 당시 중서부에서 1930년대1940년대 당시 집권 정당이던 민주당의 유력 인사로 떠올랐다.

1941년 ~ 1945년 해군장관 보좌관, 1945년 국무장관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 사이 유럽 구호 지원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특별 사절단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가 일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국제 연합 총회에 미국 대표단 고문으로 참석했다. 1948년 일리노이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공화당 후보를 큰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그 다음해부터 주지사로 재직하며 주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하며 큰 주목을 받았다.

1952년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전쟁영웅인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 재차 출마했으나, 다시 아이젠하워에게 패했다. 1960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했으나, 예비선거에서 존 F. 케네디에 밀려 후보로 선출되지 못했다.

그 후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는 그를 국제 연합 대사로 임명하여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UN 대사로 재직하며 쿠바 문제, 소련 문제, 아프리카 신생국 대립 문제 등의 국제 분쟁 해결에 기여했다. 1965년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가 심근 경색으로 그곳에서 사망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정력적인 활동과 뛰어난 언변으로 미국에서 크게 기억되고 있는 정치가이다. 이름이 같은 그의 아들도 대를 이어 정계에 진출, 연방 상원의원으로 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