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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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安眠島)는 대한민국 태안반도 남쪽에 있는 으로,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고남면이 속한다. 대한민국에서 7번째로 넓은 섬으로, 면적은 113.5 km2이다.[1]

지리[편집]

안면도는 본래 태안반도에서 남쪽 바다로 길게 뻗어나온 (串)이었는데, 17세기육지에서 분리되어 섬이 되었다. 섬은 안면읍의 국사봉(109m)을 제외한 대부분 산지가 구릉지대여서 조선시대에는 대규모의 목장과 농장지로 이용되었다.

안면도의 소나무조선 시대에 국가의 주요 자원으로서 중요하게 관리되었다. 궁궐이나 함선 등을 만드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재목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거북선 등 주요 함선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현재도 안면송(安眠松)이라 불리며, 휴양림(안면도 자연휴양림)을 이루어 유명하다.

1970년대한민국의 3번째 연륙교(連陸橋)인 안면교(安眠橋, 총길이 208.5m)가 건설되었다. 안면도와 원산도, 보령시를 연결하는 원산안면대교보령해저터널이 각각 2019년2021년에 완공되어 안면도와 보령의 거리를 크게 단축시켜 서산홍성, 보령의 교통정체 해소와 관광자원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운하절단설[편집]

안면도가 섬이 된 것은 삼남 지방에서 조세로 거두어들인 곡식의 조운(漕運)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조선 인조 때에 지금의 안면읍남면 사이를 절단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대두되고, 사실인 것처럼 유포되어 왔다.[2] 그러나, 안면도가 태안반도와 분리된 것이 인공(人工)에 의한 절단인지, 해수(海水)에 의한 침식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운하절단설은 1872년(고종 9년) 간행 태안읍지(泰安邑誌)에 실린 "태안 향리 방경잠이 감영(監營)에 물길을 뚫어서 통하게 할 것을 건의하여 섬이 되었다."라는 빈약한 내용의 기사 외에는 근거로 제시된 사료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3][4]

그 밖에 이미 조선왕조실록 광해 8년(1616년) 기사에 "공홍도(公洪道)의 안면도(安眠島, 원문은 安眠道)"라는 기록[5]이 있다는 점, 안면도와 태안반도 사이 바다의 폭은 최소 160m로 경인운하(폭 80m)의 2배가 넘고 한국 서해안조수간만 차가 평균 6m에 이른다는 점, 세곡선의 침몰이 잦았던 곳은 안흥량(安興梁) 등 태안반도(근흥면소원면) 일대의 바다로 안면도 북쪽이라는 점,[6][7] 이 때문에 고려조선 시대에 운하 건설이 논의되고 굴착 공사가 시도된 곳이 현재 태안군서산시의 경계인 태안읍 인평리 흥인~굴포 사이의 이른바 '굴포운하' 계획이었다는 점[6] 등을 볼 때 신뢰성이 낮다.

생태[편집]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
(泰安安眠島모감주나무群落)
천연기념물 제138호
지정일 1962년 12월 3일
소재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1318
방포해수욕장
천연기념물 태안 안면도 모감주나무군락
(泰安安眠島모감주나무群落) | 국가문화유산포털

관광지[편집]

안면읍 승언리 소재 할미할아비바위의 전경

유적[편집]

  • 신야리의 조개무지
  • 고남리의 고인돌

향토음식[편집]

안면도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는 게국지가 있다. 게국지는 꽃게장을 자주 먹는 태안 사람들이 남은 게장국물에 김치, 겉절이 등을 넣고 찌개를 끓여 먹었던 것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숙성과정 없이 바로 끓여 먹는 것이 특징이며, 진한 국물 속에서 우러나는 깊은 맛이 일품이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120417(조간)_2012년도_지적통계연보_발간(지적기획과1)” (HWP). 2012년 4월 16일. 
  2. 안면읍 소개 Archived 2015년 9월 24일 - 웨이백 머신 태안군 홈페이지, 2014.10.30 확인
  3. 굴포운하 Archived 2014년 10월 30일 - 웨이백 머신 대전지방국토관리청, 2013.4.19 작성. 2014.10.31 확인
  4. 1872년에 간행된「태안읍지」의 고적조(古跡條) 안면곶(安眠串)에 대한 기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安眠串 在府南五十里諺博士亭李之函愛賞山勢庵留數日乃曰此地後必有鑿暎通者果有本府鄕吏房景岑獻議于監營鑿來暎通其水道今爲一島松木茂密」이는 "안면곶 : 부(府)에서 50리(20km) 남쪽에 있다. 토정 이지함이 여러날 암자에 머물며 산세를 살펴보고 그 땅에 대해 나중에 말하기를 '반드시 착통(鑿通)하려는 자가 있을 것이다'고 하였는데, 과연 우리 부(府)의 향리 방경잠이 감영(監營)에 물길을 뚫어서 통하게 할 것을 건의하였고 지금은 소나무가 빽빽한 하나의 섬이 되었다."라는 내용이다.
  5.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중초본) 광해 103권, 8년(1616년) 5월 4일 4번째기사
  6. <신병주의 역사에서 길을 찾다>⑥ 조선시대 태안반도에 물길공사 왜? 세계일보, 2008.2.13
  7. 태안 마도 인근 해역서 조선 시대 침몰선 확인 KBS, 201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