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안토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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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이노켄티예비치 안토노프 (러시아어: Алексей Иннокентьевич Антонов, 1896년 9월 9일 ~ 1962년 6월 16일)는 소비에트군의 장군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서의 공로로 승리 훈장을 수여받았다.

1896년, 현 벨로루시흐로드나 (Hrodna) 에서 차르 체제 아래의 포병 장교의 아들로 태어났다. 1921년 프룬제 군사 아카데미 를 졸업하고, 러시아 내전 당시에 붉은 군대 측으로 참전하였다. 1938년에는 프룬제 육군사관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1941년, 소비에트 남서부 전선과 남부 전선의 참모장이 되었고, 이듬해 소비에트 군의 참모 차장 및 작전 과장이 되었다. 그의 임무는 다른 장교와 협력하여 군사 상황을 스탈린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1944년, 안토노프는 수석 대변인이 되어 얄타 회담포츠담 회담 양 회담에 출석하였다. 얄타 회담에서 그는 교통망에 대한 폭격으로 드레스덴 공습을 유도하였고, 연합군이 소비에트 연방을 어떻게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였다.

전후 안토노프는 자카프카스 군사 지구의 부사령관과 사령관을 역임하였고, 1955년에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 통합군의 참모 총장을 겸임하였다. 1962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할 때까지 이 직위를 유지하였다.

1956년 안토노프는 유명한 발레리나 올가 레페신스카야와 재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