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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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작전(1942년 11월 11일 시작)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비시 프랑스를 무력으로 점령한 작전이다. 연합군이 1942년 11월 8일 프랑스령 북아프리카에 상륙(횃불 작전)하자 남프랑스로 연합군이 상륙할 것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1940년에 체결된 협정을 파기하고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다. 지난 1940년에 이미 수립되었던 아틸라 작전과 다른 점은 이탈리아의 참여 여부였다.

11월 10일 저녁, 추축군은 안톤 작전 준비를 완료했다. 독일 1군이 대서양 해안으로부터 에스파냐 국경을 따라 이동했고, 7군비시툴롱을 향해 중부 프랑스를 가로질렀다. 1군과 7군 모두 요하네스 블라스코비츠 장군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이탈리아 4군은 프랑스령 리비에라를 점령했고, 또 다른 이탈리아군 사단은 코르시카 섬에 상륙했다. 11월 11일 저녁 독일군 전차부대는 지중해 해안에 다다랐다.

비시 프랑스는 1940년 협정 위반에 반대하는 적극적인 저항을 선동하는 라디오 방송을 제한했다. 사실상 무저항이었으며, 무기력한 항복이었다. 5만여 명의 비시 프랑스군이 툴롱 주변에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정작 독일군의 해산 요구에 직면했을때 주축군에 저항할 능력이 부족했고, 그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작전 개시 하루 만에 프랑스 전역을 관할에 넣게 된 것이다. 이후 남프랑스는 블라스코비츠 장군의 독일 9군이 점령군으로서 주둔했다. 블라스코비츠 장군은 폴란드 9월 전역에서 맹활약했지만, 폴란드에서 SS의 만행에 항의를 한 것 때문에 이후 일선에서 밀려났고, 이후 한 번도 최전방에서 군을 지휘할 기회는 갖지 못한 인물로 1942년 이후 남프랑스를 통치했다.

독일은 이 작전으로 특별히 해산되어 툴롱에 정박되어 있던 프랑스 해군 함대의 탈취를 목표로 한 릴라 작전을 계획했다. 프랑스 함대를 독일 해군에 편입시켜 해군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 1940년 항복 후 프랑스 해군은 툴롱에 모여 있었고, 이 함대를 둘러싼 영국과 독일의 신경전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프랑스 함대를 나포하려던 Lila 작전)은 실패했다. 툴롱에 정박 중이던 대부분의 프랑스 함대는 장 드 라보데 제독의 명령으로 나포당하지 않으려고 제1차 세계 대전독일 대양함대가 그랬던 것처럼 배에 구멍을 뚫어 자침해버렸다(scuttled). 이 결과, 독일과 이탈리아는 3척의 전함, 7척의 순양함, 28척의 구축함과 20척의 잠수함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 영국도 캐터펄트 작전(Operation Catapult) 이란 이름으로 똑같은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영국도 헛물만 켜게 되었다.

이 작전으로 혜택 아닌 혜택을 누린 것은 다름아닌 게슈타포였다. 그동안 북프랑스에 머물러있던 조직을 남프랑스로 확장할 수 있었고, 레지스탕스유대인 탄압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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