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메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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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지도. 북서쪽에 아카데메이아가 보인다.
플라톤 시대의 아카데메이아를 그린 모자이크화.
아카데메이아 유적지. 그리스아테네(2008년 촬영).

아카데메이아(Ἀκαδημ(ε)ια, Akadēm(e)íā)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서북쪽 교외에 위치한 고대의 영웅 아카데메스의 성스러운 숲에서 기원한 신역(神域)으로, 뤼케이온, 키노사르게스 등과 함께 대표적인 김나지움(체육장) 소재지이기도 했다.

청년 교육에 열심이었던 소크라테스가 자주 이곳 아카데메이아나 뤼케이온의 김나지움(경기장)의 청년들을 둘러보았다고, 플라톤의 대화편 『뤼시스』 등에 그려져 있다.

플라톤의 학원[편집]

기원전 387년, 철학자 플라톤은 이곳에 학원을 지으면서 지명인 「아카데메이아」를 그대로 학원의 이름으로 가져다 썼다(아리스토텔레스의 「뤼케이온」도 같다).

학과[편집]

산술, 기하학, 천문학 등을 가르치고, 일정한 예비훈련을 거쳐 이상적인 통치자가 받아야 할 철학을 가르쳤다. 특히 기하학은 감각이 아니라 사유에 의한 앎을 가르치는데 필수적이라는 판단으로, 학원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 문으로 들어오지 마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들의 학과와 문답법(변증법, 디아렉티케)이 오로지 배움의 필요성과 이들이 「철인왕(哲人王)」, 「밤의 회의」라는 국제법을 보전하고 그 목적(선함 · 덕)을 달성할 수 있도록, 국가를 주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이었던 이유는 『국가』나 『법률』 등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계승[편집]

기원전 348년에 플라톤 사후, 아카데메이아의 교장은 조카 스페우시포스가 이어받았으며(기원전 348년~기원전 339년), 크세노크라테스(기원전 339년~기원전 314년), 프레몬(기원전 314년~기원전 270년), 크라테스(기원전 270년~기원전 265년), 알케시라오스(기원전 265년~기원전 241년), 칼네아데스, 시리아누스, 프로크로스, 마리노스, 다마스키오스가 맡았다.

시기에 따라 학설에 차이를 보였는데, 고(古)아카데메이아 학파와 중기 아카데메이아 학파, 신(新) 아카데메이아 학파 등 몇 기로 나눌 수 있다. 스페우시포스의 시기에는 수학 교육에 편중되는 경향을 보였고, 말기 아카데메이아 학파는 회의론을 주류로 하는 스토아 학파와 대립, 당시의 아카데메이아 학파는 회의론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비(非)기독교적인 학교에 대한 폐쇄 정책에 따라 아카데메이아는 529년에 폐쇄되었다.

후세의 영향[편집]

아카데메이아의 이름은 이후 유럽의 신플라톤주의의 융성과 함께 고도의 연구나 교육을 맡은 기관을 부르는 아카데미(academy), 아카데미카(Accademica) 등의 유래가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의 플라톤 아카데미는 메디치 가문인문주의자들의 사적 서클로, 「아카데미」라는 말이 쓰이는 단초가 된 것은 프랑스 루이 13세 치하에서의 프랑스 왕립 아카데미 등이 저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