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 헤르츠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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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 헤르츠좀머 (Alice Herz-Sommer,1903년 11월 26일~2014년 2월 23일)는 유태인 피아니스트이자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으나, 2014년 110세를 일기로 사망.

1903년, 20세기 초반 음악의 도시 프라하에서 태어난 피아니스트 알리스 헤르츠좀머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지만, 수용소에서 어머니와 남편, 친구들을 차례로 잃고 오랜 기간 그곳에 억류되면서도 그녀는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재소자들을 위해 수용소 안에서 재소자들을 위해 100회가 넘는 콘서트를 강행한다. 1945년 5월 8일, 소련군이 테레진 수용소를 해방시키자 알리스와 아들은 살아남아 프라하로 돌아갔다. 연고도 가진 것도 모두 사라진 이들은 1949년 이스라엘로 이민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녀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갔고 마흔다섯에 히브리어를 배우고, 관심 분야를 공부하고, 사람들을 사귀며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갔다. 그녀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은 그때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다시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생애

111세의 알리스 헤르츠좀머는 세계 최고령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피아니스트로 지난 20세기와 금세기 10년을 목격한 인물이다. 1903년 11월 26일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한 상인이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어머니는 유명 화가 및 작가 들과 교류했다. 그중에는 구스타프 말러, 라이너 마리아 릴케,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 지그문트 프로이트 같은 인물도 있었다.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부유하고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자기 이름을 건 콘서트를 열 만큼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로 성장했다. 1931년 사업가이자 아마추어 음악가인 레오폴트 좀머와 결혼해 아들을 얻었다.

1943년 7월 알리스와 남편, 아들 라파엘은 나치에 의해 테레진 수용소로 보내진다. 테레진은 대규모의 수용소로, 히틀러는 이곳을 저명한 유대인 음악가, 저술가, 화가 들을 전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곳으로 선전했으나 실은 아우슈비츠 등 동유럽 전역에 있는 나치 학살장으로 보내지는 환승역이었다. 재능 있는 예술가들과 지성인들이 허기와 질병, 고문에 시달리며 죽어 갔고, 이곳에 수용된 유대인 15만 6000명 중 1만 7505명만 살아남았다. 이곳에서 2년을 보내는 동안 알리스는 동료 수감자들을 위해 백 회 이상 연주했으며 어린이들에게 비밀리에 피아노 교습을 했다.

어머니와 남편, 친구 들을 나치에 잃지만 알리스와 아들은 살아남아 1949년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마흔여섯에 히브리어를 배우고 새 삶을 개척하며 하우스 콘서트를 열곤 했고, 여기엔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와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레너드 번스타인, 아이작 스턴 등 걸출한 음악가들이 참석했다. 여든이 넘어서는 런던에서 첼로 교수로 일하는 아들과 가까이 있고자 다시 터전을 옮기지만 아들의 돌연사로 큰 슬픔을 겪게 된다.

한 세기 이상을 살며 극한의 고통을 겪었지만 그녀는 늘 생에 감사하고 주어진 하루에 기뻐한다. 최근까지도 런던의 제3기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며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고,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삶에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백 세를 훌쩍 넘긴 지금도 여전히 성실하게 바흐, 베토벤, 쇼팽, 슈베르트를 외워서 매일 세 시간씩 연주하며 예술가로서 의미를 찾는다. 오늘도 알리스는 몸에 밴 낙천성과 더없이 인간적인 가치관으로 그녀를 만나는 행운아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해 주고 있다.


작품[편집]

에세이

『A Century of Wisdom』: 한 세기를 살아온 최고령 피아니스트 알리스 헤르츠좀머가 들려주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랜덤하우스)

『백 년의 지혜』: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공경희 옮김.(민음인)

외부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