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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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달(阿斯達)은 고조선의 수도로 전해지는 지명이다. 단군의 고조선 건국 기사와 함께 나타나는 지명으로, 위치는 요서지방설, 요동지방설, 평양설 등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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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역사
[편집] 아사달의 뜻
'아사달'은 '아침의 땅'이라는 뜻의 고대 한국어이다. '아사'는 '아침'을 뜻하고 '달'은 '땅'을 뜻한다. '아사'라는 말은 처음, 시작, 어린 것, 새 것, 아침 등을 의미하는데, 현대 한국어에서 '아지'라는 말로 변형되어 '송아지', '강아지', '망아지' 등에 남아 있다. 또한 고대 일본으로 건너가 오늘날 아사히신문(朝日新聞) 등의 말에 사용되고 있다. 현대 일본어에서 '아사히'란 '아침해' 즉 조일(朝日)로 표기한다. '달'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따르면 고구려 말로 '산'(山)이라는 뜻이며, 현대 한국어에서 '양달'(陽地), '음달'(陰地) 등에 그 잔재가 남아 있다. 결국 '아사달'이라는 말은 아침의 땅, 새로운 땅, 처음 시작하는 땅이라는 의미가 있다.
[편집] 아사달은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阿斯達)은 고조선(古朝鮮)의 수도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단군(檀君)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대에는 도시이름과 나라이름을 따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으므로, 아사달(阿斯達)과 조선(朝鮮)이 동일한 말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아사달(阿斯達)은 소리를 따서 한자로 기록한 것이고, 조선(朝鮮)은 아침 조(朝)와 빛날 선(鮮)을 합쳐서 '빛나는 아침의 나라'라는 뜻을 따서 기록한 말이라는 주장이다. 고대 서양에서도 로마(Rome)라는 도시이름이 결국 나라이름으로 사용된 사례가 있음을 볼 때, 아사달과 조선이 같은 말을 다르게 표시한 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편집] 아사달의 위치
아사달(阿斯達)의 위치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고 여러 가지 학설이 존재한다.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古朝鮮)이 수도를 여러 차례 옮긴 적이 있고, 그 때마다 새로운 도읍지의 이름을 아사달(阿斯達)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아사달의 위치가 여러 번 바뀐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아사달(阿斯達)의 위치가 처음에는 요서(遼西) 지역 즉 오늘날 중국의 북경(北京) 동쪽 갈석산(碣石山) 부근에 있다가 여러 차례 전쟁을 거치면서 동쪽으로 이주하여 요동(遼東) 지방 즉 오늘날 요하 근처의 심양(瀋陽) 부근으로 옮겼다가 다시 동쪽으로 이주하여 오늘날 대동강 근처 평양(平壤)으로 옮겼을 것으로 보고 있다.
[편집] <삼국유사>의 기록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阿斯達) 에 대해 삼국유사에서는 위서(魏書)를 인용해 2천년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에 도읍을 세웠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경(經)에서는 이르기를 무엽산(無葉山)이라 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어서 또 이르기를 백악(白岳)이며 백주땅(白州地)에 있다고 하고 있다. 이어서 혹 이르기를 개성 동쪽에 있으며, 지금의(고려 당시의) 백악궁(白岳宮)이 이것이다라고 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또 이어서 고기(古記)에서 이르기를, 환웅이 곧 거짓으로 되어 그녀 웅녀(熊女)와 혼인하여 웅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자, 이름을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당고(唐高) 즉위 50년 경인(庚寅)부터 도읍을 평양성(平壤城)으로 하고 조선(朝鮮)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또 도읍을 옮기기를 백악산 아사달(白岳山阿斯達)로 옮겼으니, 백악산 아사달을 또 이름하길 궁홀산 (弓忽山)이라고도 부르고 또 지금은 미달(彌達)이라고도 부르니 (또 다른 해석으로는, 또 금미달이라고도 부르니) 나라를 다스리기를 1500년 다스리니 주호왕 즉위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옮기기를 장당경으로 옮겼고, 후에 돌아와 아사달에 숨었다. 그리하여 산(아사달산)의 신(神)이 되었다. 수명이 1908살(歲)이었다이라 하고 있다.
경(經)에서 이르기를 무엽산(無葉山)이라 한 것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불교의 승려인 때문에 불교용어로 범어(산스크리트어)를 많이 쓰는 까닭에 아사달의 아(A) 발음을 인도의 범어(산스크리트어)로 오인하여 없을 무(無)로 번역을 하였기 때문에 아사달을 무엽산으로 번역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무엽산은 틀린 오역일 수 있고, 또 하나 가능성은 아사달의 원래 뜻이 무엽산(無葉山)이란 뜻이기에 아사달을 무엽산이라고 하였다면 아사달을 무엽산이라 한 기록은 옳은 기록일 수도 있다.
[편집] <고려사절요>의 기록
<고려사절요>에는 아사달을 백악산 아사달로 나오며 삼소(三蘇) 중의 하나로 여러 군데 나오고 있다.(삼소는 -북소 기달산 箕達山 황해도 어디, 좌소 백악산 아사달, 경기도 장단군 백학산, 우소 백마산 기도 어디이다 ) 또한, <삼국유사>에는 아사달이 개성 동쪽이라 나오고 있다. 조선의 고지도를 보니 백악산은 백학산(白鶴山) 이란 이름으로 조선 중후기에 비슷한 발음으로 바뀐 걸로 나오고 있다. 지도상에 있어서 좌소(左蘇)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이자 백학산(白鶴山)인 아사달은 예전의 경기도 장단군 백학산(白鶴山)이며, 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관할 읍내리 백학산(白鶴山)이다. 일제시대 지도를 확인하니 높이는 229.3m 정도로 나와 있다. 또한 아사달의 달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고구리말로 산으로 번역되어 쓰여 아사달(阿斯達)이 아사산(阿斯山) 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백학산은 지금의 행정구역 변경으로 경기도 파주시 관할의 읍내리 백학산(白鶴山)이다. 북으로 휴전선이 있다. 이 백학산은 고려 삼소(三蘇) 가운데 하나이며 고리왕(高麗王)은 이곳 백학산 남쪽에 궁을 세우고 1년에 몇번 머무르며 나라의 계속을 바랐다. 그후 조선을 세운 이성계는 나라의 수도를 이 백학산 남쪽에다가 세우려다가 고려왕조의 개성과 가까운 이유 등으로 이 백학산 남쪽에다가 수도를 세우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그 당시의 남경(南京)인 지금의 서울의 백악산=북악산의 바로 남쪽에 궁을 세워 수도로 삼았다. 백학산은 고조선의 수도를 지켜준다는 진산(鎭山)이며 그 백학산 남쪽에 장단향교가 있어 서울의 북악산=백악산 바로 남쪽에 청와대와 경복궁이 있는 것과 같다.