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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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안토니오 무치(1878년)
안토니오 무치(1878년)
출생 1808년 4월 13일(1808-04-13)
토스카나 대공국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
사망 1889년 10월 18일 (81세)
미국 미국 뉴욕 주 뉴욕 스태튼아일랜드
국적 이탈리아 왕국 이탈리아 왕국, 미국 미국
분야 Electromagnetism, communication devices
주요 업적 Inventor, innovator, business mansupporter of Italian unification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1808년 4월 13일 - 1889년 10월 18일)는 전화기를 발명한 발명가이다.

전기[편집]

피렌체에서 태어나 피렌체 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그리고 세관의 직원과 페르고라 극장의 무대 기사로 일하였다. 이때 미래의 아내인 에스테르 모치(Ester Mochi)를 알게 된다. 1831년, 혁명의 움직임에 말려 들어가 그의 정치적 신념에 의해 토스카나 대공국을 뒤로 하여 쿠바에 이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1835년에 하바나의 Tacon극장에 근무해 1850년에는 아메리카 합중국에 도착했다. 뉴욕에 도착한 안토니오 무치는 수지 양초 공장(주세페 가리발디가 일하던 곳이다.)을 설립하였고 1854년 무렵에 기계를 이용한 최초의 전화기가 완성. 그의 사무소와 침실에 있는 중병의 아내와의 대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수지 양초 회사는 도산하여 자금난에 시달리지만 그 와중에도 그의 발명은 계속 되었다. 그의 발명품인 전화기의 특허권을 얻는데 충분한 자금이 없었지만 1871년에 일시적인 특허를 얻어 매년 10달러를 지불해서 갱신했다. 마지막에 갱신한 년도는 1873년이다. 그리고 뉴욕전신 회사에 발명을 제시해 보았지만 전신 회사는 전화기의 잠재 능력을 깨닫지 못했다. 1876년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안토니오 무치 전화에 대한 특허를 취득했고, 이 사실을 알아챈 안토니오 무치는 즉시 제소했지만 이미 파산한 상태였으며, 음식을 사는데도 어려운 상태였다. 결국 재판에서 안토니오 무치는 기계식 전화만을 발명했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은 전기식 전화를 개발하여 전기식 특허를 얻었다고 하는 판사의 판단으로 1887년에 안토니오 무치는 모든 전화 특허권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게 넘겨준다.

특허[편집]

전기식 음성 전달 장치 이외에도 안토니오 무치는 화학적·기계적 방법을 이용한 장치를 다수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자금의 부족 때문에, 그의 전화기(전기식 음성 전달 장치)인 텔레폰은 통상의 특허를 잡히지 않았지만, 특허료를 매년마다 10달러의 갱신료를 계속 지불했다. 특허를 결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250달러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안토니오 무치는 친구의 모금에 의지했지만 20달러 이상 모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안토니오 무치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보다 16년 앞서 전화기를 만들었지만, 특허료 때문에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최초의 전화기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인식[편집]

백년 사이, 이탈리아 왕국 이외에서 전화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에 의해서 발명된 일이 있었다. 사후 113년이 흐른 후인 2002년 6월 11일 미국 의회의 결의안에 따라 안토니오 무치가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로서 공식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